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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특허 독점의 폐해 막고, ‘지식의 공유·확산’ 본래 취지 살리려면?

By 2019/01/15 No Comments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4. 특허

특허란, 고도의 기술적 사상(思想), 즉 ‘발명’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자가 이를 일정 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저작권은 별도의 심사 없이 창작 즉시 발생하는 반면, 특허는 발명자가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하면, 특허심사관이 이를 심사하여 해당 발명이 새롭고(신규성), 획기적이며(진보성), 산업상 이용 가능할 경우 특허권을 부여하게 된다. 또한, 저작권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베낀 것이 아니라면 저작물의 우수성과 관계없이 권리를 부여 받지만, 특허의 경우 독자적인 발명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유사한 발명에 대한 특허권이 있을 경우 권리를 부여 받지 못한다. 저작권은 ‘표현’을 보호하지만, 특허는 기술적 사상을 보호하므로 그 보호의 폭이 더욱 넓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후 70년인 반면, 특허는 ‘특허를 출원한 이후 20년’이다.

특허 발명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그 내용은 공개된다. 즉, 발명의 공개를 통해 지식의 확산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특허를 통해 발명 내용을 공개하고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 받는 대신, 그것을 영업 비밀로 보호할 수도 있다. 영업 비밀 역시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역설계(리버스 엔지니어링)를 통해 기술 내용을 추적하기 용이한 경우에는 특허로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영업 비밀로 보호할 수 있으니, 이렇게 되면 기술 지식을 공개한다는 특허의 의미 자체가 반감될 수 있다.

초기에 물건의 발명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던 것으로부터, 특허의 부여 대상은 생명체,  소프트웨어, 사업 방식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태양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특허 제도의 목적은 결국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특허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발명을 보호·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현행 특허 제도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발명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는 경우, 오히려 기술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특허와 사업 방식(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독점권을 부여하지 않아도 이미 빠른 혁신이 이루어지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독점권을 부여하여 오히려 기술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의약품 특허는 의약품의 가격을 높임으로써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한다. 또한, 기술 개발에 대한 기여 없이 기존 특허를 사들여 소송 위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특허 괴물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로 선진국들이 특허권을 대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국제적인 특허권 통일을 통해 제3세계의 산업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4-1 강제실시

지나친 특허 독점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공공정책의 하나가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이다. 강제실시란 국가 위급 상황이나 공중의 건강 보호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이 없이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실시’란 특허발명의 이용, 즉 생산, 판매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허법의 목적이 특허권자에 대한 보호와 함께 사회 공공의 이익을 천명하고 있기에, 강제실시는 특허제도의 필수적인 장치이다. WTO의 트립스 협정 제31조, 그리고 우리나라 특허법 제106조의2(정부 등에 의한 특허발명의 실시)와 107조(통상실시권 설정의 재정)에서 강제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강제실시를 해도 특허권자의 권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특허권자에 대한 보상도 주어진다.

강제실시는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 현상과 제약회사의 가격 폭리 정책에 대한 효과적인 억제 수단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도 강제실시 요구가 빗발치는 대상이 바로 의약품이다. 미국의 경우 강제실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2001년 9‧11 사태 이후 탄저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독일의 ‘바이엘’사가 공급하는 치료제인 ‘씨프로’에 대해 강제실시를 검토했다. 그 즉시 바이엘은 씨프로를 저렴한 가격에 미국에 공급할 것을 약속했다.

국내에서는 1961년 특허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의 강제실시 청구가 있었으나, 1978년의 강제실시를 제외하고 모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이 중 2002년, 2008년에 각각 청구된 두 번의 강제실시는 모두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2002년 1월 30일, 한 알에 약 2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이 책정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국내에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백혈병 환자들과 시민단체는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4일 특허청은 “발명자에게 독점적 이익을 인정하여 일반 공중의 발명의식을 고취하고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특허제도의 기본취지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린다. 2008년 12월 23일, 국내 에이즈 환자단체는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제약회사 로슈가 정부가 제시한 푸제온의 가격에 불만을 품고 식약청의 시판 허가가 내려진 이후 4년 넘게 국내에 푸제온을 공급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6월 19일 특허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판단하고 또 다시 기각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