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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문서 캠페인> ‘열린 문서’로 문서의 가치는 쑥 올리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센스까지.

By 2008/07/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오병일

* 열린문서 캠페인
http://www.ipleft.or.kr/bbs/view.php?board=ipleft_5&id=480&page=1&category1=2

‘열린 문서’로 문서의 가치는 쑥 올리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센스까지.

김지성 (정보공유연대 운영위원,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열린 문서 캠페인"을 가장 간단하게 이해하는 방식은 아마도 문서를 저장하는데 있어서 아래아한글의 hwp나 MS워드의 doc 파일 포맷과 같은 특정 회사의 문서편집 프로그램만의 독자적인 파일 포맷 대신에 txt나 HTML과 같이 공개된 표준 파일 포맷을 이용하자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선뜻 "열린 문서" 또는 공개 문서 포맷을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캠페인이 특정한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쓰지 말 것을 혹은 쓸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것 같다.그러나 이 캠페인은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를 쓰지 말고 공개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공개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의 장점도 있지만, 이 캠페인에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선택은 부차적인 문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캠페인은 문서를 저장하는 포맷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핵심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를 쓰더라도 저장하기 버튼을 눌렀을 때 고를 수 있는 파일 포맷은 최소한 대여섯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러분이 쓰는 소프트웨어가 무엇이든지 여려분은 제공된 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떤 파일 포맷으로 저장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열린 문서 캠페인"은 여러분이 문서를 저장할 때 어떤 파일 포맷을 사용하면 좋을지 판단하는데 몇 가지 선택의 가능성과 판단 근거로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문서의 저장 파일 포맷을 고민하고 선택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다고요?

머리 아픈 문제도 많고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이 세상에서 문서를 저장하는 파일 포맷까지 고민을 한다니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이미 문서를 저장할 때마다, 그리고 문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마다 파일 포맷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여러분이 속한 인터넷 동호회에 글을 올릴 때, 게시물에 간단한 제목 정도만 본문에 쓰고 hwp파일을 첨부하는지, 아니면 hwp 파일의 본문 내용을 복사해서 게시물 본문에 붙여넣기를 하는지 생각해보라. 너무 긴 글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아마도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할 것이다. 그래야 동호회의 다른 회원들이 별도로 첨부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아래아한글을 열어서 보는 복잡한 과정 없이도 바로 웹 브라우저에서 내용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때, 복사해서 게시물 본문 작성 란에 붙여넣기를 한 것은 기술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경우 hwp 파일을 txt나 HTML 파일로 변환하여 저장한 것과 동일한 의미다.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 같이 일을 하는 동료에게 새롭게 변경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 표를 이메일로 보낸다고 생각해보자. 표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표를 원래 작성했던 hwp 파일에서 해당하는 표를 복사해서 내가 쓰는 웹메일의 메시지 본문 작성 란에 붙여넣기를 하고 메일을 보낸다. 이 경우 십중팔구 이 표는 hwp가 아니라 HTML 포맷으로 바뀌어 동료에게 보내진다.
이 두 경우는 첨부할 것인지 본문에 바로 붙여넣기를 할 것인지와 관계된 것이지만, 우리가 문서 저장 포맷을 어떤 기준에 따라 선택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조금은 비약해서 말하지만, 이 경우 파일 포맷의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은 누가 이 문서를 어떤 환경에서 어떤 용도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을 자신만이 볼 것을 전제로 문서를 작성한다면 파일 포맷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질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무리없이 작동하고 내가 익숙하고 구하기도 쉬운 문서편집 프로그램을 쓰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소프트웨어가 내 컴퓨터에서 잘 작동하고 나에게 익숙한지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이 잘못될 확률은 아주 작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작성하는 문서의 대부분은 누군가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내가 어떤 환경에 있으며 어떤 용도로 이용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내가 작성한 문서를 받은 사람의 컴퓨터 환경과 이용할 용도에 대해서는 보다 적은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작성한 문서를 이용할 대상을 내가 특정하기 어렵거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내가 작성한 문서를 보고 이용할 사람들의 컴퓨터 환경과 이용 방식에 대한 정보가 적어지고 불확실성은 높아진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작성한 문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바로 이 캠페인의 출발점이다. 그럼 이제 어떤 상황에서 ‘열린 문서’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지금 저장하는 파일 포맷으로 문서를 보냈을 때 받은 사람이 볼 수 있다고 얼마나 확신하는가?

