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간첩법’ 형법 일부개정안 반대한다
– 국정원 권한 남용으로 간첩혐의자 양산과 민간사찰 등 인권침해 우려
1. 지난 11월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위원장 김승원 의원)가 형법 제98조 개정과 제98조의2 신설 등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 논의를 앞두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간첩죄의 구성요건을 기존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는 행위’에서 ‘적국,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이하 ‘외국등’)를 위하여 지령, 사주, 그 밖의 의사 연락 하에 국가기밀을 탐지 · 수집 · 누설 · 전달 · 중개하는 행위’로 수정 · 신설하는 것이다.
2.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적국 이외에 외국 등으로 대상을 확장하면서도, 모호한 의미의 국가기밀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종국에는 국가정보원의 국내 사안에 대한 폭넓은 개입을 용인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3. 대법원은 간첩죄의 ‘국가기밀’의 개념과 관련하여 비공지성(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정보)과 실질비성(실질적인 비밀정보)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그 기밀이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설될 경우 반국가단체에는 이익이 되고 대한민국에는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명백하다면 이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97. 7. 16. 선고, 97도985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례의 법리를 그대로 개정안에 적용한다면 외국 등과 의사연락하는 국민 누구라도 국정원의 간첩혐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4.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간첩법’ 개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함께 당론으로 추진해 왔다. 이번 개정안은 그 흐름에 따른 것으로, 만약 국민의힘 당론대로 국정원의 수사권까지 복원된다면 모든 국민에 대한 간첩 조사를 넘어 간첩 수사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완전한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정보기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5. 따라서 국가기밀의 개념에 관하여 법률에 아무런 제한요소를 두지 않은 채, 대법원 판례의 기존 해석을 전제로 하는 이 개정안은 국정원의 국내 민간영역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같은 개정안이 입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독일 형법은 국가기밀의 개념을 ‘독일연방공화국의 외적 안전에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한정된 범위의 사람에게만 그 접근을 허용하고 타국에 대하여 비밀로 하여야 할 사실, 물건, 지식’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최소한의 실체적 · 절차적 요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6. 다극화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 개정으로 인해 국가비밀정보기관의 무고한 간첩혐의자 양산 위험과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사찰 등 권한 남용을 감수할 수는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에 너무나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시급한 재논의를 촉구한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