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액트온

나도 위키를 맛있게~♪

By 2010/06/1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홍지은

과자냐? : 혼란스러운 첫만남

위키를 처음 만났던, 아니 위키란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날은 정확히 2006년 4월 3일. 날짜까지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고? 내가 진보넷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한 날이자, 첫 사무국 회의를 하게 된 날이거든. 사람 얼굴도 낯선데, 더욱 더 낯선 것은 회의 때 주고받는 이야기들이었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니까.

이를테면, 언젠가 탈주선이 진보넷 상근 활동가들에게 내린 공지사항 중에는 이런 게 있지. “WWW 및 회원 서버가 자주 죽는데요.(전원이 꺼졌나? 그럼 켜면 되는 거 아니야?) 좀 더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SSH 스캐닝 공격일 가능성이 있는데,(스캐너도 문제 있나?) Linux Kernel이 버그 현상을 일으켜 서버가 다운되는 경우이죠.(버그…벌레…컴퓨터에 벌레가 들어갔군.) 두 번째는 Hard Disk나 CPU 쿨러 등의 하드웨어적인 장애일 가능성이고요.(그러니까 벌레가 컴퓨터에 들어가서 하드 디스크랑 CPU를 망가뜨린 거야.) 일단 SSH port를 몇 개의 IP만을 제외하고 아예 접근을 막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해보니,(IP에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컴퓨터에 살충제 뿌려도 되나?) 첫 번째 경우더군요. 진보넷 활동가들이 WWW에 직접 터미널 연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WWW에 들어가려면 브라우저 창을 열어야 하지 않나?) IP를 1-15 사이로 조정하고 저에게 이야기 하면 접속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결론은 문제 생기면 탈주선에게 이야기 하면 된다는 거지?)

컴퓨터라고는 전원 껐다 켜는 방법이랑, 웹브라우저 여는 방법 밖에 모르는 내가 첫 사무국 회의에서 저런 외계어를 듣게 되니, 얼마나 당황했겠어? 여하튼 그렇게 해서 처음 만나게 된 외계어 중의 하나가 ‘위키’였다. 고백하건데, 난 이게 과자 이름인 줄 알았어. 요즘 인권단체들은 티셔츠가 아니라 과자를 찍어내나 싶었다니까. 진보넷이라는 이름이 적힌 쿠키 이름은 ‘위키’. 왠지 맛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과자가 아니래. 툴이래. 툴? 아놔…. 한국말로 좀 설명해봐. 그래서 달군이 나에게 설명을 해줬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거야. 인터넷 상의 문서 편집 툴이라나 뭐라나. 인터넷에는 진보넷, 참세상, 네이버, 다음 같은 홈페이지만 있는 것 아니야? 여하튼 첫 사무국 회의에서의 혼란스러운 첫 만남 이후로 위키는 곧 잊혀졌다. 굳이 쓸 일이 없었거든. 그리고 무적의 ‘한글 2005’가 있는데, 그런 거 알아서 뭐하나 싶었지. ‘기술국 오타쿠(?)들이나 쓰라지~’ 뭐 이런 생각이었지.

휑~함이 경쟁력? : 모든 이에게 권리를!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2007년의 새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진보넷의 모든 회의록은 위키에 기록하기로 했다. 이 무슨 청천벽력인지! ‘한글2005’가 부족하다면 ‘한글2007’을 쓰면 되잖아! 하지만, 조직의 결정(?)에 따라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면서 진보넷의 위키 페이지로 들어갔어.

이거 뭐냐? 휑~함이 경쟁력인 건가? 보통의 사이트들과 달리 흰 바탕에 글씨만 있는 위키 페이지는, 10여 년 전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하더군. 번쩍 번쩍, 알록달록한 웹페이지들만 보다가 그런 걸 보니 적응이 안 되더군. 게다가 글 쓰는 곳이라는데, 댓글 기능은커녕 게시판도 안 보이고. 무엇보다 글을 쓰려면 ‘쓰기’ 버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어.

위키에서 ‘쓰기’기능은 ‘edit(편집)’라고 하더라고. 요 글 밑에도 보면 조그맣게 ‘편집’이라고 써진 게 보이지? 보통 ‘편집’하면, 편집 업무를 맡은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잖아? 그래서 물어봤지? "코디는 달군이잖아. 편집은 코디만 하는 거 아니야? 난 그냥 안건 보고만 쓰려고 하는데? 쓰기 버튼 좀 만들어봐…ㅜ.ㅜ" 그런데 그게 아니래.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회의가 시작되는 거라나? 이건 또 무슨 소리?

그런데 위키에서 회의록을 정리하면서부터, 조용한 회의는 시끌벅적한 회의가 되었어. 이전에는 항상 "나는 지난 주에 무슨 일을 했고,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어. 논의는 각자의 보고 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식이었지. 논의해야 할 안건들은 회의를 준비하는 사람이 정리해야만 알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니, 항상 어떤 논의는 빠지기도 하는 일이 생겼거든. 무엇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논의에 적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위키에서는 회의록은 공유되고, 공개되지. 그래서 누구든 회의 전에 "이 논의를 해봐요~"라고 미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 회의 시간 중에 논의가 덜컥 시작되지 않으니, 회의에 배재되는 사람도 없었지. 물론 ‘보고’가 아닌 ‘논의’에 집중이 되면서 회의 시간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 시간이 지겹지 않게 되었어. 내가 할 말을 미리 생각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모든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는 회의록은 한글로 편집된 딱딱한 회의록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올라오게 되었지. 이를테면, 진보넷의 회의록에는 이런 천인공노할 염장 지르기도 기록이 되지!

