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선거법

선거, 소통 그리고 인터넷

By 2010/07/29 No Comments
laron

소통

소통이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정보를 주고받음을 통해서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앎이 옳은가 그른가를 비교, 판단 한다. 그렇다면 소통을 한다는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 정보를 주고받는 다는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 상호간에 정보내용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가령 누군가 절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굳이 다른 이의 앎을 알거나 자신의 지식이 옳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 개인이 가진 정보력과 판단력은 한계가 있다. 우리는 개인의 한계를 넘기 위해 그리고 또 그 한계까지 자신의 정보를 판단을 확장하기 위해 타인과 소통을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의 말을 왜 듣는가? 왜 말하는가?

소통주체의 변화가능성을 생각 해 보자. 이것은 “달리기를 해라”라거나 “적게 먹어라”등의 명령조로 이루어지는 강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언어를 심사숙고함으로서 그것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다고 판단 한다면 그에 따르는 것, 또는 그 반대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주의주장을 효과적으로 타자에게 전달해 타자와 나의 최소공약수를 찾는 과정, 타자의 언어를 내 삶에 비추어 비판하고 수용하고 거부하는 과정. 내가 변화하고 타인이 변화할 수 있기 위한 수단으로의 소통.“모든 사람이 같다면 소통에서의 문제는 왜 발생하겠는가? 또한 모든 사람이 다르다면 소통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는 아렌트의 지적처럼 소통은 차이와 동일성의 겹침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소통 수단인가? 호의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인터넷에는 소통이 가득하다. 당신의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포탈의 플래쉬 광고조차 당신이 클릭을 할 때에 존재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당신의 선택 속에 읽혀야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어떤 것도 인터넷에서 일방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인터넷 생활이 포탈, 뉴스 등 정형화된 틀에 길들여져 있는 것뿐이다. 악의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인터넷은 훌륭한 소통수단이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오직 하나의의견이 대통령 담화문처럼 우악스레 흐르지 않는다. 건전하고 정당하며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이는 주장에도 그것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이야기를 반드시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당신은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는다. 당신 역시 그 규모가 어떠하건 당신과의 차이에 대해 반격할 기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그것의 형식이 어떠한지, 그것의 강도가 어떠하건) 소통은 인터넷 어디에나 흐르고 그것에 접한 당신에게 인상을 남긴다. 그러한 인상들의 총체가 내가 특정 커뮤니티, 포탈, 게시판에 가지는 인상이 된다.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 인터넷의 나는 내가 속할 곳, 주시할 곳, 배제할 곳을 정한다.

인터넷은 소통에 기반 해 있다. 덧글, 커뮤니티, 당신이 선택한 뉴스, 여가를 위한 정보 등 인터넷은 소통의 거대한 집적 위에서 존재한다. 다시, 소통은 소통주체간의 변화의 가능성이다. 서로 간에 동일성과 차이들을 확인해가며 겹침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자 결과들이 인터넷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글의 과녁은 다음으로 좁혀진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인터넷, 그 중에서도 선거 시기 인터넷은 소통하고 있는가?

