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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산업 편향에서 벗어나라{/}저작권과 특허에도 공공성이 있다

By 2003/11/28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오병일

2002년 4월 15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에서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심사하고 있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국회도서관 입법전자정보실장 박영희씨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진술하였다. 문제가 된 것은 저작권법 개정안 중 28조 2항, 즉 ‘저작재산권의 제한’ 요건 중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에 관한 조항이었다. 박씨는 이 개정안이 디지털 자료를 다른 도서관에 인터넷으로 전송할 수 없게 하고 소장하고 있는 책의 부수만큼만 이용하게 하는 것은 전자도서관의 취지나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의욕적으로 전자도서관을 추진하던 국회도서관의 입장에서는 이 법으로 전자도서관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국회도서관은 최소 비영리적 저작물의 경우에는 저작자의 허락이 없이도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은 여러 측면에서 저작권과 충돌하고 있다. 저작권자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자신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저작권의 강화로 ‘공정 이용(Fair Use)’의 영역이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공정 이용이란 저작권자의 이용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 우리 저작권법에서도 ‘제6절 저작재산권의 제한’이라는 규정을 따로 두어 공정 이용을 보장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복사하거나 시사보도?교육의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은 허용되어 왔으며 사적이용을 위한 저작물 복제도 가능하다. 시민사회단체는 오래 전부터 공정 이용의 확대를 주장해 왔다. 정보공유연대 IPLeft의 강성룡 사무국장은 "공정 이용은 정보불평등을 최소화하고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말한다.

다른 한편 디지털 환경에서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를 제한하는 것은 개인에 대한 통제를 수반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소리바다 논쟁도 공정 이용의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P2P 기술의 발달로 음악파일 등 디지털 저작물의 개인적인 교환이 자유로워지면서 이를 적극 향유하고자 하는 반면, 저작권자 – 정확히 말하면 음반사, 출판사 등 저작인접권자들은 이를 제한하고 새로 형성된 시장에 가능하면 독점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는 공정 이용보다는 산업계의 이해로 기울어져 있는 듯 하다. 결국 2003년 5월 27일 국회에서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에서는 문제가 된 도서관 간 디지털 전송은 허용하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절충했다. 하지만 도서관 내에서 디지털 저작물을 열람할 경우에는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를 제한하였다.
한편 이 개정안은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까지 저작권의 보호 대상에 포함시켜 저작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저작권법 개정안을 반대했던 남희섭 변리사는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저작권법이 창작이 아닌 데이타베이스를 보호하는 것은 투자보호를 위한 법으로 변질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의 보호는 이미 2002년 1월 14일 제정된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이하 디콘법)에서 한차례 문제가 된바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디콘법이 창작성 없는 디지털 콘텐츠에 소유권에 유사한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콘텐츠의 자유로운 이용을 제약할 수 있고 심지어 위헌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가 저작권에 대해 별다른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의 공정 이용을 생각하기보다는 시시때때로 산업적 필요와 통상 압력에 따라 저작권 관련법을 제개정하면서 공정 이용과 저작권의 갈등은 깊어지고만 있다.
특허 영역에서도 공정 이용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비즈니스 모델 특허와 의약품 특허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민감한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경우, 2000년 3월 4일,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이 삼성전자의 ‘인터넷 원격교육’ 특허에 대해 특허무효 심판 청구를 하면서 문제화되었다.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발명이 아니기 때문에 특허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은 2003년 1월 12일 진보네트워크가 승소했지만 비즈니스 모델 특허 자체의 허용 여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2002년 1월 30일 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면서 의약품 특허 문제가 불거졌다. 강제실시란 공공의 필요에 따라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도 특허 등록된 발명품을 다른 사람이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이 사건은 국내 최초의 강제실시 청구로서 주목을 끌었지만 2003년 2월 불허 결정이 내려졌다. 특허 제도의 공공성 문제는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의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16대 국회에서는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던 주제였다.

200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