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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종회

By 2010/06/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자의2할 타의8할로 진보넷 대표 자리에 수 년째 눌러앉아 있는 이종회 氏.

워낙 공사가 다망한 터라 진보넷 상근 4년차인 홍모 활동가도 그의 얼굴을 본 횟수를 발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데….
이처럼 가뭄에 콩나듯 보이는 이종회 대표의 얼굴을 올해 초부터는 아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12월 모 언론에서 진보넷을 한국의 3대 좌빨 단체(응?)로 지목한 터라, 혹시 반정부 괴뢰 도당의 수괴로 지목돼 잡혀간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되었으나, 걸쭉한 밀양 사투리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경찰도 구워 삶아대는 전적을 보았을 때 신빙성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궁금증이 더해지다가 날이 너무 더워져서 궁금하기도 귀찮아 걍 사그러지고 있던 때 이종회 대표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 이종회 대표1오 랜만이다. 평소에도 사무실 출입이 뜸하기는 했으나, 올 초부터 발걸음이 아예 뚝 끊겼다. 무슨 일인가?

    이제 지난 10년간 구축한 사무실 노동감시체제는 완벽하다. 누가 뭘 하는지 다 아는데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시간도 남고해서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못했던 숙제하고 있다. 쥐 잡으러 다닌다. 이 나이에 철들었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쥐 잡는데 ‘딱’이라 해서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학살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완장찼다.

  •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00일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 돌아가신 고인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용산참사는 이명박정권이 경찰을 동원하여 철거민을 학살한 사건임이 명백하다. 그래놓고도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고 철거민과 조합의 ‘사인(私人)간의 관계’라면서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유족들과 범대위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투쟁을 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저러다가 지쳐서 떨어지게 놔두라”고 하면서 뒤에 숨어있다.
    쌀이 있는 광에 사람이 들어오면 숨어서 눈만 굴리고 있는 쥐새끼를 연상하면 된다. 이명박은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면서 작년 촛불 위기를 잘 넘어갔다고 생각할텐데 이번에는 임자 만났다. 유족도, 범대위도, 사제단 신부도 200일간 장례를 못 치렀지만 오히려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 본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수배 전단지를 본 적이 있나? 경찰이 들고 있는 것을 봤는데, 실물보다 사진이 잘 나온 것 같았다. 본인 생각은?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아예 브로마이드를 들고 내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아예 안 돌아다니고 모처에 눌러앉았다.
    인물값 한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보통사람들은 잘 모른다.

  • 이종회 대표2평소 ‘(국제)건달’로 알려져 있다. 건달 외길 인생 30년 동안 밖으로만 돌아다녔던 터라 수배 생활의 어려움이 클 것 같다.

    건달생활 화려해 보이지만 내공이 있어야 한다. 웬만한 국내외 갈만하고, 놀만하고, 먹을만한 곳을 입력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배생활하면서 내공을 키운다.
    86년에 2년 정도, 91년에 두어달 정도 수배생활을 하면서 피나는 수련을 거친 적이 있다. 건달생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면서 떨어진 밑천 보충하고 있다.

  • 이종회 대표와 함께 있으면 절대 경찰에 연행되지 않는다는 신화의 소유자라고 들었다. 그런데 수배 생활까지 감수해가며 용산 문제 해결 활동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래 경찰만 보면 다리가 후덜거려서, 집회를 나가도 잘 안 잡히는 자리를 찿는 것은 지난 30년의 노하우에서 나온다. 그 노하우는 시청각에 후각을 더한 후 손자의 36계를 접목한 것이라 달인수준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터득할 수 있다.
    근데 지난 광주민중항쟁 이후 최대의 학살이랄 수 있는 이번 용산참사인지라, 잠시 정신줄을 놓는 사이 이렇게 수배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는 정면돌파를 해서 맹박이 멱살을 쥐고 흔들어 패대기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과거에 이번 만큼이나 투신했던 활동을 꼽는다면?

    이번하고 비슷한 사례로 96·7년 <노동법안기부법날치기개악범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 2001년 <대우자동차정리해고저지범국민공동투쟁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했었다. 노동자투쟁이나 민주주의, 인권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있는 곳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이후 대책위는 그만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근데 5명이나 불에 타서 돌아가시는 워낙 엄청난 사건을 TV화면으로 보고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나서게 되었다.

  • 이종회 대표3언 제쯤 수배 생활이 마무리 될 것 같은가? 그 때가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챤스라고 생각했는지 수배 중에 이사를 해버렸다고 한다. 집을 모르니 어디 갈 곳도 없고…; 동해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명박이 버티고 있어서 아마 물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길게 한번 다녀오고 싶다. 요즘 몸이 많이 허해서 용왕을 못 만나면 산신이라도 만나서 기를 좀 받아야겠다.

  • 진보넷 활동가들이 여름 MT를 가려는데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할 이종회 대표가 수배 중이라 MT도 못가고 있다. 진보넷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998년 진보넷을 만들었던 해, 활동가들의 한해 연봉은 5만원 받았는데 연말에 MT가서 백만원 썼다. 눈이 펄펄 날리는 야외온천 연인탕과 폭포탕을 기억하는 원년 활동가들 얘기들으며 조금만 기다리시라~!!! 좋은 일이 생긴다. 우리 노는 것만큼은 확실히 논다!!!

  • 평소에 자신이 서울말을 쓴다고 주장하는 걸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 신념에 변함이 없는가? 아니면 전향하고 본격적으로 서울말을 배울 생각은 없는가?

    어릴 적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사투리 쓴다고 하도 놀려서 성질이 나서 지금까지 버텼다. 잘 하는 것은 없지만 성품이 우아해서 그냥 버티는데는 나도 한가락 한다. 근데 이제 혀가 굳어버려서 어쩔 수도 없다. 우짜다가 해보는 영어발음도 갱글리쉬로…

  • 메일로라도 생사를 확인하게 되어 반가웠다. 더위 먹지 말고 힘내서 60억 인민들이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그 날까지 가열차게 투쟁하자!

    인간성 더러븐 넘들에게 컴퓨터를 통해 몸으로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비밀리에 개발하 고 있다. 진보넷 10년 기획인데 이것만 완성되면 해방이 눈앞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근데 내가 제일 먼저 감염될까 싶어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 이게 돌파가 안 된다. “투쟁!!!”

2009-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