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수입 금지를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미국 축산업계나 국내 수입업자 등 민간 ‘기업’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에 거스를 수 있는 ‘규제’를 ‘자율적으로’ 할 것이라고 믿다니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기업들에 대한 ‘자율 규제’의 믿음은 그토록 강하면서도 왜 국민들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은 그토록 약한 것일까?
MB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100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드러난 몇 개의 정책만을 보더라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타의 정책들은 주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금 연일 벌어지는 촛불 집회를 바라보는 키워드 중 하나는 ‘자율성’이다. 집회에 ‘동원’되고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제안하고 토론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예비군 부대가 조직되기도 하고, 인권침해감시단이나 법률지원단, 응급치료단 등이 구성되고, 유모차 행진이 제안되기도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도 마찬가지다. 방송사나 언론사와 별개로, 수많은 독립적인 미디어 활동가와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블로그나 ‘다음 아고라’와 같은 공간을 통해 집회 경험이 기록되고, 재미있는 시위 방식이 제안되는가 하면, (다함께나 예비군 부대의 문제와 같이) 촛불 집회 과정에서 불편하게 했던 점들도 지적되고 토론된다. 만일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이상적인 모습이 국회나 언론과 같은 대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작금의 상황은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대응은 이와 같은 자율적인 움직임을 ‘불온 시’하고 이를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로운 촛불집회에 대한 폭력 진압만이 아니다. 한겨레21에 의해 밝혀진 정부 회의 문건(5월 9일, 부처대변인참고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을 ‘부정적 여론 확산의 진원지’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각 부처의 ‘적극적인 관리’를 요청하고 있다.
실제로 문화부 홍보지원국에 ‘인터넷 조기대응반’이라는 이름의 비공식 조직이 꾸려지는가 하면, 포털사이트들이 잇달아 세부조사를 통보받았다고 하며,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가 포털사이트에 전화를 걸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 비판 댓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은 ‘인터넷 괴담’을 수사하여 사법처리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최근 발족해서 앞으로 인터넷 심의를 담당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올라온 게시글을 심의해 ‘언어 순화와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심의위는 이명박을 빗대 ‘머리용량 2MB’, ‘간사한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격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명박에 대해 분노와 경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님은 머리가 나쁘신 것 같아요’라며 고운 표현이라도 써야 한다는 말인가? 과거 ‘인터넷 검열기구’로 비판받았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구태를 벗기는커녕, 방송통신심의위는 더 나아가 사람들의 언어생활조차 통제하고자 하는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도 강화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실명제 대상을 현행 20만 명 이상 사이트에서 15만 명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이용자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는 인터넷 실명제는 수사기관들이 네티즌들의 신원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최근 인터넷상의 ‘괴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그 위력을 드러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 정책은 비단 인터넷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5월 1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까지 전국 초중고교 70%에 CCTV를 설치한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학교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이란다. 촛불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을 교장, 교감을 동원해서 저지하려고 했던 교육과학기술부다. 학생의 자율성과 인권은 억압하면서, 학생들을 ‘보호’하겠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4월 말 17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의에서 성폭력처별특별법 개정안,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 개정안, 치료감호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들은 올해 초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으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감시의 강화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 여성단체들은 이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성폭력 근절을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법정형 상향 조정이 아니라 가해자 처벌 가능성의 확보, 공교육에서 성/인권 교육의 강화, 성폭력 가해자 교육에 대한 구체적 실행 계획, 보육에 대한 국가지원 강화와 지역 사회의 공조체계 마련 등이다. (자세한 내용은 성명서 참고) 그러나 정부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한 심리를 공권력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교묘하게 이용한다. 지난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같은 검찰의 숙원 사업도 아동 성폭력 예방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이번 국회에서 다시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출범 100일, 이제 본격적인 시작입니다’라는 포스터를 보고 소름이 돋는다. 지금껏 보여준 것은 맛봬기에 불과했다. 더 어마어마한 감시와 통제 정책이 도입될 것을 생각하니 향후 5년이 끔찍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의 물결 속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촛불 집회를 통해서 얻으려 하는 것은 단지 쇠고기 재협상만이 아닐 것이다. 이 역동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가치, 생명과 인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가치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어떠한 권력의 독선이나 통제에 저항할 힘을 기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성과가 아닐까.
2008-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