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산업경제 논리에 이용자와 소비자의 권리 소홀해도 되는가{/}정보통신부 정보화 정책, 변해야 한다

By 2003/12/0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좌담

장여경

장여경(이하 사회) : 최근 정보통신부에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정보인권 침해 지적을 받아온 몇 개 정책을 철회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 단말기에 위치확인 칩을 의무 장착하도록 법제화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법제화도 추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보통신부가 정보 인권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정보통신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병완(이하 박) : 디지털 방송 사업은 지상파 텔레비전의 기반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입니다. 여기서 시민단체의 입장은 향후 확산될 무선 환경 하의 이동성 측면에서 미국보다 유럽의 표준이 우수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미국 표준을 고집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부의 논리는 수출에 지장이 생긴다던가 미국 시장이 크다던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건 미국에 경도된 산업논리입니다. 수출 전망치 등 정보통신부의 통계치에 엉터리도 많습니다. 그저 정책이 한번 서면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거죠.

김재섭(이하 김) : 이동통신 요금 문제는 3개 사업자의 경영상태 괴리가 너무 커서 요금 정책을 시장 경쟁에 맡겨두지 못하고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애초 PCS 사업자를 3개가 아니라 5개나 두었다는 데서 정보통신부에 원죄가 있어요. 결국 3개로 정리되긴 했지만 정보통신부의 정책은 시장에 들어와 있는 주자 보호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죠. 이를 두고 ‘관리 경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이동통신요금에 적극성을 갖지 못하는 겁니다. 또 소비자로부터 요금을 받아 산업을 육성하는 구조 때문에 정보통신부와 사업자, 언론 그리고 학계가 모두 이 문제에서는 담합합니다. 사업자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지 아니면 지나친 요금을 받는지 관리 감독해야 할게 정부고 정부가 감독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할게 언론인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전응휘(이하 전) : 저희가 정보통신부에 기대하는 내용과 실제로 정보통신부가 이해하고 있는 자기 역할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원래 정보통신부의 존재 이유는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을 조율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이런 정체성이 위기에 빠지자 정보통신부는 그때부터 자기 역할을 시장 선도로 규정했습니다. 소위 신성장 산업을 주도하여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거지요. 그래서 디지털 방송 표준을 선택할 때도 정보통신부의 사고방식은 시민단체와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 부위원장님은 장기적인 방송통신 정책을 말씀하시지만 정보통신부는 빨리 시장을 만들어서 빨리 세계무대에서 뛰는 시간다툼의 문제로 생각하거든요. 정보통신부가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문제는 정보통신 규제 정책, 특히 정보 인권과 관련된 주제들에서도 사회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쉽고 빠르게 해결해 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신성장 산업을 찾아내는데 바쁘기 때문이지요.

김형준(이하 준) : 제가 정보통신부에 기대하는 것은 정보화산업에 대한 선도보다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시민사회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부서였거든요. 정보통신부가 산업 정책적으로 문제를 접근하면 지금의 정책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그런 역할을 담당해도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영역이 디지털로 수렴되는 상황에서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의 정책이 계속 겹칩니다. 반면 사회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습니다. 부처 관할 문제로 중요한 문제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부처들이 정책 경쟁만 계속 하면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정보 인권이나 공공성은 계속 무시되겠지요. 정보통신부가 산업 정책적 측면보다 다른 관점을 갖게끔 노력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회 : 정보통신부의 산업정책의 기조는 어떤 것인가요?

김 : 맨 전면에 통신 서비스, 그 중에서도 정부의 직접 규제를 받는 기간통신서비스를 내세우고 서비스사업자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십시일반으로 요금을 걷어서 그것을 이른바 출연금으로 정보화촉진기금에 편입시킵니다. 그 기금과 사업자 이득을 투자라는 형태를 빌어서 콘텐츠나 장비,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구조입니다. 정보통신부는 이 연결고리를 모든 정책에 관철시키는데 중요한 기준은 ‘국익’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능이 떨어지고 비싼 장비를 국산이라는 이유로 옹호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기자들도 정보통신부가 시장에 개입했다는 걸 알면서도 기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사가 미국의 통상압력에 연결될 수 있거든요.