진보넷 회의록

휑~하게만 보이는 위키는, ‘시삽(Sysop, System Operator)’ 또는 ‘편집장’이라는 직함을 단 개인만이 독점하는 ‘편집’의 권한을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면서 실은 그 어떤 게시판보다 시끌벅적한 공간이 될 수 있는 거였다는!

사방팔방 종횡무진 : 공간 창조의 미학

"기술국 오타쿠들의 음모야!"라고 절규하며 시작한 위키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어졌지. 회의록 작성을 할 때는 늘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봐야지’라면서 회의록에 이것저것 기록해놔. ‘=’, ‘*’, "#’등을 이용하며 문서를 편집할 때는 내가 꼭 프로그래머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짜릿하기까지 해. 하지만, 위키를 사용하며 알게 된 가장 큰 재미는 내가 직접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야.

생각해 봐. 우리는 언제나 만들어진 공간에만 있었어. 누군가가 관리하는 게시판에서 관리의 편의를 위해 언제나 일렬종대로 1, 2, 3의 번호표를 받고 뻣뻣하게 서 있었지.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은 관리의 효율성을 위해 정리되었거든. 옛날에 쓴 글이라도 찾아보려면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이전 페이지’를 클릭하게 되지. 그래서 WWW(World Wide Web)이 사용자들의 ‘연상’에 따라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바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어. 세상에 번호표가 붙여지고 구역이 나눠진 바다가 어디 있어? 게다가 우리의 뇌는 1, 2, 3이라는 번호를 부여하며, 카테고리를 생성하면서 연상하지는 않잖아? 위키에서 쿠키로까지 생각이 튀는 게 사람의 뇌인데 말이야.

그런데 위키는 말 그대로 내 머릿속의 ‘연상’에 따라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야. 편집의 권한이 누구에게나 있으니, 누구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지. 공간 창조의 비법은 간단해. 복잡한 태그(tag)따윈 하나도 없어. 위키 편집화면에 대괄호([])만 적으면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이 만들어지지.

줄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는 사방팔방 종횡무진의 정신없는 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은 창조의 자유로움이 만들어내는 규칙인 ‘자율’을 모르는 사람이야. 위 키피디아를 생각해봐. 네이버 지식in에서는 ‘여성부’에 대해 물어보면 "페미 암캐", "여성부 폭파"란 대답이 나오지만, 위키피디아에서는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 곳에 속이 꽉찬 수많은 정보를 쌓아두고, 또 다른 알찬 정보와 연결해 놓지. 말 그대로 ‘집단지성’인 거야!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이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어. 창조가 만들어내는 자율의 규칙은 이렇게나 대단해!

지난 가을에 나는 한-EU FTA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때도 위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 구글링을 하면 이게 도대체 내가 쓸 수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 헷갈려. 내 머리 속의 연상에 따라 정보를 찾기도 힘들지. 쉴 새 없이 검색어를 입력해야 하거든. 하지만, 위키에서는 문서에 있는 단어들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페이지를 따라가면 될 뿐이야. 거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대괄호 하나로 내가 새로운 문서를 만들어 놓으면 될 것이고, 그렇게 추가된 정보는 세상의 또 다른 누군가가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창조’, ‘자유로움’, ‘자율’ 등 이런 말에 또 생래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위키에 있는 정보의 질은 이제 논란의 여지가 없게 되니까, 요즘은 이런 비판을 한다고 해. "위키는 지나치게 진보적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컨서버피디아야. 설립 취지는 지나치게 반미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위키피디아에 미국인들이 물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항목을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위키피디아와 같지만, ‘삭제’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편집자가 대부분 보수적 학계 출신이라는 점이 다르지. 컨서버피디아에 돌아다니는 정보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대. `지구온난화는 보편적이지 않은 하나의 과학 이론에 불과하다 .`, `공룡은 천지창조가 끝난 6일째인 6000년 전에 탄생했다 .` 등등.(참고 :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7&no=155361)

사각 사각 맛있다, 위키!

이제 나도 위키를 사용하게 된 지 1년이 지났어. 처음에는 공포감 비슷하게 가지고 마주한 위키였는데, 이제는 매일 매일 위키를 사용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참여하는 정보공 유연대IPLeft에도 위키를 제안했지. 내가 잘못 입력한 태그를 다른 사람들이 수정도 해주고, 내가 빠트린 내용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충해주면서 점점 풍성해지는 것을 보면, 이 따사로운 봄날 햇볕을 듬뿍 받으면서 연두 빛 잎을 무럭무럭 키워나가는 나무들, 꽃들을 보는 기분이야.

이제 겨우 시작인 진보넷 위키도 언젠가는 알차게 자라서 위키피디아 만큼이나 커다란 열매가 되어 사람들이 그 맛을 즐길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부터 벌써 그 열매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 당장 이 글 밑에 달린 ‘편집’ 버튼을 누르고 시작해 보라고! 무척 맛있을 거야.

200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