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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누엘 피에라 『검열에 관한 검은 책』 서평{/}[함께 읽는 정보인권] 현대사회의 검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By 2019/03/19 3월 20th, 2019 No Comments

글쓴이│착선



검열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된 지금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조선시대에 왕권모독죄와 풍기문란죄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긴《설공찬전》이 금서로 지정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와 같은 형태의 검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검열이 있는가 하면, 인식하기 힘든 부류의 검열도 있습니다.《검열에 관한 검은책》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조치의 검열을 짚어봄으로서, 점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현대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고대국가 시절부터 검열은 존재해 왔습니다. 고대 로마나 중국 등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미풍양속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검열이 존재했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검열방식 중 하나인 종교를 통한 검열 또한 매우 효과적이였는데, 교황은 인덱스 리브로룸 프로이비토룸, 금서목록이라 부르는 방식을 통해 교인들의 생각을 검열하고자 했습니다. 종교와 국가의 검열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당시엔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금기시되기도 했습니다. 토머스 페인의《상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질때 쯤에 와서야 사전검열 등과 같은 형태의 노골적인 검열은 사라졌지만, 검열의 명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검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찾기 쉬운 부류는 외설물과의 투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술가들과 정부가 벌이는 예술과 음란의 경계에 대한 논쟁은 검열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설 중 하나인《O 이야기》나《롤리타》와 같은 작품이나, 사드 후작의《소돔 120일》등은 그 사회의 미풍양속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일화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법률 체계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에 대한 합의주의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금서목록은 점차 해방되고 있습니다.

출판에 대한 억압적 검열은 아무 관계도 없는 청소년 보호를 내세워 가해질 때 더욱 눈에 잘 보인다. – 로베르 네츠,《검열의 역사》

그러나 이런 부류의 검열은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설물은 오랜 세월동안 금지되어 왔으며, 그러한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 하에, 혹은 청소년 보호의 이름 하에 검열을 지지하며 외설물과의 투쟁에 나섭니다. 옹호자들은 사람들이 외설물이나 폭력물을 볼 경우 그것을 모방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법학자나 역사학자, 철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비판합니다.

에밀 뒤르켐은 폭력적이거나 음란한 메시지를 미성년자들이 보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서 폭력이나 비행, 강간 사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이런 범죄들은 사회적 변수에 의해 결정될 뿐 검열된 메시지는 이런 사회적 변수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후쿠시마 아키라 또한 경찰통계 등을 참고하여 거시적으로 관찰하면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 즉 카타르시스 효과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 정보나 표현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그들의 건전한 성장에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신념은 통계로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검열 옹호자들의 논리는 부수적 현상을 주요 현상으로 잘못 간주하는 발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사회적 현상의 진정한 객관적 원인들을 가려버린다.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게임의 음란성과 폭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부수적인 현상으로 돌리는 행위이며,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사회적 변수들인 실업, 가난, 계급의 폭력성, 퇴학, 차별, 복지의 위기 등의 역할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 p.240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검열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분명 기존의 검열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 또한 기존의 검열체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이 가상세계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인터넷을 제공하는 업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며 이로 인해 많은 검열을 받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인터넷검열로, 민주, 인권, 독재, 천안문사건, 달라이라마, 홍지 등의 단어는 90퍼센트 이상 접속이 차단됩니다. 이러한 단어에 비해 포르노, 섹스 등과 같은 단어는 3퍼센트에서 7퍼센트만 접속이 차단되는데, 이 차이를 보면 중국정부가 어떠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검열은 결국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열의 최고봉, 자기검열의 형태로 나아갑니다.자기검열 현상은 수많은 제약과 법체계가 만들어낸 인식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현대인이 많은 권리를 얻게 되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수많은 제약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수호하기 위한 법체계가 현대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약은 법적 고소라 할수 있는데, 고소는 설령 자신이 100% 잘못이 없더라도 당하면 굉장히 힘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개인도 정부나 기업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게 합니다. 처벌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언론은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고, 예술가는 침묵합니다. 자기검열 현상은 인터넷에서도 나타나는데, 네티즌들은 쉽게 식당의 음식을 비판하지 못하며, 영화를 평가하기 힘듭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검열은 사법검열과 폭력적 보복을 앞섭니다.

실험실 자체에서 행하는 자기검열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밝혀준 스캔들도 최근 몇 건 발생했다. 시판된 항우울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 결과를 고의로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2004년 밝혀진 것이다. – p.380

검열은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권력은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비판을 막기 위해 검열에 의지하거나 비밀로 자신을 감싸왔습니다. 어떠한 권력이 검열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검열의 역사는 달라집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의 발전은 많은 것들을 검열에서, 금기에서 해방시켜 왔습니다. 왕을 모욕한 자는 더이상 처벌받지 않게 되었고, 무정부주의자의 주장은 삼족을 멸하는 주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검열, 눈에 보이는 검열은 사라진 반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검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윈주의적 태도는 일견 모든 비판을 허용하고, 모든 자유를 발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자유엔 어떤 금지가 기입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검열에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착선님의 블로그에 포스팅 된 『검열에 관한 검은 책』 서평 글입니다.

편집자주 : <함께 읽는 정보인권>은 정보인권 관련 외부 서평글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의 내용이 진보넷의 입장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섞이며 조금씩 정보인권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