전 : 저는 국익이 어디까지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관리경쟁 매카니즘 속에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거든요. 과거 자동차 산업이 육성될 때가 그랬습니다. 소비자들의 희생을 딛고 재벌이 큰 겁니다. 근데 지금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지만 정보통신부의 인위적 관리 매카니즘 때문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죠.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부처간의 갈등도 불거지는데 이걸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언론이 사실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 운동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소비자들이 입는 피해는 이중삼중으로 늘고 있습니다.

사회 : 스팸 정책만 하더라도 옵트인과 옵트아웃 정책을 두고 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옵트인 정책을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터넷 기업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인데, 애초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개인정보를 밑천으로 장사할 수 있는 여지를 너무 많이 열어준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만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 지난 정부 초기에 폐지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겪은 후로 정보통신부는 ‘디지털’이나 ‘네트워크’를 갖다 붙일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자신들이 관할하려 합니다. 주소자원관리법을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간 우리는 민간 자율규제 매카니즘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로 .kr 주소자원을 관리해 왔습니다. 이런 거버넌스 구조는 한국의 인터넷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고 국제적으로도 모범적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보통신부는 이를 완전 국가관리 하에 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보사회는 자율적인 규제 매카니즘과 인터넷 이용자 공동체의 능동적인 참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여러 부처들도 반대하는데도 정보통신부는 밀어붙입니다. 결국 정보통신부의 위기의식이 과격한 국가 규제 매카니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 규제 권한과 관련해서는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 관련 논란도 있었죠. 저작권법과 영역이 중복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입법을 밀어 붙였거든요.

박 : 콘텐츠와 문화는 정보통신부가 다룰 영역이 아닙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콘텐츠 영역은 하드웨어 계통을 주로 다뤄 온 정보통신부의 마인드하고 안 맞습니다. 부처 권한을 넓히기 위한 빌미일 뿐이죠. 그런 점에서 정보통신부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의 목적이 이미 다 했는데 생존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 정보통신부가 없어져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이 나왔군요.(웃음) 정보통신부의 고유 역할이 통신 인프라에 대한 공공성 담보였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책임질 부처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정보통신부는 시장 위주 정책을 펼치면서 고유의 공공 정책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때 하드웨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정보 격차 얘기를 많이 했는데 최근 연구를 보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보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거든요.

전 : 문제는 육성과 규제 정책이 혼재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의 산업 육성 정책에 경도 되어 있는 정보통신부가 정보인권에 관한 규제 정책을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김 : 정보통신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보 인권의 문제는 모든 부처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네이스도 그런 문제 아닌가요? 물론 정보통신부는 분명히 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산업육성과 역기능 해소 중심의 정보화 정책은 내부에서도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 정보화 정책을 역기능 해소 중심으로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만 보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위험한 정책 아니었습니까? 제가 기초자치단체 게시판 실명제를 경험해 보니 실명제는 주민등록번호 노출과 직접 관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프라이버시 인식을 각성시키는 것 아닙니까? 명예훼손이나 지적재산권도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데 정보통신부는 무조건 규제 위주이지요. 사회적으로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한 과제나 지금 제도화하는 데 무리가 있는 과제를 정보화 역기능 해소라는 명분으로 마구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칼을 맘대로 휘두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시민사회는 이런 경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사회 : 한편으론 정보화 정책에 대한 기술 중심적인 접근도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술적인 역기능 해소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보화는 기술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기술 경제주의적 발상은 정보통신부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김 : 정보통신부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정보통신부와 대등한 대응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보호와 규제를 분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박 : 제가 정보통신부에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정보통신이 아닌 산업을 다 도구화시킨다는 겁니다. 방송만 하더라도 방송 철학이나 시청자중심주의와 같은 종사자들의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데 정보통신부는 이런 데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거든요. 지금의 정보화 정책은 여러 분야에 파급 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은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올 것입니다.

사회 :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계속 고민되어야 하겠지요. 오늘 자리는 시론적인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의의를 두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김재섭: 한겨레신문기자
박병완: DTV 특별위원회 위원장, 언론노조 부위원장
전응휘: 평화마을 PeaceNet 사무처장
김형준: 넥스트웨어 대표, 참세상 전운영자

200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