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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센터 초기 사업 및 과제

By 2010/05/17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발족 직후 1998년 11월 15일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초기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사회운동에 대한 네트워크 서비스를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초기 진보네트워크 서비스는 기존 참세상 BBS 커뮤니티의 기반 위에서 시작하였으며, 인터넷 서비스는 정보연대 SING에서 제공하던 사회운동 디렉토리와 웹호스팅, 그리고 메일링리스트 서비스를 이전받아 시작하였다.

1998년~99년의 최대 과제는 ‘이용자 확대 및 재정/서비스 안정화’였다. 진보네트워크가 설립 취지에 맞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진보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아져야 한다. 또한 당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고정적 수입기반은 ‘이용료’였기 때문에 이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였다. 네트워크는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으며, 거꾸로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가 확보되면 자생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네트워크의 특성상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를 확보하는 것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기본 전제로 인식되었다. 1998년 말 당시 실제 유료 이용자는 약 800명 정도였는데, 99년까지는 2000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또한, 서비스를 기술적으로 안정화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설립 당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취지에는 기본적으로 동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영리 단체가 지속적으로 안정적이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의구심을 나타내었다. 기존의 참세상 서비스를 이월받았기 때문에, 참세상 시스템(‘마음’ 시스템이라고 불린)에 적응하는 과도기에는 간혹 서비스가 불안정해지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신뢰를 갖고 진보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안정성이 필수적인 요건이었다.

참세상 BBS에뮬레이터로 접속한 참세상 BBS 첫화면

 

 

 

 

 

 

 

 

초창기 진보네트워크센터 사업팀은 조직/기획팀, BBS 서비스팀, 웹서비스팀, 기술팀, 교육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조직/기획팀은 부문 및 지역 네트워크 조직화에 주력하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함께 설립된 노동네트워크의 안정화를 위해 민주노총 및 산하연맹, 노동관련 단체의 CUG 이전 또는 신설을 지원하였다. 또한 인권DB를 통한 인권네트워크, 학술 단체를 중심으로 한 학술네트워크, 여성관련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네트워크 구축 등 각 부문네트워크의 특성에 맞게 부문네트워크 추진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지문날인 거부운동, 통신검열 반대운동, 지적재산권 토론회 개최, 99년 노동미디어행사(LaborMedia ’99) 개최 등 정보통신 이슈에 결합하기도 하였다.

당시 진보네트워크의 중심 서비스는 참세상 BBS였기에 BBS 관리 및 활성화를 위해 많은 역량이 투여되었다. 재정을 고려하여 BBS 이용료를 4950원으로 인상(당시 대부분의 상업통신망의 이용료는 9900원이었다)하는 한편, 이용요금을 보다 편리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노조 및 단체의 CUG 개설을 홍보하는 한편, 상업통신망에서 참세상으로 CUG를 이전할 경우 데이터 이전을 지원하였다. 동호회, 꼬마게시판(꼬마게시판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블로그와 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게시판이다) 등 이용자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한편, 인권하루소식, 작은책, 시민의신문, 노동조합정보 등 진보진영의 데이터베이스를 보다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9년 2월 18일, 나우누리에 있던 민주노총 CUG가 참세상으로 이전해왔다. (나우누리 CUG는 5월 18일 폐쇄되었다.) 민주노총 CUG가 이전해오면서 참세상 이용자가 급증하여 1999년 하반기에는 20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웹서비스팀은 진보네트워크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진보디렉토리(KPD, 운동 영역별로 단체 및 노조 홈페이지 링크를 디렉토리 형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참세상 뉴스, 그리고 인터넷 방송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공하였다. 기술팀은 BBS 및 웹서버를 관리하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였다. 정보연대 SING에서 이전받아 메일링리스트 및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1999년에는 전화로 인터넷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PPP 서비스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서비스의 문제(버그)를 해결하는데 노력하였다. 교육팀은 교육장이 없는 상황에서 외부 교육장을 빌려 사회단체 실무자 정보통신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1999년 10월 29일 20석 규모의 교육장을 개관하고 정규 강좌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