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인터넷대란’과 정보소비자문제

By 2003/12/2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보사회 돌아보기

박 찬

지난 1월 25일 일어났던 대규모 인터넷서비스 장애사건은 이른바 ‘인터넷대란’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 던진 사회적 파장이 컸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정보화’라는 화두로 추진해 왔던 사회변화의 결과물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건과 마찬가지로 기본을 무시한 양적·고속성장의 당연한 산물이었다.
MS-SQL(데이터베이스)의 보안버그를 이용한 웜의 무차별 네트워크 공격과 이로 인해 발생한 네트워크 트래픽을 제어할 수 없었던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의 열악한 서비스가 낳은 ‘인터넷대란’은 우리 사회에서 정보화가 진행되어 오면서 내재되어 있던 여러 정보사회문제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초고속인터넷사업자에 손해배상판결 내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주요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네트워크 관리에 대한 정보독점 문제다.
이번 ‘인터넷대란’ 직후 정보통신부가 구성한 합동조사단의 인적구성 역시 대부분 관련기업에서 파견한 기술자들로 구성되었고, 이렇게 구성된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결국 ‘인터넷대란’사건의 과실을 소비자의 낮은 보안의식문제로 귀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에 녹색소비자연대는 ‘인터넷대란’으로 발생한 소비자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통신위원회에 재정신청을 통해 진행함으로써 네트워크관리에 대한 기업의 책임문제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 기업이 ‘영업상의 비밀’ 또는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감춰놓은 인터넷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알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소비자정보요청협의회를 통해 국내 ISP업체에 대한 소비자정보를 요청하였다.
그 결과는 지난 10월 13일 통신위원회에서 ‘문제발생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감안하고 사후조치에 있어서 불가항력에 대한 입증이 불충분하므로 약관상에 명시되어 있는 손해배상금액의 1/3만 지급하라’는 재정신청결과와 16개 ISP업체로부터 소비자정보요청협의회를 통해 요청한 정보의 일부를 받아내는 정도의 성과를 얻는 데 그쳤다.

인터넷대란은 MS의 시장독점으로 인한 ‘시장 실패’가 원인

참여연대와의 민사소송을 앞두고 있는 ‘인터넷대란’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지만, 그간의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정보화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정부와 시장의 실패’의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공공서비스인 인터넷서비스를 시장의 자율에 맡긴 정부는 ‘인터넷대란’사건을 통해 스스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통제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대란’사건의 원인이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시장독점과 이로 인한 ‘시장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국내시장의 현 상황, 공공서비스문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국내 기업의 보호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보화정책 등은 한국사회 정보화정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서비스는 정보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에, 영리목적으로만 움직이는 기업에 의해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장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중복투자·과당경쟁을 해온 인터넷서비스시장은 ‘인터넷대란’을 통해 ‘인터넷서비스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과제에 대해 이제야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기업들은 현재 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터넷 공공서비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인터넷서비스사업자에게

안정적이며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할 공공의 서비스인 인터넷서비스. ‘인터넷대란’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인터넷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통제문제는 앞으로 정보사회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지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 있어서 인터넷서비스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ISP가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으로 기업이 서비스를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기 힘든 현 상황에서 시장에 맡겨져 있는 인터넷서비스를 공공재로써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통제력 강화와 더불어 시장에서 기업에 대항할 수 있는 소비자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의 권리라는 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실정이고 정보소비자문제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역량 역시 보잘것 없는 상황이다.
정보상품에 대한 PL법 적용, 집단소송제도의 도입 등 현실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어져야 할 시점이다.

정보운동, 이제는 소비자문제에 눈을 돌려야

그동안 우리의 정보사회에 있어서 ‘정부와 시장의 실패’에 대해 견제해 온 정보운동의 주요영역은 사적 정보의 보호와 공공정보의 공개, 권력이나 자본에 의한 통제 반대 등 정보화와 관련된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이미 정보사회가 시장의 논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이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사용자간의 커뮤니케이션마저도 기업의 사적소유물로 상품화될 정도로 정보의 상품화가 고도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보소비자운동은 정보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네티즌이 정보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 소비자운동과 정보운동의 더욱 광범한 연대로 정보사회의 ‘정보와 시장의 실패’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