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 감청의 실태, 조금 드러났지만…
– 2009년 국정감사 평가
2009년 국정감사가 끝났다. 올해 국정감사의 주목대상 중 하나는 바로 ‘패킷감청’이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신호를 제3자가 통째로 감청하는 방식이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패킷감청을 실시한 사실이 드러났고, 지난 8월 31일 인권단체들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함으로써 패킷감청 문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의문점은 세가지였다. △패킷감청이 적법하게 이루어졌나? △패킷감청은 어느정도 자세하게 이루어졌나? △사용된 감청 장비는 누구의 것인가? 더불어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들이 패킷감청을 어느시점부터 실시해왔는지도 추가적인 의문점이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패킷감청 문제에 대한 질의가 잇따랐다.
먼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10월 7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2002년부터 현재까지 총 11대의 인터넷 패킷 감청설비를 인가하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서갑원 의원) 이 장비들은 국방부, 대검찰청, 경찰청 등 일반 국가기관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경찰·군의 정보관련부서나 국가정보원의 감청 장비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니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별도로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앞서 패킷 감청설비 통계에 제외되어 있는 정보기관들의 패킷 감청설비의 규모가 얼마인지가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10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2002년 하반기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인가된 전체 감청설비 가운데 82%가 정보기관에서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변재일 의원) 오늘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도 역시 정보기관의 패킷감청 장비 문제가 다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10월 8일 법제처 국정감사에서는 패킷감청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일반영장금지원칙에 어긋나고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가 된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박영선 의원), 이에 대하여 법제처장은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하였다. 10월 9일 고등법원 국정감사와 10월 20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패킷감청이 사무실이나 아파트 등에서 같이 회선을 나눠 쓰는 다른 이들의 모든 개인정보까지 열어 볼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의 영장 발부가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박영선 의원), 이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장과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패킷감청 문제를 제도적·기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하였다.
이처럼 이번 국정감사 결과 미약하나마 패킷감청의 실태 일부가 드러났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패킷감청의 실태와 문제점이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더욱 품게 되었다. 패킷감청 장비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기관의 장비 보유 실태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국가정보원은 패킷감청 장비를 보유하고 직접 감청에 사용해 왔을까? 패킷감청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 정확한 사실이 하나도 남김없이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KT가 패킷감청을 소위 ‘맞춤광고’에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여 물의를 빚은바 있다. 이용자가 현재 보는 이메일과 사이트 내용에 맞추어 광고를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제3자인 KT가 통신의 송신자와 수신자 양당사자의 동의를 모두 구하지 않은 채 이용자의 통신내용을 감청하는 것으로서, 엄연히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만약 패킷감청이 정보·수사기관에 의해 마구 사용되고 상업적으로도 이용된다면, 국내 인터넷회선업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인터넷 이용자의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09년 10월 29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0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