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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전파 자원의 활용{/}전파는 인권이다!

By 2010/08/0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조동원

1. 전파 : ‘황금’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보기

언제부터인가 ‘황금주파수’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전파가 파장을 그리며 진행하면서 산이나 고층건물 등의 장애물을 넘어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는 회절성은 그 진동횟수(주파수)가 낮을수록 강한데, 그 저주파 대역인 1GHz 이하의 700, 800, 900MHz에 ‘황금주파수’라는 말이 붙여진 것이다. 2010년 3월 현재 800~900MHz와 2.1GHz에 대한 주파수 할당이 추진되고 있고 800~900MHz 대역을 할당받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오는 2011년 7월 1일부터 10년간 사용하게 된다. 또 하나의 ‘황금주파수’인 700MHz는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 TV 방송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디지털 전환을 완료하면서(2012년 12월 31일)비워 이동통신 등에 쓰겠다는 계획이 나와 있다. 그 재배치의 방식이 곧 경매제다. 주파수 경매제 도입의 근거를 담은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특정 주파수 대역이 이동통신에 유리하다는 것은 단지 기술적인 설명이 아니라, 그 별칭이 암시하듯 이동통신 사업을 통한 무지막지한 경제적 수익을 의미한다. 이는 이동통신 기업들이 챙기는, 모든 비용을 빼고 남는 순수한 이윤이 연간 무려 1조 8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통해 잘 나타난다CBS <김현정의 뉴스쇼>. “정영기 교수 이통사 초과이익 18천 억.” 2009921. 전파는 노다지가 되었고(황금주파수), 전파 정책까지 돈 놓고 돈 먹는 장삿속으로 넘어가고(경매제) 있다.


 < 이정도는 되어야 경매에 참가 가능!>
이미지출처 : 미디어 미래 연구소, http://www.mfi.re.kr/

하지만 전파는 오랫동안 공공재로서 커뮤니케이션의 공공적 하부구조의 기반이었다. 신문에는 공영신문이 없는 반면, 이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지만, 방송에는 공익방송이나 공영방송이 있어온 이유도 그것에 있다. 방송이 갖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인 전파를 국가로부터 허가받아 방송 제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국가를 매개로 전파의 독점적 이용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공익을 위한 방송의 책임이 부여받아왔다. 그러한 법적 규제의 핵심 논리는 전파가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에 전파가 희소하고, 따라서 아무나 막 쓰게 되면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공유지의 비극’이 생기므로 이를 막기 위해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면서 ‘공익’의 이름으로 이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방송면허)을 방송사업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1920년대 방송제도가 시작될 당시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리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Adrian Johns. 2009. Piracy as a Business Force.” Culture Machine Vol .10: Pirate Philosophy. 1920년대 이래 모든 나라에서 방송 전파는 원리적으로 공중의 소유지만 특정한 주체에 신탁한다는 개념 하에 통제되어 왔다.

<젊은 시절의 David P Reed, Wikipedia>
<젊은 시절의 David P Reed, Wikipedia>

그러나 전파의 자연적인 속성이라고 했던 전파의 간섭 현상은 적어도 디지털 방식으로 송수신하는 기술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고 전파는 희소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인터넷의 최초 설계를 디자인한 3인방 중의 한 명인 리드(David Reed) 교수는 무선 전파는 빛(광자)과 같이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서로를 투과하는 따라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David Weinberger. “The myth of interference.“ salon.com. 12 March 2003. 하지만 종종 라디오가 지지직 거리고 휴대전화가 혼신되는 일이 실제로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전파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수신기가정보를 제대로 분리해 수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드는 이러한 전파 간섭 현상의 허구적 성격을 1900년대 전파에 대한 ‘나쁜 과학’의 문제로 보면서 이 나쁜 과학은 단지 수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송신기-수신기, 그 네트워크 전체의 시스템 설계의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적어도 기술적인 차원에서는 압축 및 전송 기술의 발달로 그러한 전파 간섭과 인위적인 희소성의 문제(제한된 양의 정보 전달의 한계)는 점차 극복되어왔다. 무선 전화에서는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과 같은 압축 전송 기술이 그렇고, 우리가 무선 인터넷을 할 때 사용하는 와이파이(WiFi) 역시 공유된 주파수 대역을 활용한다. 특정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비어있는 대역을 찾아 사용하다가 다시 그 대역의 원래 이용 신호가 나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인지무선통신(CR, Cognitive Radio) 기술도 발달해있다.