우선 내가 작성한 문서를 받아볼 사람의 컴퓨터(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환경에 대해 가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전에 내가 속했던 조직에서 전국에 고르게 분포한 수백 명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주간 소식지를 hwp파일로 정기적으로 이메일로 발송했다. 얼마나 많은 활동가들이 소식지를 제대로 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평소에는 아래아한글 97 버전의 hwp파일로 보내던 것을 잘 못 해서 아래아한글 2004 버전의 hwp파일 포맷으로 보낸 적이 있다. 당장 전화로 항의를 해 온 활동가들이 있었다. 문제는 예상하다시피 아래아한글 2004 버전 소프트웨어가 없었던 것이다. 수십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제일 복잡한 서식이라고 해봐야 표 정도였던 소식지를 hwp로 보내지 않고 HTML 포맷으로 저장해서 보냈다면 어땠을까? 아래아한글 버전 문제로 이런 항의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혹시 리눅스를 쓰는 활동가가 있다고 해도 아래아한글을 구할 필요없이 웹 브라우저를 통해 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한글 뷰어 소프트웨어가 있으니 꼭 아래아한글 97 버전이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HTML로 보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5년 후에 대부분의 컴퓨터에 아래아한글 97이나 한글 뷰어 소프트웨어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보다는, 웹 브라우저(공개 소프트웨어 또는 윈도와 같은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가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하는 웹 브라우저가 이미 원도, 리눅스, 맥 OS 용으로 존재한다)는 최소한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나아가 웹 브라우저가 대부분의 컴퓨터에 깔려 있지 않더라도 HTML의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제목 글씨라든가 표의 모양은 제대로 보지 못하더라도 윈도의 메모장과 같은 텍스트 파일을 읽을 수 있는 간단한 소프트웨어에서 HTML 파일을 불러들이면 내용은 다 볼 수 있다. hwp 파일이나 doc 파일은 이러한 텍스트 파일을 읽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보면 많은 부분이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기호 형태로 이미 변형되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문서를 받는 사람의 컴퓨터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면 가장 확실한 전달 방법은 줄 바꾸기 정도 외에는 아무 꾸미기 기능이 없는 txt 파일이나 웹 페이지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HTML 파일로 저장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작성한 문서를 5년 후에 내가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고, 지금 이 문서를 받은 사람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용도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았는가?

이제 문서를 작성한 내가, 그리고 문서를 받은 상대편이 문서를 이용하는 용도에 대해 가정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금 촛불시국에서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 언론 불매운동에 대한 내 생각을 담은 글 한편을 내 친구 길동이에게 전하기 위해 작성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상황에서 파일 포맷은 내가 쓰기 편하고 친구 길동이가 읽을 수 있는 포맷이면 될 것이고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2008년 촛불시국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고 그때 길동이에게 보낸 글, 당시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 이곳 저곳에서 주최한 관련 토론회의 자료집 글들을 모아서 검색 가능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자. 수천 건을 모아서 개발자(또는 회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개발자가 파일 포맷이 어떤 건 txt, 어떤 건 HTML, 어떤 건 hwp, 어떤 건 doc, 어떤 건 PDF라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 가능하게 저장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거나 아니면 파일 포맷을 자동으로 변환할 기술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아마도 개발자도 아쉬워하면서 txt, ! HTML 또는 PDF 파일들 만이라면 포맷을 바꾸는데 드는 프로그램 개발 시간이나 수동으로 변화하는데 드는 인력을 거의 안들이고 금방 됐을텐데요라고 말할 것이다.

앞에서 든 예가 좀 먼 이야기 같다면 좀 더 가까운 현실의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여러분들이 일하는 조직에서 생산되는 각종 자료를 검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고 가정하고 아는 개발자에게 이러한 검색 시스템을 만드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어보라. 아마도 백이면 백, 문서의 파일 포맷을 들 것이다. 공개 표준의 문서 포맷으로 문서들이 저장되어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포맷을 변환하거나 필요한 내용을 추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공개 소프트웨어로 이미 존재하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있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약간의 자동화에 필요한 프로그래밍만 하면, 나머지는 일반적인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쉽게 해줄 수가 있다.

이제까지 ‘열린 문서’로 저장하는 것이 문서를 받는 사람의 컴퓨터 환경과 해당 문서의 이용 용도에 대해 불확실한 가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가상의 또는 현실의 상황을 들어서 제시해봤다. 이런 불확실성이 여러분이 작성하는 문서에도 존재한다면, 인생은 불확실의 연속이니 지금 확실하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불확실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까지 고려해본다면, 열린 문서로 저장하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PDF는 잠시 언급하기는 했지만 PDF나 오픈다큐먼트 파일 포맷과 같은 ‘열린 문서’ 표준 포맷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 두 포맷의 경우에는 txt나 HTML과는 좀 더 상황이 복잡한 측면이 있어서 이 글에서 다루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txt나 HTML 파일로는 내가 특정 문서에서 필요한 기능과 양식을 채워줄 수 없는 경우, 표준 포맷과 hwp나 doc와 비교하는 것은 좀 더 면밀히 다룰 필요가 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8-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