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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서평{/}[함께 읽는 정보인권] 과학기술 – 사회적 네트워크를 함께 고민할 때…

By 2018/11/15 No Comments

글쓴이│바올님



STS는 Science, Technology, Society의 앞 글자만 따다 만든 줄임말이다.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STS는 말 그대로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세 가지를 따로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연구한다. 과학, 기술, 사회를 애초에 분리되지 않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STS의 기본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STS를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줄임말로 쓰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구가 곧 사회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과학지식사회학, 영어로는 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SSK)를 공부했는데 이 역시 큰 범주에서 STS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STS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학문이다. 더군다나 STS적인 관점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욱. 사람들이 내게 전공을 물어볼 때마다 나는 ‘과학사회학’이라고 짧게 말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의아해 하곤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궁금해 했다는 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한다는 건지, 사회를 공부한다는 건지, 도대체 사회학에 과학이란 글자가 왜 붙는 건지, 말 그대로 ‘과학사회학’이란 말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저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하는 거에요”라며 대충 설명하곤 했다.

사실 내 스스로가 STS란 학문을 좋아하고 즐기다보니 사람들에게 내가 공부하는 것을 소개하고 이해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늘 그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가 STS의 초보자로서 남들에게 설명해줄 만큼의 실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과학과 사회가 사실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멍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분되지 않는 과학과 사회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나는 칸트의 코페루니쿠스적 발상의 전환부터 시작해서 포퍼와 쿤을 거쳐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까지 인용해가며 내가 알고 모르는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적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꺼내곤 했다.

그런데 여기, 두서 있게 STS를 설명해주는 친절한 입문서가 있다. 서울대학교의 홍성욱 교수가 쓴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이다. 나는 이 책이 전공자들을 위한 입문서가 아니라 대중입문서라는 점에서 아주 큰 점수를 준다. STS가 생소할 독자들을 위해 아주 친절하고 재미있게 썼다. STS의 기본개념으로부터 차차 이를 이용한 응용까지 단계별로 소개가 잘 되어있다.

제 1장, ‘인간과 비인간’은 STS가 가진 가장 독특하고도 새로운 관점을 여러 가지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단지 사물, 객체로만 여기는 비인간을 하나의 행위자이자 주체로 여기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제 2장,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는 바로 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STS는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행위자로 여기고, 각각의 행위자는 그 고유의 본질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행위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하고,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본다. 이 점에서 한 행위자와 다른 행위자의 관계가 바로 하나의 네트워크이며, 과학-기술-사회는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분리할 수 없는 거대한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과학과 사회는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제 3장, ‘과학철학적 탐색’은 2장에서 보여주는 네트워크의 관계적 속성을 과학철학을 이용해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탐구한다. 이 장에 이르러 독자는 자연스럽게 과학과 세상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있고,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네트워크를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제 4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우리가 어떤 과학기술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다른 말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을 바꿔나갈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이처럼 짜임이 좋게 쓰였기 때문에, 또 정말 많은 예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레 STS의 시선을 이해하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되는 하나하나의 예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같은 분야를 전공한 나로서는 필요에 따라 알맞게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적 정보와 지식이 교차할 때마다 필자의 해박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책의 말미에 붙여놓은 참고문헌 목록을 계속해서 들쳐보며 내가 읽어야 할 자료들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치 한 학기 대학 수업을 들은 느낌.

대중입문서이지만 학사, 석사정도의 전공자라도 STS의 흐름을 개괄하고 풍성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고 여겨진다. 나는 앞으로 ‘과학사회학’이 뭔지 묻는 친구에게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자 한다.

테크노사이언스라는 네트워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지 살펴보는 것은 과학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과학이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인식되는 우리에게는 신의 얼굴을 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홍석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p. 15

 

※ 이 글은 바올님의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 된 ‘<홍석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서평글입니다.

편집자주 : <함께 읽는 정보인권>은 정보인권 관련 외부 서평글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글의 내용이 진보넷의 입장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다양한 입장과 견해가 섞이며 조금씩 정보인권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