제한적이나마 아이폰의 출시 과정의 진통과 출시 후의 변화가 잘 암시해주듯이, 노다지를 캐고 있는 이동통신 기업들이 막아서고 있지만 1대1, 1대다,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모두가 가능한 똑똑한 송수신기가 널리 개발 보급되면 우리는 전파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방송 전파의 사용 역시 배타적 독점 구조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 더 나아가 전파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따라서 전파는 희소하지 않다는 것은 국가가 전파를 독점하면서 배타적으로 소수의 방송사업자와 이동통신 사업자에게만 허가하는 정책 체계가 사실상 그 근거를 잃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은 전파 기술의 변화에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전파의 이용은 이미 가능하지만, 누군가 공공 자산의 독점, 그것도 합법적인 법제도를 통해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면 쉽게 바뀔 리 없다. 시장논리와 사유 재산의 형태로 전파의 희소성은 다시금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박한 전파의 디지털 전환과 경매 등의 재분배의 문제는 기술(결정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무엇보다도 문화적인 문제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와 함께 전파의 군사적인 활용의 문제가 있다. 군사적 목적으로 상당수의 주파수 대역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고 전파정책을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조차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안보라는 이유가 앞서 있지만 실상 전쟁무기산업의 독점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군사 안보를 위한 공공 자원의 활용도 국회를 통해서든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하는 것이 아닌가[뻔뻔한 미디어농장] 8회 포럼. "전파의 진보적 활용1: 방송주파수 재배치." 2010년 2월 18일 토론 내용 참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전파의 문제는 이제 인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시장원리에 내몰리며 그 공공재로서의 성격과 공익 규제의 명분이 사문화되면서, 전파를 통한 사적이고 공적인 정보의 교환, 커뮤니케이션과정에 대한 접근과 참여에 필수적인 하부구조가 당연히 보편적인 누릴 권리가 더 이상 아니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의 주창자이자 법학자인 모글렌 교수는 전파의 문제를 사상·표현의 자유의 문제로 본다. 그는 “거의 모든 시스템에서 전파가 어떻게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부 통제 방식을 유지”해 온 것은 곧 “누가 다수 대중에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정부가 결정을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와 같은 “전파 분배는 이제 악이 되는 때가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Eben Moglen. 2004. "‘Die Gedanken Sind Frei’: Free Software and the Struggle for Free Thought." Wizards of OS 3, Opening Keynote. 그러면서 그는 자유전파운동(free spectrum)을 소개하는데, 이는 마치 검열에 맞서는 비허가 출판 운동과 같은 것으로, 수백 년에 걸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이렇게 인권으로서의 전파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차원에서 전파 자원의 활용 문제를 접근해 보려고 한다.
 

 

2. 커뮤니케이션 권리와 전파 활용

2.1. 커뮤니케이션 권리
급격한 기술적 발전에 의해 미디어 간의 경계,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 미디어의 기술적 구분과 콘텐츠 장르의 경계를 넘어 누구나 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와 그 현실적 실현을 위한 문제 설정이 필요하다고 할 때, 1970년대 이후 제기되고 발전되어온 ‘커뮤니케이트권’(right to communicate) 혹은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s) 개념에 주목할 만하다보다 자세한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이론, 역사, 운동에 대한 논의로 박승관. 1985. “커뮤니케이트권(The Right to Communicate)의 이론적 배경에 관한 일 고찰.” 서울대학교 신문학과 석사논문; 미디액트 1회 포럼,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미디어 권리 개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2004323; CRIS 캠페인. 2007. [커뮤니케이션 권리 핸드북].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회 옮김, 미디액트 등 참조.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기왕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다 확대하여 누구나 어떠한 억압과 착취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며,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회권이자 집단권으로서의 보편적 인권을 말한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가 형성되면서 정착되기 시작한 표현의 자유는 (매스) 미디어 제도의 발달에 따라 미디어를 소유하고 제작하고 운영하는 전문적인 소수에 의해 전유되거나 제약되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때, 여전히 그 개념이 갖는 유용성의 토대 위에서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정한 ‘미디어 민주화’의 진전이 이뤄질 수 있었던 조건과 구조로는 실현하기 힘든 ‘미디어 민주주의’ 즉, 대중들의 참여적 커뮤니케이션 욕구와 필요성을 반영하고 구현할 수 있는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보편적 권리 형식이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마치 보통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들과 자원의 사회적 공유와 재분배를 위한 사회적 권리의 다양한 이념들이 현재의 기술·문화적 수준에 상응하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로서 개념화될 수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실현은 커뮤니케이션이 사회, 문화, 정치, 경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 문화이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보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또한 인간의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필수적인데, 따라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권리는 특히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자유, 참여, 다양성, 존엄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인간이 서로 간에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받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들로서 이미 세계인권선언이 보편적인 인권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정보접근의 권리, 프라이버시 및 통신비밀의 권리 등을 포괄적으로 종합하면서도 그것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 권리 운동이 제기되어온 것이다.
 

