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안)’에 부쳐
: 도대체 기본이 안 된 기본법도 있나?
1. 조롱하자는 게 아니다. 아무리 검토하고 검토해 봐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위가 21일 공청회를 시행하려는 ‘방송통신발전에 관한 기본법안'(방통발전기본법안)을 말함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경구를 새삼 떠올린다.
무릇 ‘기본법’이라 함은, 개별 사업법을 아우르고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전체 발전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나 원칙을 담을 수 있는 기본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발전기본법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공공복리의 증진이나 산업 발전이란 추상적인 목표만 언급될 뿐 이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이 결여돼 있다. 방송통신위의 권한과 관할영역을 넓히려는 데 몰두하고 있다.
특히, 공공복리의 증진이란 목표는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화촉진기본법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시청자 및 이용자의 권리를 넘어 더 발전된 내용들을 제시하기는커녕 기존의 내용마저 후퇴시키고 있다. 법 구성 체계에서 공공복리 증진은 아예 삭제돼 있다. 달랑 ‘사업자가 시청자와 이용자의 편익이 증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있을 뿐이다.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방송통신위가 하는 일이라곤 ‘시청자‧이용자 보호에 관한 계획의 수립’, ‘서비스 이용 활성화를 위한 품질평가, 교육, 홍보활동’ 등에 국한된다. 그것도 법안의 이곳저곳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나머진 온통 산업 발전에 관한 내용 일색이다.
방송통신위가 시청자와 이용자를 위해 생색을 내는 부분도 있다. 방통발전기본법안 제4조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방송통신서비스를 적정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정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본적 서비스’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이 그렇고, ‘적정한 요금’이라는 용어가 그렇다.
방통발전기본법안의 기본적 서비스 개념은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무료로 또는 적정한 요금으로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방송과 통신을 함께 아우르면서 시청자와 이용자의 커뮤니케이션 복리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규정은, 통신의 보편적 서비스를 단순 확장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지상파 방송이 제공하는 지금의 방송서비스를 통신의 개념에 억지로 끼워 넣는 것에 불과하다. 무료로 보는 지상파 방송 서비스에 ‘적정한 요금’을 적용해 유료방송을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 매우 불순한 의도가 동시에 포함돼 있다고 판단한다. 공영방송의 범위를 대폭 축소해서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서비스만을 기본적 서비스에 포함시키고, 나머지 지상파 방송 서비스를 모두 이로부터 배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 방송의 경우 공영방송이 제공하는 방송 서비스를 ‘기본적 방송서비스'(Grundversorgung)라고 부르고 있다.
2. 법안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른바 ‘방송통신’ 개념에 있다. 방통발전기본법안의 ‘방송통신’은 기존 통신 개념의 단순 확장에 불과하다. ‘공중에 대한 송신’을 핵심으로 하는 방송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방송과 통신을 통합하는 법을 갖고 있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이렇게 무식하게 방송의 고유성과 공공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전파법에서 말하는 ‘방송국’은 지상파 방송국과 위성방송국 두 가지밖에 없으며, ‘공중에 대한 송신’이라는 행위로 말미암아 방송국으로 정의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의 핵심을 이루는 옛 정보통신부 관료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실제로, 방통발전기본법이 시민사회에 흘러나온 지난 9월, 장석영 방통위 정책총괄과장은 "원칙적으로 통신과 방송 시장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알고 있음에도 의식적으로 경계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방송통신 개념은 이를 위한 근거에 해당된다고 우리는 파악한다.
3. 지금도 방송통신위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방통발전기본법안은 방송통신위의 전횡을 한층 부추길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다. 신규 서비스에 적용할 법률에 대한 판단 권한을 전적으로 방송통신위가 갖겠다는 규정(방통발전기본법 제16조)이 그것이다. 공청회 등과 같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없다. 방통위가 자기들끼리 논의해 적용 법률을 결정하면 그만이다.
방송통신위의 폐쇄성과 이기주의의 단면을 드러내는 규정도 있다. 콘텐츠 진흥을 독점하겠다는 규정이나, 방송통신발전기금과 관련된 규정이 그렇다. 특히, 막대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자기들끼리 폐쇄적으로 쌈짓돈처럼 사용하겠다는 부분에서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방송통신발전기금운용심의위원회를 방송통신위원장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게 해놨고(방통발전기본법 제33조 제3항), 이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방송통신위 규칙으로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제33조 제4항).
4. 지난 9월 방통발전기본법안이 시민사회에 흘러나왔을 때 방송통신위는 이 법에 대해 "완벽하다"고 자평하면서 다른 부처와의 협의가 문제라는 식으로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예상했던 대로 지난 10월 말 입법예고한 방통발전기본법안은 아무런 수정도 거치지 않았다. 이 법안의 입법예고는 오는 20일 끝나고, 그 직후인 21일 방통위는 공청회를 연다. 기민하고 민첩한, 그러나 매우 오만한 절차 진행이다. 방송통신위 홈페이지에는 방통발전기본법안에 온라인 의견 수렴난도 없는 실정이다.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진행되는 21일 공청회의 패널을 봐도 가관이다. 방통발전기본법안의 이해관계자는 단지 사업자만이 아니다. 시청자와 이용자, 곧 시민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다. 그런데 시민이 없다. 온통 사업자 일색이다. 일부 학계 인사들이 양념처럼 포함돼 있을 뿐이다. 공청회 패널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방송통신위의 방통발전기본법안은 ‘기본’법이 아니다. ‘사업자’법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매우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업자법 말이다.
우리는 24일 방송통신위의 방통발전기본법안에 대한 대안법률을 설명하는 토론회를 연다. 누가 더 많이 방송과 통신의 통합과 융합 과정에서 시민의 공공복리과 산업의 발전을 고민하는지 비교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08년 11월 19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2008-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