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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엘스베르크 『제로 ZERO』 서평{/}[함께 읽는 정보인권] 데이터 과두정치 세상을 미리 느껴볼 수 있는 IT 소설

By 2018/12/17 No Comments

글쓴이│인디캣



독일 최고의 지식 도서 ‘엔터테인먼트’ 부문 수상작, 소설 『제로』. 현대 전력망의 위험성을 보여준 첫 책 『블랙아웃』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개인 정보 수집과 관련한 데이터의 악영향을 다룬 후속작 『제로』에도 주목했습니다.

철저하게 은폐된 조직 ‘제로 ZERO’. 미 대통령의 휴가지에 드론을 침입해 실시간 중계방송을 합니다. 드론에 살상 무기가 장착되진 않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보안이 무참히 뚫린 사건으로 치욕의 날이 되었습니다.

기자 신시아는 제로를 추적하는 일원이 되어 새 기술을 몸소 체험합니다. 안면인식할 수 있는 스마트안경을 착용하면 상대의 신상정보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현재 상태에 대한 종합세트’를 볼 수 있는 거죠. 평소 무차별적 정보 수집에 거부감을 느껴온 신시아로서는 스마트안경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과거로 인해
발목이 잡히게 되었어요

하지만 더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스마트안경에 뜬 정보로 지명수배자를 쫓던 딸과 친구들에게 사고가 생깁니다. 딸의 친구는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유약한 성격이었던 아이가 지명수배자를 집요하게 쫓을 정도로 성격이 변한 것은 물론이고 딸과 친구들의 변화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신시아. 그 배후에 인터넷 플랫폼 프로미 회사가 관련되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프로미에서 개발한 조언 프로그램은 수많은 생활 영역에서 필요한 조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 교사, 친구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러려면 내 데이터를 제공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격을 알고 있나요?

인간이 계산될 수 있는 단위, 판독될 수 있는 차트로 환원되어 가치 평가를 하는 프로미. 데이터 가치에 따라 인간 순위가 매겨지는 시스템입니다.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는 프로미 사용자들은 최적의 맞춤 조언을 제공받기 위해 자신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프로미의 조언을 따르면 점수를 얻게 되고, 내 순위가 상승합니다. 프로미 사용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프로미의 조언을 따르고, 행동 패턴과 가치관의 변화까지 이르게 되는 거죠.

인터넷을 하다 보면 선호도에 따라 자동 추천, 정렬되는 시스템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내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내 생각과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가치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기준도 모르는 사용자들. 소설 『제로』는 ‘좀 더 나은’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 건지 묻습니다.  안면인식, 음성인식 등 다양한 감시 통제 기술의 부정적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빅데이터 시대에 반드시 공론화해야 할 주제를 제공합니다. 인간 편의를 위한 기술이 자유의지를 통제한다는 악영향을 보여줌으로써 데이터 과두정치에 대한 위험성을 드러냅니다.

세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한다는 거야.

2016년 페이스북에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포함한 데이터를 대선 후보 측에 넘긴 사건처럼 정당 지지, 브랜드 선호도 등 모든 영역에서 자유의지를 간섭하며 빅데이터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준 소설 『제로』. 데이터를 악용할 경우 생길법한 최악의 사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킹으로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 및 감시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제로, 프로미의 숨겨진 의도를 파헤치다 살해 위협까지 받으며 테러와 살인 용의자가 된 신시아.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데이터에 맞서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나서는 그들의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이어 나온 『호모데우스』에서도 경고했습니다. 내적 목소리를 따르는 시대는 끝났고, 알고리즘의 결정과 선택에 맡기는 시대 즉, 데이터교 세상이라고 말이죠. 알고리즘 시스템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안다면, 선택과 결정의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흐려질 수밖에요.

IT 관련 정보가 듬뿍 담긴 과학 스릴러 소설 『제로』. 방대한 분량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를 분석해 새로운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평소 말랑말랑한 소설에 익숙했던 독자라면 낯선 느낌일지도요. 자잘한 오탈자가 거슬려 매끄럽게 더 손을 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멀게만 느꼈던 기술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내 이야기처럼 직접적으로 맛보게 한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지도를 보여주고, 뿐만이 아니라 사랑, 성공, 피트니스, 할인가격 정보 등을 제공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내적인 영역에 침투한 트로이 목마입니다. 목마의 뱃속에는 무장한 전사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당신의 목을 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화살은 당신의 심장과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밀정보원들보다도 당신을 더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당신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당신이 더 정확합니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들을 감시하는 자는 누구이고, 또 이들을 감시하는 또 다른 감시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아마 이미 답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누구나 서로를 감시하고, 모든 사람이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입니다.”

『제로 ZERO』 P.25

 

※ 이 글은 인디캣님의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 된 『제로 ZERO』 서평 글입니다.

편집자주 : <함께 읽는 정보인권>은 정보인권 관련 외부 서평글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의 내용이 진보넷의 입장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섞이며 조금씩 정보인권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