2.2.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전파 자원의 활용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전파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최소한 아래와 같은 3가지 접근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자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이 현대 사회의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파를 이용한 방송과 통신 등의 제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환경에 보편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은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이어지며 전파 자원은 이러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편적 정보 접근과 공동체 미디어를 위해 전파가 활용되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이라면, 그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필요와 목적으로 전파 자원 자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활동 역시 보장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술 문화 환경에 맞게 전파 자원 자체를 모두가 자율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은 전파 자원의 개방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 세 가지 측면 각각에서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 포함해 좀 더 설명해보고자 한다.
 

  •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전파 자원의 활용
  •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위한 전파 자원의 활용
  • 전파 자원의 자율적 공유와 활용 구조

 

3.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전파 활용

3.1.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전파 자원
우선 지상파 방송은 대표적인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이다. 그런데 ‘지상파’로 방송을 보려해도 안 나오다 보니 으레 텔레비전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유료 케이블방송을 신청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수신료도 내고 케이블 방송요금까지 내가며 방송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전파를 사용한 방송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고 하면, 보통 옥상에 설치돼 있는 안테나와 방 안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연결만 하면 (지상파) 방송이 나오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는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된다고 한다. 안테나만 다는 것으로 (지상파) 방송이 나오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자연적 및 인위적 난시청, 수신 설비 미비 및 훼손 등이재명. "방송주파수 재배치." [뻔뻔한 미디어농장] 8회 포럼. "전파의 진보적 활용1: 방송주파수 재배치." 2010년 2월 18일 참조), 우리가 ‘지상파’로 방송을 보는 것(을 요구하는 일)을 포기해야할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들은 결코 아니다.

디지털 전환
방송과 통신은 디지털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디지털 복제 기술은 정보 생산에 있어서의 한계비용이 아예 없거나 0에 가까운 조건을 만들어왔다. 이는 물론 디지털화된 방송과 통신의 비용에도 적용된다. 공중파 방송이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였고 디지털 전환이 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어야 한다. 휴대전화 요금 역시 어떠한 이동통신 제도와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심지어 0에 가까운 방식이 가능하다. 이는 저 아래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디지털 전환 이후 잔여 주파수 개방을 통한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 가능성을 살펴보자.


<국내 방송주파수 분배 현황, 방송기술인연합회>

디지털 전환과 잔여 주파수 개방
미국의 경우 2008년 11월 4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TV용 주파수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남는/비는 대역이를 ‘흰공간’(white spaces)이라고 부르는데, 국내 번역어로 "잔여 주파수"가 통용되고 있다을 공적 이용을 위해 개방할 거냐 말거냐에 대한 의결(FCC의원들 간의 투표)에서 비허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이후 오바마 정부에서의 정책 변화는 확인 필요. 이것은 TV방송의 주파수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면서 쓰이지 않고 비어있는 주파수 대역(기술적으로 보면 아날로그 때도 사용 가능했던 것이지만, 디지털로 전환되면 더더욱 비워둘 필요 없는)인 이 잔여 주파수를 허가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정책이다. 이를 반대하는 TV 방송사 연합과 통신 기업들이 로비를 해왔지만, 잔여 주파수를 활용해 광대역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고 하는 사업자들이 이의 개방을 요구해왔다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으로 구성된 ‘흰공간연합’. 구글의 경우, 700MHz 주파수 경매에서 떨어지면서 요구해온 것으로, ‘와이파이2.0’ 또는 ‘와이파이 온 스테로이드(steroids)’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 TV대역 주파수를 이용해 인터넷 서비스를 하게 되면, 초당 수 기가바이트(GiB)의 전송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빠른 인터넷 접속의 문제가 아니라, HD급 멀티미디어의 업/다운로드와 무선IPTV나 DMB와 다름없는 서비스들이 가능하다. 또한 미디어 정의를 위한 단체들이 이 잔여 주파수 개방을 위한 운동을 벌여왔다http://main.nc.us/whitespaces, http://www.peoplesproductionhouse.org/node/1105 등 참조. 이 단체들이 주목한 것은 이 TV 잔여 주파수를 비허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광대역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여 도시도 그렇지만 농촌 지역에 좋은 질의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엄청난 하부구조 구축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거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일부 진행되어 온 듯 한데 본격적인 논의는 부재하다.

