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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정원미술관’ 관람기{/}잃어버린 시간을 일깨워 준 미술관

By 2003/12/2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문화

김지희

이게 웬 떡이냐? 얼떨결에 물 건너 일본 갈 일이 생긴 ‘나’. 기간 중 하루는 미술관 관람일정으로 꾸렸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눈에 띈 이름, ‘정원 미술관’!. 앗, 정원이라면 바로 그 ‘garden’이 아닌가? 돌과 분재가 있고 호수가 보이는 그 곳. 온통 상상의 나래를 펴며 지도와 기타 정보를 출력했다.

여기 미술관 맞아?

보통의 경우 우리는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간다. 따라서 미술관은 편의시설 좋고, 작품 전시가 용이하도록 깨끗하면서 넓고, 벽과 천장은 단색 처리된 것이 좋다. 그러나 가끔 미술관 자체가 아름다워 눈길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도쿄도 정원 미술관은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1933년 완공되었을 당시 이 건물과 정원은 ‘아사카’라는 이름의 일본왕자가 거처하게 될 조향궁(朝香宮)이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영사들의 저택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나보다. 그러다가 정확히 50년이 지난 1983년에 드디어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된다.
결국 ‘일본의 정원 양식’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그저 “정원이 있는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실망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과 건물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솜씨 좋은 이곳은 예상치 못한 감상거리를 제공하였다.

도쿄에서 파리를 관람하다

나의 기대를 벗어난 또 하나의 사실은 건물 내부가 1920년대와 30년대 유럽풍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가 설계한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는 전반적으로 고상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Art Deco Style’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1920년대와 30년대 프랑스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30년대 지어진 건물에 20년대와 30년대 작품들, 그야말로 옛 파리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
방에 들어설 때마다 눈에 띄는 건 서로 다른 모양의 샹들리에들이다. 샹들리에 중에는 주변 천장을 음각으로 새겨 천장과 조명이 함께 작품으로 구성되는 것들도 몇 가지 눈에 띄었다. 한편 거실로 썼을 법한 방에는 유리로 된 문이 있었다. 건물의 유리창은 투명한 것으로 처리한 반면 유리문은 불투명 유리로 처리되어 있는데, 마치 나무에 조각을 하듯 수려한 문양이 눈에 띄었다.
토파즈를 깎아 항아리를 만든 작품은 한자 ‘山’ 모양의 조각을 품고 있어 마치 동양화 화폭을 화병에 옮겨놓은 것 같아 보였다. 벽에 걸린 유럽식 신선도 역시 눈길을 끌었는데, 언뜻 보기에 그 그림은 3가지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림의 윗부분은 구름과 산이 보이는 천상계, 중간 부분은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족이 뛰어 다니는 중간계, 아랫 부분은 인간들이 호숫가에서 머물러있는 인간계였다.
이런 값비싼 소재, 화려한 문양들 말고도 현대적 감각에 뒤지지 않는 작품들도 몇 가지 있었다. 특히 책상과 책장들 중에는 특이한 수납형태를 가지고 있어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건물과 정원이 하나되다

그럼에도 이곳이 일본임을 잊지 않게 해준 것은 역시 건물과 정원의 조화로움이다. 꽤 넓은 면적의 정원에는 나무, 꽃, 잔디, 호수, 다실(茶室)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분재로 모양을 만든 것도 있어서 자연미보다는 깔끔하고 건물에 어울리는 양식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이 생각나다

이번만큼 예상에서 벗어난 관람이 있었던가? ‘일본의 정원 양식 관람’ 계획이 ‘프랑스 인테리어 관람’ 계획으로 돌변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문득 ‘한국에도 이런 문화가 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궁(宮)이었던 이 미술관은 이미 도쿄라는 거대도시 한편에 자리잡은 한가롭고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였다. 기념과 관람의 의의를 가지게 되는 장소라는 건 역사 속에서 문화가 형성된 자리를 뜻한다. 그리고보니 한국은 독립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20세기 초·중반의 문화라는 공간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시기의 문화란 존재하지 않았거나, 고의든 타의든 소멸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문화의 형성을 소멸시키는 것, 전쟁이란 건 바로 이런 거구나’. 문화를 찾을 수 없다는 건 결국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결과 아닐까?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