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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주소자원관련법에 대한 인터넷주소위원회의 의견

By 2004/02/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이동만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이 확산된 이유는 대체로 네 가지 정도의 설계 원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 모래시계형 아키텍쳐 2) end-to-end 아키텍쳐 3) 확장성 4) 분산 설계와 탈중앙형 조종이다(1). 이들 원칙의 공통된 특징은 미리 짜여진 완전한 체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필요한 만큼 서로 협력함으로써 상호 독립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게 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설계 원칙을 실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호 합의의 틀이 필요하고 IETF라는 문서 체계가 그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표준 문서의 생성 체계 또한 중앙 집중적인 체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참가자들의 합의와 구현의 안정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2).

인터넷이 미국 정부의 투자에 의하여 개발, 운영되어 왔음에도 그 주소자원의 관리 기능은 그동안 민간의 IANA(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에 맡겨서 운영해왔고, 인터넷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더욱 분명히 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 이하 ICANN)이라는 비영리법인을 만든 것은 민간 자율의 원칙이 인터넷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앞으로도 기여할 것임을 미국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ICANN 설립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터넷이 소수 연구자들만의 네트워크에서 일반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정보통신의 기반으로써 역할을 하는 오늘날에는, 상호 합의의 틀은 사회의 이해당사자들을 효과적으로 포괄할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하며 공공의 이익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참여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인터넷주소자원에관한법률안’(이하 법안)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제 16 조에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단체 및 이용자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명시한 데 반하여, 법안에서는 ‘민주적으로 수립, 시행되도록 노력’한다거나(제3조 제2항) ‘민간의 협력’에 대한 사항을 기본계획에 포함하도록 하는(제5조 제2항) 등, 오히려 광범위한 의견 수렴의 원칙이 더 후퇴하고 있다. 정책에 대하여 의견을 낼 수 있는 ‘인터넷주소정책심위위원회’마저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위촉할 뿐만 아니라 그 기능도 기본 계획에 대한 것뿐이어서 다양하고 전문적인 의견을 수렴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수렴하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위원회는 독립된 기구로서 일정한 선임절차를 거쳐서 민주적 대표성을 가진 실질적인 민간관련 이해당사자들(인터넷주소 이용자, 인터넷주소 기술자, 관련 사업자, 관련 시민단체, 관련 국제기구 참여자 등)과 정부가 함께 참여하고, 인터넷주소에 관한 정책과 기술표준, 국제협력, 이용자 의견수렴 등에 대해 일정한 의결권을 갖는 실질적인 민간정책위원회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법안’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주소’는 국제표준을 따르는 주소 체계는 물론이고 ‘인터넷주소기반 부가서비스’ 등 다양한 기술까지 포괄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진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에 그쳐야지 아직 완전히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지도 않은 특정한 기술을 법으로 보호(또는 배척)하게 되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기술보다는 정부가 보호하는 기술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어 다양한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의지를 오히려 꺾게 된다. 더구나, 정부가 보호한 기술이 국제표준이 되지 않거나 시장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정부로서는 부담이 된다. 따라서, 관련 조항은 국제표준 인터넷주소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 설비, 기술에 국한되도록 하고 자의적인 확대해석이 없도록 제한하여야 하며 부가서비스에 관한 조항(법안 제9조)은 삭제되어야 한다.
또한 법안은 인터넷주소의 공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그것이 갖는 사적 소유의 성격(3)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예컨대, ‘법안’ 제13조 제1항에서 전매할 목적으로 도메인이름을 등록한 경우 법원을 통하여 등록말소를 청구하도록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과도한 규제이다.

대체로 보아, ‘법안’은 그동안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시켜온 인터넷의 발전을 위한 기본 원칙은 소홀히 반영하고 인터넷주소의 공공성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균형을 잃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법안’은 이러한 점들을 골고루 반영하여 인터넷주소를 일반이용자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고 관련 연구개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인터넷주소위원회에서 작성된 의견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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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Computer Science and Telecommunications Board, ‘The Internet’s Coming of Age’, National Academy Press, 2001.
(2) 이러한 생각은 인터넷 초창기 설계자 중의 한 사람인 데이브 클라크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We don’t believe in kings, presidents, or voting. We believe in rough consensus and running code.”
(3) 인터넷주소 중에서 도메인 이름의 경우에는 등록자가 등록 유지 수수료를 납부하는 이상 그 도메인 이름의 활용에 대하여 거의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200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