3.2.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위한 전파 자원

전파 자원을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위해 활용해온 대표적인 사례는 공동체라디오 운동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공동체라디오운동은 독점 상업 미디어로부터의 소외에서 발단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 주류 미디어로부터의 소외는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한 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사회적 권력 작용이 주류 미디어를 주류 미디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적 소외와 억압이 어떠한가에 따라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유형은 지방 라디오, 조합 라디오, 참여민주주의 라디오, 자유 라디오, 대안 라디오, 대중적 라디오, 교육 라디오 등으로 나타났다. 또 한, 라디오(그리고 여러 다양한 공동체 미디어) 운동이 각 지역에 따라 특수하게 제기되고 시작된 배경에 따라, 그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확보를 위한 운동과 투쟁의 여러 가지 유형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 “여성, 원주민, 인종적이고 언어적인 소수자들, 청년학생, 정치적 좌파, 농민들, 민족해방운동 등에서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개입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라디오의 잠재력Bruce Girard ed. 2001. A Passion for Radio. Communica, http://www.communica.org/passion”은 늘 재발견되어온 것이다.

 


<한국의 공동체라디오 마포FM>

국내에서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오랜 요구와 운동을 통해 2005년부터 시범사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공적 기금의 지원과 전파 확보의 문제를 포함한 정책 결정의 문제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우리 보다 앞서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을 진행한 영국은 공동체라디오방송을 법제화하였고 공동체라디오 펀드(Community Radio Fund)를 조성하여 인력 및 주민 참여를 위한 교육 등에 공적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다(http://www.commedia.org.uk 참조).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라디오 프로젝트(Prometheus Radio Project, http://prometheusradio.org)는 초기에는 불법의 ‘소형라디오’(microradio)를 하다가 2000년에 미연방통신위원회(FCC)와 의회를 설득하여 저출력FM(LPFM)이라는 새로운 라디오 허가 모델을 창출하였다. 2009년 10월 10일 아르헨티나에서 통과된 미디어법은 방송 전파를 기업에 3분의 1, 정부나 공공의 목적으로 3분의 1, 그리고 마지막 3분의 1은 비정부단체에 할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의 다툼에 그 배경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조합, 공동체미디어집단, 5월광장어머니회와 같은 인권단체를 포함한 300여 개로 구성된 민주방송연합이 2년 넘게 이 법안이 만들어지는데 자문위원회에 들어가 역할 하는 등 풀뿌리 미디어 단체와 공동체들의 수년간의 투쟁과 개입의 성과이기도 했다. 전파의 1/3이 비정부단체에 할당된다지만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공적 기금 지원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비정부단체 범주에는 사실상 사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과 기득권을 누리는 종교단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정작 전파가 필요한 풀뿌리 공동체는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법이 허용하는 전파 접근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전파의 20%를 민중 영역에 할당하는 것을 아예 헌법으로 보장하였다. 물론(!) 그 이후 어떠한 정권도 그 헌법 조항을 존중하며 그에 합당한 법률을 마련하거나 어떠한 지원 정책도 펴지 않아왔지만 말이다.