기존 언론매체 그리고 인터넷

한국사회에서 인터넷은 중요한 소통수단이지만, 인터넷이 다른 매체들에 비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2009년 9월 기준 3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의 77.2%, 3,658만 명한국인터넷진흥원, 2009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결과 요약보고서이 인터넷을 사용하며, 2009년 5월 기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 1,593만 명인터넷통계정보시스템 ISIS 2009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 최종보고서, 이하 모든 인터넷 통계는 최종보고서 인용 등의 통계를 보면 인터넷이 가장 주요한 매체인 듯 보인다. 통계는 인터넷이 TV, 라디오처럼 각 가정과 사업장에 널리 퍼져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망은 넓게 퍼져 있고 그 사용자 또한 국민 대다수라 할 수 있지만 라디오, TV, 신문 등 전통적인 그리고 (거의) 일방향적인 매체를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인터넷 여론을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끊임없이 정보의 교환이 발생한다. 그러한 정보 교환을 기반으로 하여 물리적인 교환/거래가 발생한다. 따라서 기존 언론매체가 요구하는 ‘액션’이라는 것이 인터넷에서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액션’에 대해 평하고 예측하고 논의하는 공간이지 직접적 ‘액션’이 창출되는 공간은 아니다. 당연히 기존 매체가 인터넷에서 펜을 잡거나 카메라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기존 언론매체가 인터넷에 태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로는 하루 종일 반복되는 메세지, 근엄한 활자로 굳건히 찍혀있는 어조를 매일 접하는 큰 규모의 대중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건으로 인해 인터넷을 가까이 대하기 어려운 이들, 인터넷이라는 새 시대의 매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이들은 매우 많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일일이 링크를 찍고 로그인을 해야 하는 인터넷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기존 언론매체의 주요 소비자층을 이룬다. 반면 인터넷만이 접하는 매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이 노동환경이자 유희환경인 전문직, 관리직, 사무직 노동자, 학생, 자영업자 등이 그러하다.

세부 통계를 보면 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인터넷에 적응하기 힘든 5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52.3%, 60세 이상 20.1%로 거의 100%에 달하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인터넷 이용률이 현저히 낮다. 전문직, 관리직, 사무직, 학생의 인터넷 이용률은 거의 100%에 달하지만, 서비스 판매직의 경우 80.4%, 생산직의 경우 53.9%, 주부의 경우 65.8%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학력에 따른 편차도 크다.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인터넷을 이용하지만, 일반인 가운데 초졸 이하는 24.1%, 중졸은 34.3%만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통계자료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학력자가 생산직에 많이 종사하게 되는 상황의 반증이라 생각할 수 있다. 통계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청·장년층, 사무/관리직, 고학력층이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고령자, 생산직, 저학력층은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적게 사용하는 이들의 주요 매체는 상술한 바와 같이 TV, 라디오, 신문 등 기존 매체이다. 그들은 중립 내지는 보수를 표방하는 정형화되고, 상호소통이 제한적인 매체들로부터 메세지를 받는다. 그들에게 인터넷은 모두들 하는 것 같지만 내가 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복잡해서 꺼려지는 매체로, 트위터는 시끌한 유행 같은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존 매체의 영향력은 인터넷의 영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그들이 기존 매체의 모든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다양성의 폭에서 기존 매체는 인터넷에 비해 빈약하며 따라서 기존 매체의 수용자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안에서 의견을 선택할 기회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쉬이 예상할 수 있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을 생각 해 보자. 인터넷은 이용자의 선택에 의해 컨텐츠가 소비된다. 더욱이 단순히 소비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변에 확산하고 변용하는 것 까지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소통하고자 한다면 매일 보는 가족, 속사정 다 아는 친구가 아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들의 무수한 의견을 얻고 또 내 의견을 전할 수 있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의견을 접하고 판단하는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의 구름들, 다발들이 인터넷 여론이―또 하나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의 최신 유형이 바로 Social Network Service(이하 SNS)이다.

