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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카드 대신 날아온 엄마의 문자 메시지(SMS)

By 2004/01/02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바이러스

제리

한 1년 전 즈음, 내 휴대폰에 엄마의 이름으로 된 첫 번째 문자 메시지(SMS)가 들어왔다. 짐작하기로는 그저 엄마가 불러주는 말을 누나가 대신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으면서 엄마가 직접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곧 50세가 되는 엄마는 문자 메시지를 왜 배웠을까?
가족들, 특히 자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체로 이용하려고 한걸까? 아니면 우리처럼 그저 현존하는 기술이 있고 그걸 배울 수 있으니까 이용하게 되는 걸까? 물론 전자에도 어느 정도 의미를 둘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후자일 것 같다. 이전 세대와 기술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은 역시 편견이었나?
그나저나 엄마가 첫 번째로 보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은 그리 낭만적이진 않았다. 아니, 가히 충격적이다. “빌려간 돈 언제 갚을 거니? 엄마” 그래, 그 때 나는 엄마가 나에게 저 말을 하기 위해서 문자 메시지를 배웠을거란 생각까지 했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방 문틈 사이로 엄마가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은 아직 없지만, 엄마와는 그 후로도 문자 메시지를 종종 주고 받았다.

지난 20일은 내 생일이었지만 이틀 전 독감으로 뻗어, 생일 전날 파티를 해주겠다며 나오라는 친구들에게도 갈 수 없는 우울한 날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직장에 가고 낮에 혼자 있는 동안, 방에서 전기장판을 가장 뜨겁게 달구어 놓고 이불 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땀을 뻘뻘 내며 책을 읽는데, 어느 정도 있으니까 휴대폰에 축하 메시지들이 차곡차곡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글도 있고, 의례적인 말도 있고, 독감으로 인해 다니게 된 병원에서 보내준 메시지도 있고. 다양한 축하 메시지 가운데 엄마의 문자 메시지는 첫 번째 문자 메시지 이후 나를 다시금 즐겁게 했다.

_iiiii_
[_Happy_] [_*_*_*_*_*_]
[_Birth-Day_] [_#_#_#_#_#_]

난 처음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처럼 깜짝 놀라며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모티콘을 사용해 표정 이외에 복잡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걸 보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이 그림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일 거다. 생일을 미역국 한 그릇 없이 집에서 혼자 보내면서 문자 메시지로 생일 축하를 받다니 누구는 사람 사는 맛 안 나는 인정 없는 세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문자 메시지가 지금까지 면전에서 직접 말로 하는 어느 축하 인사말보다 더욱 좋았던 것은 어디서 나온 마음일까? 문자 메시지라는 간단하고 빠른 소통 수단이 새삼스레 좋은 것이라 느껴졌다. 모자 관계가 좀 더 쿨(cool)해질 것 같아서였을까? 아님 혼자 병상에 누워있는 내게 보내준 이모티콘이라는 노력이 가상하고 깜찍해서였을까? 밖에서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 생일을 챙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혹은 가부장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색하게 둘러앉아 노래 부르고 촛불을 끄지 않아도 될 거란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