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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북킹! 쓰레기가 되는 삶들

By 2010/06/1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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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되는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지그문트 바우만 저/정일준 역, 새물결, 2008

쓰레기가되는삶들

정보인권이 정보주체에게 외면받고 있습니다. 지역주민이 CCTV를 적극 환영하는데 외부에서 그것을 감시라고 외치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패킷 감청이 사생활을 몰살시킬 것이라고 규탄할 때, 정보주체가 맞춤 광고를 위해 선뜻 감청에 ‘동의’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감시’는 정말 억압이기만 한 것일까요? 시민들은 왜 감시를 환영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일까요? 푸코라는 학자는 일찌기 파놉티콘(원형감옥)을 연구하며 감시 문제를 고찰하였습니다. 죄수(주체)는 간수(권력)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감시의 시선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규율을 내면화하고 훈육됩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빅브라더론입니다. 그렇지만 현대 감시사회에서 CCTV와 데이터베이스는 너무나도 은밀하게 작동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과거와 가장 달라진 점은 감시의 목표가 ‘훈육’이 아니라 ‘배제’라는 점에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배제’를 위해 작동하는 감시를 ‘뉴 빅브라더’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도 감옥과 정신병원은 격리의 공간이었지만, 격리된 ‘비정상’은 ‘정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임시적 상태였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범죄자나 노숙인 역시 산업 예비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행처럼 쓰이고 있는 ‘잉여’라는 개념은 예전처럼 ‘정상’으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잉여로, 인간쓰레기로 취급합니다. 이때 전자감시의 목표는 ‘생산적인’ 보통의 시민들과 그들의 재산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지키는 데 있습니다. 감시원들이 CCTV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유는 ‘쓰레기’들을 구분하고, 정의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 공간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옛날의 빅브라더는 사람들을 규율에 ‘포함’시키기 위해 통제하였습니다. 새로운 빅브라더의 관심은 ‘배제’입니다. 쓰레기들은 쓰레기장에만 모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감옥은 수용자를 훈육함으로써 공동체로 재통합할 수 있다는 교정의 이상을 더 이상 꿈꾸지 않습니다. 오로지 사회적 불량품을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창고’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범부터 DNA를 채취하여 평생 국가가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것이 용납되고, 보통 시민들은 안도하는 심정으로 DNA 데이터베이스의 도입을 찬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옥을 꽉꽉 채우는 형벌 국가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게임에 참여할 수 없는 무능력이 갈수록 범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더욱 나쁜 소식은 오늘날 오래된 빅브라더와 새로운 빅브라더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빅브라더는 사회 감옥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크게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빅브라더는 감옥을 위한 담장을 치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공고화하는 데 철두철미합니다. 불안하기만 한 시대에 시민들은 담장에서 위안을 얻기 때문에, 빅브라더를 반깁니다.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진부하지만, 역시 희망은 연대에서 찾아야 합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 두 빅브라더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인가, 포함/배제의 게임이 인간 생활을 영위하는 유일한 방식인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201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