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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미식 지재권 도입과 우리의 과제 / 우지숙

By 2007/06/09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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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숙/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에 의하면 지적재산권이 높은 수위로 강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역자유화라는 것이 보호장벽을 철폐하여 개방과 경쟁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이 확대·강화되어 오히려 ‘보호’장벽이 더 높아지고 규제와 독점이 심화되었다.

– FTA로 더 높아진 보호장벽 –

보호 기간만 보아도 그렇다. 30세에 글을 쓰고 6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도 저작권 보호는 이제 100년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 글을 번역하거나 편집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려면 매번 저작권자를 찾아 동의를 받고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큼 새로운 저작물이 만들어질 기회는 줄어든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디지털 저작물처럼 수명이 짧은 저작물에 대해서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용을 제한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새로운 지적산물을 만들고자 하는 신생기업 및 후세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된다. 저작권의 강화가 혁신을 저해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은 저작물에 대한 보호장벽을 높이는 것일까. 세계 콘텐츠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생산국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와 문화가 어떻게 혁신에 대한 위협을 상대적으로 막아왔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사법제도의 역할이 크다. 분쟁과 이해관계의 조절이 궁극적으로 법원에서 이루어진다. 권리의 행사와 분쟁의 조정을 위해 정부의 개입보다는 개인의 자기구제를 선호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한 쪽의 권리가 남용되어 다른 쪽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사적 장치들이 발전해왔다. 저작권 강화를 반대하는 통신업계, 온라인서비스제공자, 이용자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들이 법원과 의회 등 미국 내 여러 장에서 각축을 벌이며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독점의 폐해를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고 미국과 달라야 할 점은 무엇인가.

배울 점이라면 우리 이용자들과 인터넷 업계도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기술적 보호조치 강화, 일시적 복제권 인정, 비친고죄 범위 확대 등으로 저작자의 권리행사가 용이해지는 것에 비해 권리의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사적?공익적 이용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공정이용의 원칙을 법제화해야 한다. 제도화된 이용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개인들을 대리하는 시민단체와 변호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저작권자와 이용자는 지식과 자본력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공익적 이용권리 법제화 필요 –

반면 우리가 미국과 다르게 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계속되는 정보의 사유화 현상에 대응하여 적극적으로 공공영역을 지켜야 한다. 올해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학위논문들을 무료로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저작권 신탁기관에 의해 피소된 바 있다. 가장 열려있어야 할 공공도서관의 전자적 이용마저 저작권침해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저자가 원하지 않아도 제3자가 제소할 수 있는 비친고죄로 저작권 규정이 바뀌면서 공공도서관 및 학술서비스에 대한 공격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학문의 영역에까지 사유재산의 논리를 적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집단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공공부문의 대응은 매우 미흡하다. 시장과 사적인 영역이 강화될수록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공적 영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6월 8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081804311&code=990303

2007-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