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

- 현실 세계에서 소화받은 사람들 사이버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다.{/}[특별기고] 인터넷 게임의 사회학

By 2010/07/2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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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우려 속에 점증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 중독 현상은 우리 사회가 지금 당면한 문제는 아니다. 물론 과거 어느 시기에도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식견과 인간 사회의 기록들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유희성과 수많은 익명성을 향한 도피 경향, 몰입에 수반되는 광적 집착, 우연성과 필연성의 적절한 조합에 따른 (운칠기삼運七技三으로 표현되는) 진정한 의미의 행위예술 대한 풍부한 사례들을 알려준다. 예수의 사도들은 다락방에 모여 그들의 중책을 맡길 자를 선발할 때, 이성과 객관적 자료들을 사용하기 보다는 제비뽑기를 하였으며, 동굴 벽화에 그려진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원시인들은 인류 최초로 분배에서 소외받은 자들의 모습이다.

이제 논의를 좁혀서, 어느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갓난아기에게 음식을 주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다는, 일부 외톨이들이 방구석에 쳐 박혀 어미 아비도 몰라보게 만들었다는, 수많은 백수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망각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회인, 기업인, 지식인, 문화인들이 혀를 끌끌 차며 도대체 왜 이 따위 것들에 목숨 걸며 달려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 MMORPG (Massively Multyplayer Online Role-Playing-Game)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게이머들이여 침을 뱉어라.

  • 게임(Game)은 일종의 부정이며, 그것으로의 중독은 부정적인 힘의 표출이다.

역할 분담 놀이가 교육학적으로 지니는 상호 협력과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 따위는 잊어버리자. 교육은 본질상 긍정적인 것이었고, 제도 속에서는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었다. MMORPG가 지니는 문자적인 의미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논의도 생략하자. ‘핸드폰(Hand-Phone)’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핸드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 것처럼.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개인적인 지평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도 의미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다른 이들이 많이 다루었고 다룰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MMORPG가 부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다. 어떤 종류의 부조리인가. 기회와 분배의 불평등, 배경에 따른 사회적 선입견, 자연이 허락한 다양성에 대한 인간들의 조롱이다.

  •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간단한 MMORPG에 대한 사전 분석을 가해 보자.

MMORPG는 크게 3가지 체계로 나뉜다. 1. 기술체계(Technical System) 2. 생산체계 (Producing System) 3. 소통체계(Communication System). 기술체계는 게임을 시작할 때, 참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종족과 직업들, 사냥을 통해 성장하면서 습득하는 사냥기술 등으로 구성된다. 생산체계는 게임 안에서 주로 사냥 등을 통해 게임에 필요한 재화(아이템, 경험치 등)들을 습득하는 과정을 일컬으며, 사냥방법과 행위등도 이에 포함된다. 또한 소위 말하는 Player Killing의 경우에도 이를 통해 어떠한 재화의 직, 간접적인 소득이 있다면, 이 또한 생산체계에 편입된다. 마지막으로 소통체계는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개발자 대 플레이어’, ‘게임 서사 대 플레이어’ 등을 아우르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직·간접적인 소통행위를 가리킨다.


폐인양성게임이라는 비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액티브 유저 850만명, 전세계 MMORPG유저 62%가 플레이 하는 블리자드사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플레이 화면.
(사진은 본 글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을 밝혀둡니다)

 

세상을 닮은 게임, 그러나 세상과 반대로 돌아가기에 몰입된다.

  • 게임에 참여한 한 인간은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되는가.

참여자는 먼저 종족과 직업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선택하게 되며, 종족과 직업에 대한 불평등은 게임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개발자들의 조정을 거쳐 제거되어진 상태이다. 또한 모든 참여자는 동일한 조건과 기반에서 생산 활동을 시작하여 성장하게 마련이다. 물론 늦게 참여한 자와 먼저 참여한 자와의 불평등, 오프라인 상에서의 배경이 있는 참여자와 없는 참여자 사이의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는 신규 참여자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이기에 현실 사회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강제조정이 발생하게 되는데, 기존 참여자와 신규 참여자가 모두 만족 할 수 있는 차원에서 개발자가 결정하게 된다.