SNS – 특히, 트위터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3,658만 명 중 트위터, 미투데이 등 SNS서비스 이용자는 상승 추세에 있지만 현재 대략 250만 정도로 집계된다. 크게 잡아도 전체 인터넷 이용 인구의 7%만이 SNS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Daum과 Naver등 국내 주요 포탈의 내국인 회원수가 3천만 명을 훌쩍 넘어 선 것을 감안한다면 SNS의 위력은 언론노출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 이처럼 적은 이용자수와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트위터가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되었던 것은 다양한 의견과 정치적 참여 독려를 개인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표면화 된 것이 주된 요인이다. 기존에는 언론과 국가기관 주도의 선거독려, 정책토론, 후보지지가 이루어졌다면 인터넷-트위터 공간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 자신이 동의하는 이야기들을 전파한다는 새로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트위터가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되었던 것은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의견과 정치적 참여 독려를 개인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 표면화 된 것 이 주된 요인이다. 기존에는 언론과 국가기관 주도의 선거독려가 이루어졌다면, 트위터 공간에서 각 개인 자신이 동의하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직접 퍼뜨리는 과정 그 자체가 이슈가 되었다. SNS의 특성 상 이슈가 되는 주요 인물들의 의견을 언론의 매가 없이 들을 수 있고, ‘나’의 의견을 그들에게 바로 전할 수 있다는 직접성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트위터는 140자의 한계 내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말하고 들을 수 있다. 전화처럼 서로가 연결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걸러 듣고 말하는 방식인 것이다. 트위터 시작 초기의 수많은 팔로follow가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내가 듣고 싶은 이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이들만을 걸러 듣게 되는 필터링이 이루어진다. 필터링은 이용자의 선택에 의해 특정 정치지형 범위 내에서 나누고 소통하는 기능을 한다. 곧 트위터 안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걸러진 메세지들의 다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대세인가’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이는 다양한 의견들이 보이는 게시판과 달리 ‘사람-계정’ 자체가 컨텐츠인 트위터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은 공공연히 자신의 정치지향을 표시했고, 자신의 정치지형과 양립불가능하거나 극단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메세지를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언팔unfollow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개인들의 트위터 운용 정책은 ‘적’들의 주요 메세지 창구 몇 개를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중심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이야기인데, 그 ‘끼리끼리’를 넘어 폭넓고 다양한 교류를 하고자 하는 인터넷의 여러 시도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트위터에서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정보 속에 자신만의 비판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슷한, 서로 장사가 될 만한 정치지형 내부의 싸움이지 서로의 차이와 동일성의 겹침을 소통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착시현상 속에서 트위터 이용자들은 연일 ‘MB심판’을 외치고 ‘No Vote, No Kiss’라고 투표를 독려했지만, 분명 한국 트위터 이용자들의 대세는 한국 인터넷의 대세가 아니다. 설령 트위터의 대세가 인터넷의 대세라 할 지라도 그것은 아직 찻잔 속의 태풍이다. 선거로 국한해 보자면,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정보 속에 자신만의 비판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비슷한, 서로 장사가 될만한 정치지형 내부의 싸움이지서로의 차이와 동일성의 겹침을 소통은 되지 못했다.

한나라당-오세훈을 비판하는 수많은 트윗 속에서 민주당-한명숙, 유시민 지지자들과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딱 그들만 다투었다. 이것은 그들의 논쟁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 이용자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트위터 이용이 가능한 이들만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트위터는 아침출근시간부터 점심시간 전, 점심시간 이후부터 오후6시 퇴근 전에 가장 활발하다. 트위터를 노동시간에도 할 수 있는 이들이 트위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무직이, 관리직이, 전문직이, 학생이 이용하는 것이다. 노동환경으로 인해 인터넷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택시 노동자가 손님을 태우면서 트윗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가판대에서 물건을 계산하며 트윗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트윗에서 오가는 수많은 이야기와 별개로 TV(DMB),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사회를 접한다. 이처럼 이용자 적은 이용자 규모와 트위터 내의 협소한 정치적 지형 등을 생각 해 보았을 때 한국 트위터 이용자들의 대세가 곧 한국 인터넷의 대세가 아니다. 설령 트위터의 대세가 인터넷의 대세라 할지라도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이다.

6.2지방선거, 트위터 돌풍?
인터넷을 한국사회의 중요한 소통수단임을 인정 할 수는 있어도 보편적 소통수단으로 기능한다 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터넷 상의 여러 논의는 결국 특정 계층, 집단 간의 논의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논의되고 소통되어 어떠한 합의점들이 도출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 속에 퍼져나가는 것에 많은 저항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중지가 모아져서 흐름을 이룬다 해도 그것이 한국사회에 질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장벽이 있다. 인터넷의 이야기가 사회의 변화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주체와 제도,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토론하고 설득할 매체 등 인터넷의 요구를 떠안을 실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의 소통은 그것만으로도 이용자들에게 충분한 의미를 제공하며, 굳이 물리적 행위체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물리적 실체의 부재라는 장벽과 함께 위에서 인터넷 사용자층의 통계를 제시했을 때 이야기 했듯이, 세대별/학력별/직업별 인터넷 이용 편차 역시도 인터넷의 담론이 사회전반으로 확산/실현되는 것의 장벽이다. 이런 점에서 ‘선거’라는 공간, 여론을 받아 안을 제도와 주체가 실재하고, 보편적이며, 누구나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인터넷의 여러 이야기가 물리적으로, 제도적으로 실현 될 수 있는 공간이며 그래서 선거가 인터넷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수많은 이야기의 용광로가 되는 것이다.