3.3. 전파 자원의 자율적 공유와 활용
인터넷은 일대일, 일대다, 다대다가 모두 가능한 ‘네트워크 미디어’로 발전해왔다. 인터넷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끝에서끝’(end to end, e2e)이라고 하는 네트워크의 디자인 철학이 큰 몫을 했다. e2e는 한마디로 네트워크 시스템이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방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기능하고, 네트워크 이용자들(end)이 그에 연결된 컴퓨터 시스템에 더 필요한 기능과 서비스를 자율적으로 만들고 나누면서 네트워크가 최적화될 수 있다는 접근이다. 네트워크의 소유자에게 제안하여 그들이 실행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네트워크에 제공하고 최대한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하자는 철학인 것이다. 인터넷이 1960년대 말에 등장하고 1990년대에 대중화되면서 우리 생활 전반을 재구조화할 정도로 빠른 혁신과 발전을 이루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예를 들어 또래간 커뮤니케이션(p2p)은 불법복제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렇게 엄청난 파일공유가 이뤄지는 이유도 기술적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보의 전송과 공유 방식이기 때문이다p2p는 "폭넓고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콘텐트를 이동시키는데 가장 효율적인 기술"로서 "저절로 발전하도록 놔두었다면 p2p 기술은 네트워크를 대단히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로렌스 레식. 2005. [자유문화]. 이주명 옮김. 필맥. 135쪽).


<냅스터와 비트토런트의 p2p 전송 방식, Copyright HowStuffWorks 2005>

인터넷만이 아니다. 방송 미디어인 라디오나 텔레비전 역시 기술 결정의 요소로만 보면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 미디어가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1920년에 최초로 미국에서 (라디오) 방송이 제도화되기 전까지 대략 20여 년 동안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지금의 인터넷과 다름없는 쌍방향 라디오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14 라디오방송이 제도화되면서 지금까지 쓰던 좋은 주파수 대역을 쓰지 못하고 당시 ‘황무지’로 불리는 단파나 초단파 대역을 사용하는 것으로 떠밀려난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시민라디오’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국가와 기업의 전파 독점에 저항하는 한편, 그 ‘황무지’를 개간해 훌륭하게 활용하면서 전문 전파 기업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의 혁신을 이뤄내기도 했다. 돈벌이만을 위한 기술 독점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공동체를 위한 자율적인 기술 활용과 탐구가 낳은 혁신이었다. 그러나 그 사회경제적 역사의 과정에서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은 일대다의 중앙집중적 정보 시스템인 방송 미디어로 제도화되어 오늘날에 이어져왔다.

이와 같이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전파 자원의 활용을 위해서는 중앙 통제적이거나 배타적인 독점의 상태가 아니라, 바로 위와 같은 방식의 전파 자원에 대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일정한 전파 자원의 개방과 공유는 그에 대한 낭비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면서 효율적인 자원의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무선 인터넷을 위한 와이파이(WiFi) 기술에서 잘 드러난다.

참조: 와이파이(WiFi)
IEEE 802.11 혹은 와이파이(WiFi)는 900MHz, 2.4GHz, 5.7GHz 등 비허가 주파수 대역을 활용한 것으로 이는 현재 제한된 지역에서지만 음성이나 비디오 신호 등 모든 형태의 디지털 정보의 전송에 활용되고 있다. 기술 표준만 지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주파수 대역인 것이다. 보통 무선인터넷(WLAN, wireless local area network)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2009년 10월 25일 미국 인터넷 기업인 지와이어(Jiwire)의 조사결과를 인용한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와이파이를 접속할 수 있는 장소는 국내에 1만 2814곳으로, 이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것이다. 그리고 국내의 전체 무선랜 이용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7%가 무료로 무선랜을 이용하고 있다미디어오늘. "무선랜 보안법’ 이용자 부담만 는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 연간 1700억 원 증가할 것." 20091028. . ‘끝에서끝’(e2e)의 기술 디자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지난 10년 동안 사용돼온 와이파이는 보편적 무선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면서 독점된 다른 주파수 대역 이상의 사회·경제·문화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했다.