참여자들은 게임의 생산체계 속에서 거의 절대적인 노동가치론의 실현을 맛보게 된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도 많은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장시간 사냥을 해야만 계정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의례 만들어지는 이러한 시스템은 투하 시간대비 획득 경험치를 정비례 관계에 놓이게끔 만든다. 또한 투하 시간 대비 경험치 획득량을 늘릴 수 있는 효율적인 생산도구-아이템 역시 요행이나 한건으로 획득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의 아이템 해킹이나, 현금거래 등을 이야기 하자면 양자의 양상은 좀 다르다. 아이템 해킹은 게임 존속의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오는 것으로 판단되나, 현금 거래는 오히려 게임을 더욱 확대 발전시킨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도 위의 논평은 유효하다. 아이템의 현금성은 그 자체로 노동가치론의 배경이 되지만, 아이템 해킹에 의한 무노동 획득은 게임의 존속을 위협한다. 개발자간 경쟁이 심화되면 해커를 고용해 상대 게임에 아이템 복사 프로그램을 유통시키기기도 한다는 공공연한 이야기들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디아블로2에서 화폐로 유통되전 조던링의 스크린 샷.
디아블로2는 조던링 복사로 인해 게임경제의 붕괴 이후 급속한 게이머 이탈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이후 블리자드사는 복제된 아이템 삭제 및 계정 블럭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사진은 본 글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을 밝혀둡니다)

그러나 게임은 본질적으로 우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일부 시스템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역사 참여간의 평등을 저해시키는 측면이 아니라 증가 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카오스(Chaos)의 의미는 평등” 이라는 조커(영화 “배트맨”의 악당)의 멘트는 참으로 사실이다. 즉, 생산체계에 일부 사용되기도 하는 우연성은 기본적인 게임 경제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일정한 자격 요건이 충족된 참여자들은 극악의 확률로 기상천외한 아이템을 손에 놓을 수도 있게 되는데, 이는 누구나 다 일정 요건만 충족된다면 획득 가능한 꿈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격은 게임 경제 안에서 건전하게 이룩될 수 있다.

일찍이 루소가 우리에게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인간의 불평등은 사회적인 기원과 자연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는데, 자연 역시 인간에게 평등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답고 강인하고, 뛰어난 지능을 지니고 태어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게으르고 방탕하며, 추하고 어리석게 태어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가장 현명한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보다 백배, 천배, 수 만 배 더 뛰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게임 안에서는 가장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게임 참여가 가능한 자라면) 사이의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리니지2 클로즈 베타 당시 610명을 PK(Player Kill)하고 GM(Game Master)에게 강제적으로 캐릭터를 삭제 당한 WEZAhttp://blog.naver.com/drakedog/90084246176. 이후 NC소프트는 리지니2의 PK조항을 변경한다.
(사진은 본 글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을 밝혀둡니다)

모든 사이버 현상들이 그러하듯이 MMORPG 역시 익명성의 논의에서 제외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익명성’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은데, 하나의 게임 캐릭터(한 사람이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다 하여도)는 하나의 인격을 지니고 있으며, 생성된 후 동일한 이름으로 유지되는 자기 동일성을 가진 역사를 지니게 되며, 존재론적으로 오프라인에 위치한 인격에 의존한다. 일단 게임 참가자가 게임 안에서 자신을 토대로 한 인격을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투영시켜 만들었던 밝은 면만을 투영시켜 만들었던 간에) 생성시키게 되면, 그것은 기존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발언권을 지니게 된다. 흔히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사이버상의 인격에 몰두하는 원인을 이를 통해 음미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수많은 이름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면들을 발산하는 점과 대비시켜 볼 때, MMORPG는 주로 몇몇의 이름으로 나누어지는 통일된 인격으로 인정투쟁을 벌이는데 몰두한다.

현실은 게임,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그런 게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존재를 인정받고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중산층과 지식인들을 열외로 한 사회적 취약 계층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은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들은 여기서 얻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포기했다. 아니다.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들은 포기하지 못해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저기에 몰두한다. 부정적인 힘은 부정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가능성을 담고 있는 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정의를 원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주 단순한 법칙 “일한 만큼 번다”를 실천하고 있는지, 게임방의 죽돌이들과 한 달에 한두 번 외출하는 인터넷 폐인들과 직장이 끝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친구를 보면 알게 된다. 우리 사회를 하나의 게임으로 환치시켜본다. 누구를 위한 게임인가. 무엇을 위한 게임인가. 이런 질문 따위는 필요 없다. 한 가지만 묻는다. “이 게임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시장원리로 말하건대, 우리가 살고 있는 게임은 시장에서는 살아남을 확률이 제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게임을 부정하고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이 게임은 유지되고 저 게임도 유지된다. 그러나 이 부정적인 힘들이야 말로 우리 미래를 조금이나마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201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