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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없는 감청과 IP주소 요구에 위헌 논란{/}통신비밀보호법은 어떻게 통신비밀을 훔쳐보는가

By 2003/11/28 11월 3rd,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

이동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개인정보는 한해 얼마나 될까. 지난 3월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2년 12만7787건의 이용자 인적사항이 경찰?검찰?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다. 인적사항 외에 감청은 1천528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은 12만2541건에 달했다. 여기서 ‘감청’이란 감청장치를 이용해 당사자 모르게 내용을 듣거나 보는 것이고 ‘통신사실확인자료’란 통신한 시간이나 번호, 인터넷 IP주소와 같은 통신이용에 대한 내역 자료를 뜻한다. 이 많은 자료가 제공되는 동안 당사자들에게는 그 사실이 전혀 통보되지 않았다. 모르는 새 수사기관은 국민을 감청하고 상당히 많은 통신 이용내역을 훑어보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이 수치는 그나마 전년보다 줄어든 것이다. 감청의 경우 47%,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건수는 22%가 줄었는데 정보통신부는 이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에 따른 개선 효과라고 주장했다. 2002년에 개정발효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감청 등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검사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별로 엄격해진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권 의원은 검사장 승인 없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1천279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해 동안의 감청 수치와 엇비슷한 양이다. 이 발표가 나자 이중 1천191건에 대한 검사장의 승인서가 뒤늦게 통신업체에 도착했다. 법에는 분명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만 사후승인이 가능하게 되어 있지만 그조차 안하고 있다가 국회에서 문제되자 무더기 사후승인한 것이다. 이런 사태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이 감청 등을 통신업체에 요청할 때 법원의 영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긴급하다’고만 주장하면 일단 감청하고 그나마 요구되는 검사장의 승인은 사후에 적당히 받을 수도 있다. 워낙에 통신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통신비밀보호법이 오히려 통신의 비밀을 훔쳐 보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통신비밀보호법은 정치적인 도청을 막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1992년 대선 직전, 여당후보를 밀어주자는 부산 기관장들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테이프가 소동을 빚었던 일이 있었다. 소위 초원복집 사건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이 사건 이후 도청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1998년 또다시 정치 도청 사건 때문에 개정 요구에 휩싸인다. 새 정부가 구성되고 야당 신분이 된 국회의원들이 국가정보원이 국회를 도청한다고 폭로한 것이다. 야당은 통신비밀보호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영장 없는 감청은 안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 논의는 정치 논리에 따라 갈팡질팡하다가 요구 수위가 점차 축소되어 2002년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확정되었다.
지금 이 법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정치인보다 일반 국민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늘면서 인터넷 감청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2년 5월 발전회사 노동자들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수사기관의 영장없는 IP주소 요청은 위헌이라며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00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