이와 같이 와이파이는 소규모 지역에 국한되고 ‘황금주파수’와 같은 장점을 갖는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것이 아님에도 “자기 조직적이고, 비위계적이고, 탈중심적이고, 전파에 대한 평등한 접근 수단을 모델링하면서 실제로 대안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Moglen 앞의 글). 단적으로, 국내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이미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온 공동체무선네트워크 운동 역시 이러한 와이파이에 기반을 둔 자율적인 네트워크 구축 활동을 전개해 왔다국제적인 네트웨크의 하나로 wsfii(World Summit on Free Information Infrastructure)의 메일링 리스트 http://lists.okfn.org/mailman/listinfo/wsfii-discuss 참조. 다양한 사례는 하워드 라인골드. 2003. [참여 군중: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새로운 군중](이운경 옮김. 황금가지) "6장 무선 누비이불" 참조. . 와이파이는 또한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소규모 지역의 비허가 공동체 라디오나 (이탈리아에서처럼) 길거리 텔레비전(telestreet)이 합법적 형태의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암시해주고 있다.

참조: p2p 방식의 휴대전화
p2p는 인터넷의 애초 설계 원리대로 서버-클라이언트의 주종 관계없이 모든 단말기들이 직접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의 컴퓨터가 서버이자 클라이언트로서 동시에 기능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다. 휴대전화에서도 이와 같이 특정한 서버와 같은 기지국이나 중앙교환체계 없이 직접 연결되는 방식이 가능하다. 스웨덴의 한 기업인 테라넷(TerraNet, http://www.terranet.se)이 개발 중인 p2p 방식의 휴대전화 시스템이 있다Amy-Mae Elliott. "TerraNet develops peer to peer mobile calls." pocket-lint.com. 12 September 2007; Katrin Verclas. "Peer-to-Peer Mobile — Subversive and Effective?" MobileActive.org. 12 September 2007; BBC NEWS. "Mobile system promises free calls." 11 September 2007 등 참조. 1Km 범위 안에서 기지국 없이 서로 간에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메쉬 네트워크라면 20Km까지 기지국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접한 전화기들이 집단적으로 p2p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이 안의 모든 전화기가 노드로 역할하면서 클러스터 안의 다른 전화기로 신호를 전달한다. 또한 인터넷에 연결된 게이트웨이를 통해서 외부 세계로 향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이동전화기가 함께 할 수록 이 네트워크의 신호 영역(coverage)은 더 넓어진다. 이런 방식이라면 기존 방식과 비교해 단말기 비용과 개발 비용이 훨씬 싸고 전력 소모가 낮고 작동과 유지가 쉽다는 장점이 생긴다. 이 p2p 이동전화 기술은 특별히 고안된 전화기에서 되지만 이론적으로 주류 이동전화기에 통합될 수 있다. 혹은 테라넷의 설립자인 칼리우스(Anders Carlius)의 희망대로 블루투스처럼 모든 휴대기기에 들어가는 기능이 될 수도 있다. 2007년경 테라넷은 휴대전화기 제조업체인 에릭슨으로부터 3백만 파운드를 투자받아 에콰도르와 탄자니아 그리고 영국의 일부 대학 캠퍼스에서 파일럿을 진행한 바 있다. p2p 방식의 휴대전화와 같은 기술을 위한 유용한 주파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4. 전파운동의 가능성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권리 실현을 위한 전파 활용을 위한 정책은 서두에서 언급한 현재의 조건 하에서 아래로부터의 힘의 작용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전파는 공공재이고 공공자원이라는 대원칙만 확인해온 것이 한계라면 한계였다. 변화하는 기술·문화 환경에서 이 공공 자원을 공공적으로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필요성의 확인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허가 주파수 대역을 확장하자는 열린 전파(open spectrum)운동이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어 왔다. 아르헨티나와 태국에서 우려되거나 나타난 것과 같이, 주파수 개방만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공공적 전파 정책의 강화와 전파의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방송과 통신이 충분히 가능하다.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생생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가능하다. 수익이 낮다는 이유로 인터넷망이 깔려있지 않은 방방곡곡에 광대역 인터넷이 가능해진다. 또, 초과이익만 1조 8천억 원이 넘는 이통사에 계속 고가의 통신비를 내가며 쓰는 휴대전화를 대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지금까지 방송사나 이통사의 전파 독점에 의한 방송미디어나 독과점 통신 구조 자체를 바꿔내는 수없이 다양한 방송·통신의 모델이 가능하다. 덧붙여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전파 활용 역시 분명 지금과는 다른 방식일 것이다.
 

 

 

2010-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