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닫힌 ‘방’에서 열린 ‘마당’으로

By 2003/10/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고영근

온라인게임, 아직도 PC방 견인차

90년대 후반 PC방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PC방’보다는 오히려 ‘게임방’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당시에는 주로 학생들이 PC방을 ‘껨방’이라 부르며 드나들었고, PC방에 오는 주된 이유는 온라인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스타크래프트는 PC방을 먹여 살리는 가장 큰 일등공신이었고, 이 때 ‘쌈장’과 같은 프로게이머들은 일약 스타가 되어 TV 광고에도 출현했다.
그때 만해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시들면 PC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PC방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PC방이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예전보다 PC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다양해졌지만, 아직까지도 PC방에서 주로 하는 것이 온라인게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스타크래프트 후속버전과 함께 리지니, 포트리스,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한게임, 엠게임, 레인보우 식스,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수많은 게이머들은 아직도 PC방을 찾고 있다.

담배연기 없는 쾌적한 공간으로

온라인 게임이 아직까지도 PC방의 주 종목이기는 하지만 온라인게임만으로는 PC방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PC방으로 불러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판단에 따라 PC방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 PC방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PC방 하면 으레 침침한 조명에 굴뚝같이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게임으로 날 샌 충혈 된 눈의 게이머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만일 이런 PC방이 있다면 이제는 얼마 못 가서 문을 닫아야하기 때문이다.
요즘에 PC방을 찾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쾌적하고 아늑한 PC방을 선호한다. 담뱃재 날리는 시끄러운 PC방에는 손님이 찾아오지도 않는 상황. 또 지난 7월부터는 PC방이 아예 의무적인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담배연기가 자욱한 PC방은 이제 쉽게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성인전용 PC방이라 해도 PC방의 절반 이상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하고 흡연석과 금연석을 따로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백만원의 벌금을 물어야하기 때문. 이에 대해 PC방 업주들은 울상이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 애연가들이 PC방을 찾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이유에서다. 삼성동에 있는 ‘메가웹스테이션’이라는 프렌차이즈 PC방에서는 흡연석만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 이들이 대기할 수 있는 휴게실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까페나 미술 전시회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PC방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 PC방은 주로 대학가나 젊은 층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대입구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PC방인 ‘버그버그’는 PC방이 아닌 ‘PC 까페테리아’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아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캔 음료가 아닌 직접 만든 음료를 제공하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영화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이는 게이머들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PC방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PC방은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PC방이 다른 게임분야나 DVD방 같은 다른 ‘방’과 접목되는 추세도 눈길을 끈다. 요즘 들어 PC방에서 일본 소니의 비디오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PS2)를 지원하는 곳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디오게임보다는 PC용 온라인게임을 더 많이 하지만, 외국에서는 TV에 게임기를 연결해 하는 비디오게임이 더 인기다. 이런 비디오게임이 인터넷을 지원하면서부터 플레이스테이션2(PS2)를 설치한 게임방, 일명 ‘플스방’도 생겨나고 있다.
PC방 프랜차이즈업체인 ‘TNT존’의 경우는 PC와 플레이스테이션2가 하나로 묶인 일체형 기기에서부터 DVD룸, 아케이드 오락실 게임기까지 갖춘 ‘멀티방’을 내세우며 젊은 층을 유혹하고 있다. 한 시간 이용요금은 PC는 천원, PS2는 1천5백원, DVD는 7천원 정도. PC방은 이렇게 다양한 디지털디바이스와 서로 융합하면서 점차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공간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프랜차이즈를 통한 대형화 추세

PC방의 이러한 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외적인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프랜차이즈화를 꼽을 수 있다. 이는 현재 1시간에 1천5백원 이하의 이용요금을 받아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PC방도 점차 기업화되고 있기 때문. 요즘 웬만한 대학가나 번화가, 심지어 동네구석까지 PC방이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여기에 집집마다 깔린 초고속인터넷은 PC방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PC방은 점차 프랜차이즈형태를 띠고 대형화되면서 작고 서비스가 좋지 않은 중소PC방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PC방의 프랜차이즈화는 대형화와도 맞물려 있다. PC방은 처음에 ‘방’이라 불릴 만한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최소 1백평 이상에 50석을 넘게 갖춘 ‘마당’ 같은 PC방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가게이름을 플라자나 스테이션, 클럽, 센터 등으로 붙이는 곳들도 많아졌다.

200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