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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상공간을 탈이성애화시킬 것인가

By 2003/12/1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테마기행

서동진

아마 광대역 고속 인터넷 통신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동북아 지역의 거의 모든 성적 소수자들은, 시쳇말로 인터넷 ‘폐인들’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른바 ‘PC통신’의 시대부터 인터넷 시대까지, 성적 소수자들은 가상공간을 언제나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가상공간에 성적 소수자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둘러싸고 제시되는 상투적인 가정을 물리칠 필요가 있다. 나는 그 막연한 가정을 ‘동성애자의 가상 게토화’ 가설로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이런 가설은 성적 소수자들이 실제 세계에서의 삶이 불러일으킬 폭로와 노출의 위험 또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가장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도피했다고 믿는다. 요컨대 그들은 현실의 ‘정상적 도덕을 피해 가상공간이라는 게토 속으로 숨어들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나 소박하고 또한 위험하기까지 하다.

첫 번째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둘러싼 지배와 권력의 문제를 지극히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순진하고 위험하다. 굳이 전자감시사회를 둘러싼 허다한 주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터넷이 자신의 정체를 탄로내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각색된 주체’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따라서 성적 소수자들이 안전에의 욕망을 쫓아 퇴행적으로 가상공간에 숨어 산다고 믿는 것은 허황된 생각이다. 또한 실제로 자신들의 친밀관계를 위해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가장 큰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 사이트인 ‘이반시티’의 데이팅 서비스 이용자들은 모두 제가 누구인지 공공연하게 과시한다.

다음으로 이것은 가상공간에서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가상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가상공간에는 다양한 소통의 전략과 테크닉, 공동체 구성의 방식이 수행되고 또한 변형된다. 인터넷에서 성적 소수자들 역시 자신들의 가상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수행하고 또한 그만큼 여러 가지 가상적 사회공간을 만들어낸다. 게이 포털 사이트도 있을 수 있고, 레즈비언 인터넷 방송국도 있을 수 있고, 성전환자들의 게시판과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블로그 사이트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인터넷이 널리 상용화한 기술과 양식을 채택하고 소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들이 그것을 변용하고 저항적으로 재전유하는 방식 역시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런 생각이 가상 공간 속의 성적 소수자들을 사적인 개인으로 제한하는 이성애주의적인 규범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상에 근거할 때, 가상공간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공적인 영역을 만들어내고 자신을 또한 시민적 주체로 구성하는 사회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이해할 길이 없어져버린다. 이런 생각은 가상공간의 성적 소수자들이란 모두 사생활에 파묻힌 레즈비언 게이들일 뿐이라고 가정해 버리고, 그들이 가상공간에서 벌이는 모든 활동은 사적인 주체로서의 활동으로 환원해버린다.
우리는 바로 이런 생각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엑스존’ 사태의 핵심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동성애자 인터넷 사이트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 규정하고 동성애자 사이트에게 그를 고시하도록 강요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남성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은 그러한 규정에 반발하여 법률적 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재판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불행히도 지금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엑스존’은, 게시판을 중심으로 이뤄진 ‘건전’ 동성애자 웹사이트였다.
자신들이 품고 있는 관능적인 환상, 성을 둘러싼 정보와 지식이 교류되고, 또한 성행위를 위한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동성애자 웹사이트 역시 많이 있다. 그러한 사이트들에 견주어볼 때, ‘엑스존’은 지극히 건전하고 또한 평범한 사이트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그 웹사이트를 비롯하여 모든 동성애자 사이트가 ‘청소년에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청소년들의 접근을 차단당하게 되었을까. 물론 이 때의 청소년이란 가족주의적 가치에서 보호되고 훈육되어야할 유약한 피해자 혹은 무고한 희생자로서의 이상화된 주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일단 논외로 두기로 하자.
우리는 이미 가상공간이 특권지대화(gentrification)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동성애자 웹사이트를 이성애주의적 가족가치에 따라 단속하고 제한하는 것 역시 이러한 가상공간이 특권지대화 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이다. 성적 소수자들은 실제 세계에서 금지당한 자신의 시민적 삶을 가상공간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성적 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둘러싼 이야기를 교류하고, 공통의 관습과 언어,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다양한 자조(自助)적인 활동을 펼치는 가상적 공공영역을 만들어냈다. 가상공간은 그들에게 있어 미디어이며, 시민센터이고 또한 학교이자 광장이고 또한 교제의 공간, 쉼터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성애규범적인 환상 속에서, ‘사이버 호모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녀를 유혹하고 동성애의 퇴폐적인 욕망으로 타락시키는 범죄자 혹은 위협적인 주체들이다.
그러나 가상공간을 ‘탈이성애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의 문제를 넘어 가상공간을 둘러싼 우리의 편협한 정치적 상상을 전환하는 것이다. ‘엑스존’ 사태 역시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막연히 동성애자의 차별을 둘러싼 또 하나의 시비가 아니다. 그것은 가상공간을 어떻게 공적인 영역으로 정의하고 또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둘러싼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성적 소수자들이 가상공간에서 추방당할 때, 그것은 성적 소수자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자체가 가상적 공공영역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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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존 (http://www.exzone.com/)
지금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지만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최근 진행되고 있는 행정소송에 관련한 다양한 자료와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도입의 초기부터 서비스를 시작하여, 일세대 인터넷 사용자들의 가상요람이었다.

이반시티 (http://www.ivancity.com/)
한국 최대의 남성동성애자 사이트이다. 별도의 쇼핑몰을 운영할만큼 사이트의 규모가 크고, 사용자의 수도 많다. 특히 데이팅 서비스나 채팅룸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200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