선거공간에서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각종 논리와 정치적 다툼이 횡횡하지만, 현재로서는 인터넷에서의 유력 정당 또는 후보가 오프라인의 결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6.2 지방선거 당시 한국에서 트위터를 이용하는 정치인 중 가장 많은 followers를 거느렸던 노회찬(@hcroh, 2010년 6월 24일 현재 followers 58,597명) 진보신당 대표의 경우 서울시장 후보 득표율은 3.26%에 머물렀다. 유력 후보였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각종 TV토론회를 보이콧하며 자신의 약점을 감추었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등의 기존 유력자들은 전통적 매체가 가지는 힘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 힘을 유지하는데 집중했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르려는 이들은 새로운 매체(twitter)를 적극 활용했다. 6.2 지방 선거에서 소수 정치세력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기반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언론의 문을 열려 했다면, 수권세력은 기존 매체를 적절히 활용하는 한편 새로운 매체에 대해 지지세가 확인되지 않은 한 전혀 개입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아직 트위터는 한국 사회에서 그저 지저귐(twit)에 불과하다. 2010년 민주당 신년 기자간담회 당시 정세균 대표가 민주당을 ‘트위터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었고,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SNS에 의무 가입시키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SNS에 대한 정당을 비롯한 여타 사회적 관심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소통과 대안과 다양한 이야기들의 섞임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정당은 SNS를 활용할 생각이 있었지, 소통-변화 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그저 몇몇 정치인들의 각개약진만이 돋보였을 뿐이다.

독설닷컴http://poisontongue.sisain.co.kr을 운영하는 시사in의 고재열(@dogsul)기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박사모’가 트위터스피어에 들어온다면 트위터의 정치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 이다. 그러나 이는 솔직히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트위터러들의 갈등 양상이 본격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는데, 보수 세력의 트위터 입성은 오히려 반길 일이다. 정치적 유사성을 지닌 이들이 끼리끼리 뭉쳐 자신들의 이야기만이 옳다는 착시효과 속에서 찻잔 속의 태풍을 여유로이 즐기는 것 보다는 다양한 의견과 대립, 갈등, 섞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치지형과 담론을 올바르게 반영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변화의 중심

선거시기 인터넷의 이야기가 그저 지저귐이 아닌 변화의 중심으로 평가되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에서 선거와 인터넷의 열풍이 불던 것은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당 내부 경선의 극적인 승리, 개혁적 국민정당의 해체한 유시민의 노무현 캠프 입성,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와 선거 하루 전 단일화 결렬 등이 주요 오프라인 이슈였다면, 서프라이즈로 대표되는 친노진영의, 본격 정치사이트의 등장과 지지자들의 이야기 퍼뜨리기가 온라인 이슈였다. 2004년 제17대 총선 역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초유의 탄핵사태를 끼고 진행되었다. 거기에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성, 탄핵반대 촛불집회 등의 수많은 오프라인 이슈가 있었다. 오프라인의 반향으로서 온라인이 들끓고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지 그 역은 아니었다.

