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네트워크센터 성명]
도를 넘는 이메일 압수수색 규탄한다!
— 통신비밀은 괜히 헌법에 명시되어 있나? —
경악스런 일이다. 오늘자 한겨레에 따르면 검찰이 지난해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대상자 100여명의 최장 7년치 전자우편을 통째로 압수해 열어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압수수색의 규모는 상상을 불허하는 규모이다. 압수된 통신 내용이 모두 혐의사실과 관련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7년치 통신 내용을 싸그리 훑어가는 것은 중대한 사생활 침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의 일상 생활에서 통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이니 통신 내용에 대한 국가기관의 감시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사생활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통신의 비밀은 헌법 제18조에 별도로 명시되어 있는 중요한 기본권이 아니던가.
헌법상 통신의 비밀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것이 1993년이다. 그러나 유선전화와 같은 기존의 통신매체에 "과거의 통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영장을 발부받는 순간부터 "미래의 통신 내용"에 대한 감청만을 규제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 기록매체가 발달하면서 송신과 수신이 끝난 "과거의 통신 내용"에 대한 수사가 활발해졌고 이 부분이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대상에서 빠져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이 계속 증가해온 것이다.
수사기관들은 이메일 뿐 아니라 다른 통신 내용에 대해서도 마구잡이 수사를 행해 왔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여름에는 ‘대운하’, ‘쥐박이’, ‘조중동’ 등의 검색어를 사용한 네티즌들의 신상명세를 압수수색 하였고, 흉악범 강씨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군포’, ‘여대생실종’ 등을 검색한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압수수색 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우리는 통신 내용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법원의 통제가 유명무실했다는 점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 통신 내용에 대한 감청이나 압수수색을 수사기관이 오남용하지 않도록 법원이 영장발부 과정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현행 법률들과 사회적 기대들인데, 법원은 그러한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 내용에 대한 감청 영장 역시 그 기각률이 3%(2007년 현재)에 그칠 뿐이다. 통신 내용은 다른 압수수색과 달리 당사자 모르게 행해지고 항변할 기회도 없이 지속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 보호 수준이 더욱 높아야 한다는 것을 법원이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이메일 등 통신 내용 압수수색에 대하여 통신비밀보호법에 명시하고 추후 당사자에게 통보를 해주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박영선 의원 발의)이 논의 중이다. 국회는 이 법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뿐 아니라 차제에 이메일 등 통신 내용에 대한 압수수색 대상과 기간을 특정하도록 하는 등 통신비밀을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는 보호 규범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09년 4월 24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09-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