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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교육’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라?

By 2003/12/2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김칠준의 정보인권

김칠준

한때 ‘인권’이라는 단어가 기피의 대상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인권’은 반독재투쟁을 상징하는 언어였고, 소수 운동권 인사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경찰 등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거론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며, 일반시민들도 인권이라는 말을 낯설어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사회의 인권수준은 항상 저 낮은 곳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치와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인권이라는 말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유행어가 되었다. 노동인권, 여성인권, 장애인인권, 학생인권, 정보인권 등 우리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을 외치며 ‘인권세상’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써 삼고 있다. 일반시민들도 걸핏하면 인권타령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가권력에 대항해서 거리낌없이 인권을 말하고 있고,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들도 경쟁적으로 인권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함으로써 인권세상을 향한 큰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기관, 모든 사람들이 인권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기며, 인권을 각종 행위의 준거로 삼는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인권 세상에 대한 통일된 인식을 갖거나 절절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상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인권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정립된 이론과 인권침해유무를 판단할 잣대들을 갖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권세상’에 대해서는 그 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인권세상’의 참모습을 접어둔 채 개별적인 인권의 문제로만 환원시켜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정보인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무릇 ‘인권세상’이란 ‘모든 사람이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 세상’, ‘자유로우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맘껏 발휘하게 하면서도 누구나 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정보인권이란 이러한 ‘인권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정보화과정에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의 총화이며, 동시에 정보화사회에서 이러한 권리들이 보장됨으로써 펼쳐질 인권세상의 본질을 말한다. 따라서 정보인권의 핵심적인 내용 중에 자기정보통제권과 프라이버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권리를 인권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그동안 NEIS를 다룸에 있어서 정보인권의 개념을 협소하게 이해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권’과 ‘교육’을 대치되는 개념으로 설정하고, 학생들의 인권이 학생들의 교육필요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인권보장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양보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함정이 숨어있다.
우선 이러한 주장은 NEIS 문제에 있어서의 학생들의 인권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협소한 프라시버시권으로 한정시키려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들의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인권(프라이버시권)침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권을 다른 목적을 위해 양보될 수 있는 가치로 격하시킨다.
그러나 인권과 교육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인권은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맘껏 발휘하게 하면서도 누구나 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는 세상에서 살 권리’이고, 교육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인권세상의 가치를 알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개성을 살리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의 가치와 교육의 가치는 하나이지 결코 갈등과 배척의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교사가 이러한 의미의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학생으로부터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은 결코 인권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단지 교사가 수집하는 정보의 범위나 관리하는 방식이 과연 교육의 목적에 합당한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뿐이다.

인권과 교육이 대치되는 것으로 보는 주장이 갖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교육의 필요성’에 ‘교육행정*의 효율성’을 슬그머니 끼어 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육행정의 효율성을 마치 인권과 대등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격상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권과 교육행정의 효율성이 동일선상에 놓여있는 대등한 가치일 수는 없다. 당연히 인권의 가치가 우선해야 한다. 그런데 NEIS는 말 그대로 ‘국가교육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혹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교사가 수집한 학생에 관한 정보를 전산화하고 집중시킴으로써 효율적인 교육행정과 교육정책의 입안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교사가 학생을 어떻게 훌륭하게 키울 것인가 하는 교육의 본질과는 직접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NEIS를 통해 도모하려는 교육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인권의 가치가 일부 유보되어야 하는가.
그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인권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