2004년 이후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인터넷의 여론은 좌우지간 이명박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과 관련된 수많은 비판 자료들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사람들은 이명박을 비판함에도 대안으로 지지할만한 이가 없음에, 야당의 무능을 탄식하며 대선은 조용히 끝났다. 이런 분위기는 2008년 4월 총선에까지 이어져 여대야소의 형국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은 이명박을 비판했지만 그것보다는 야당의 무능과 우리 사회의 양분된, 협소한 정치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던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인터넷의 여론은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오프라인의 실체를 요구한다. 그러한 연결이 불가능하면 인터넷의 여론들, 이슈들은 한 시기의 실현되지 않은 유의미한 주장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위의 예들과 달리 인터넷의 웅성거림이 직접적인 움직임을 형성한 사례라면 2008년 5월부터 7월까지의 촛불집회를 들 수 있다. 정부의 졸렬한 한미FTA협상,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소규모 학생들의 집회에서 연인원 100만이 넘는 대중 집회, 대통령의 사과, 7월의 강경 진압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소통하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온라인 여론 형성 → 오프라인 직접 행동 → 온라인 토론/전략수정 → 오프라인 직접 행동의 선순환 고리는 점점 커져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다만, 촛불 이후 정치일정이 없었으며 대의제 의회민주주의 아래에서 대중의 주장은 마땅한 분화구를 찾을 수 없었다.

선거 국면에서의 인터넷 소통은 주요 전략지점으로의 집중, 정치적 피아구분 등의 역할을 하며 가장 주요하게는 기존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정책 평가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소통을 통해 사람들이 이전의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고 변경하는 과정이 인터넷 정치를 이룬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합리적 판단, ~빠(눈감고 찬양) 혹은 ~까(덮어놓고 비난), 그리고 분열증적 태도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이루게 된다. 1992년 14대 대선까지 한국의 선거가 거대 군중유세의 세 싸움이 가시적인 힘겨루기의 주요 양상이었다면, 이제 예전의 세 싸움 양상은 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이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물리적 기반은 한국사회에서 보편화 되었다고 판단 할 수 있지만 사용에 있어서 계층별, 직업별, 연령별, 교육정도별 차이가 뚜렷한 매체이다. 사회변화의 흐름에 따라 인터넷의 흐름이 변화하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를, 특히 한국사회의 선거에서 긍정하기는 어렵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승인된 변혁의 방식이 아니다. 인터넷이 이례적으로 선거 이슈로 들썩인다면, 그것은 오프라인에서 그만한 정도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좁게 이야기 하자면 아직 인터넷의 담론은 고급정보에 수월하게 접근 가능한 기존 언론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트위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위터의 수많은 트윗들은 갓 올라오거나 눈여겨보지 못한 기사, 블로그 포스트의 링크와 그에 대한 짧막한 평들이다. 유의미한, 이야기 될 만한 것들은 아직 주류언론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일본 정치를 관료가 움직인다고 말한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 정치는 누가 움직이느냐고 질문한다면, 한국정치는 언론이 움직인다고 말할 것이다”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의 말은 현재까지는 유의미한 해석이다.

다시, 소통

우리는 인터넷-소통을 통해 변화되었는가? 선거시기 사람들은 인터넷을 참조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들을 변화시켜 왔는가? 적어도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의견을 접하는 이들은 변화되었을 것이다. 변화라는 형태가 굳이 투표소의 기표행위까지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구석에 몰리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열광과 탄식을 반복 속에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들이 오프라인으로 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응집되어 사회변화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이 중요한 가능성임을, 그리고 아직 가능성뿐임을 알고 있다.

한편으로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고 노동조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interaction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기존 매체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다. 이야기 참여자로서, 창조자로서의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들을 메세지의 수용자로 남게 하고 이는 기존 매체의 공고화와 정치적 괴리를 낳는다. 한나라당의 이해와 전혀 다른 삶을 가진 이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작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을 어떻게 인터넷 속의 다양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갈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들이 다가갈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다시 한 번. 소통은 괴로운 과정이며, 일정부분 자기파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세계관, 인식과 다른 정보들이 쏟아질 때 대부분의 인간은 인지부조화 상태를 평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극단적인 거부, 폐쇄의 형태만 아니라면 이러한 평형의 노력 속에 인식은 확장되고 이해의 폭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자신과 수많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간 안에서도 차이와 동일성은 계속 갈라지고 얼개가 되어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끌어당긴다. 이 얼개 속에 누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식의 건전한 선언으로 덮어 둘 수 없다. 우리는 소통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며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저 오늘의 결론일 뿐이다.

 

201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