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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By 2003/10/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이원재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의 문화, 특히 ‘노는 문화’는 대부분 ‘방’에서 생성되고 소멸되어 왔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이 있다. ‘룸싸롱’(왜 방싸롱이라고 부르지 않지?), 노래방, 비디오방, DVD방, 전화방, 찜질방, 만화방, PC방…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방’들이 불철주야 놀이문화의 확산을 위해 맹활약(!)하고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방’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방문화’가 끊임없이 창조와 변형을 반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시대에 자신 있는 수출 상품으로 추천될 정도로, 한국은 고도의 방문화를 보유한 국가임에 틀림없다.

방문화, 공간과 놀이의 유료화

개별 ‘방’들의 엄연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방문화’ 또는 ‘방산업’들에는 동일한 탄생 설화가 존재한다. ‘공간의 구획을 통한 유료화’라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바로 그것.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방문화의 산업화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생성 및 투기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간의 특이성과 무관하게 공간을 철저하게 구획·분할하고, 각각의 미분화된 공간을 사유화·유료화 하는 것이 바로 공간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절대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공간을 둘러 싼 주체와 사회성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물리적인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공간을 전락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공간을 가장 극단적인 밀도로 미분화, 정형화하고 각각의 면적을 철저하게 유료화한 거주문화의 결과가 바로 살벌한(!) 아파트 단지이듯이, 방문화는 도심 곳곳의 놀이공간을 철저하게 구획?배치하여 유료화?산업화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문화가 아파트, 빌딩, 토지 등과 다른 이유는 바로 ‘공간의 구획을 통한 유료화’가 ‘공간을 통한 놀이문화의 유료화’로 연동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보다도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조차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철저히 구획된 유료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생활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체득케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컴퓨터게임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계약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러한 지불행위가 없이는 더 이상 놀 공간과 놀 것이 없다는 자본주의의 진실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한편 방문화의 또 다른 특성은 시간의 연장, 정확하게 말해 소비 시간의 무한 확장이다. 대부분의 방문화가 놀이산업에 있어 공백으로 인식되었던 야밤(?)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공간의 이윤창출과 관련하여 집약되고 효율화된 방산업은 노동시간의 통제와 여가시간의 소비문화를 넘어 24시간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놀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PC방, 정보자본주의의 판타지

PC방은 방문화(방산업)의 한 종류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PC방은 태생적으로 공간에 대한 자본의 억압을 고스란히 내재하고 있다. PC방에서는 철저히 구획된 컴퓨터와 의자 그리고 시간이 돈의 함수 속에서 운영된다. 이용자가 경험하는 인터넷, 게임 등에 대한 동일시는 동시에 공간과 놀이의 유료화에 대한 동일시이다.
하지만 PC방은 정보자본주의, 테크놀로지, 게임산업, 하위문화 등의 새로운 내용물들에 의해 또 다른 의미화를 경험한다. 그래서 PC방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입장은 철저하게 이중적이며 모순적이다. 먼저 PC방은 그 동안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정보화의 상징이자 알리바이이다. 정부, 특히 정보통신부는 PC방을 매개로 확산돼 온 인터넷문화, 게임문화 등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고자 언제나 PC방의 사회적 가치를 과대포장 해왔다. 한 꺼풀 벗기면 별 볼일 없는 한국의 정보화, 디지털화를 유지시켜주는 알리바이 중의 하나가 바로 PC방이기 때문이다.
한편 청소년의 사회적 문제가 PC방에 접속되는 순간, PC방은 악의 근원이자 탈선의 소굴로 변신한다. 가끔 뉴스를 장식하는 PC방의 다양한 사건들은 청소년 보호론자의 손을 한번 타고나면 놀라울 정도로 과장되고 일반화되어 게임문화, 인터넷문화 등에 대한 규제와 통제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한다. 이 순간 PC방의 역할은 정보화의 상징에서 ‘구조화된 청소년 문제에 대한 지배권력의 무기력함을 대신 책임져야 할’ 희생양으로 돌변한다.
따라서 PC방은 공간과 놀이의 유료화 거점인 동시에, 정보화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수많은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하수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정부와 언론이 떠들어대는 정보화의 상징과 청소년 문제의 원흉이라는 널뛰기에도 불구하고, PC방의 실체는 ‘공간과 놀이의 유료화에 대한 최신(또는 정보화) 버전’일 뿐이다. 여전히 PC방은 수많은 사회적 가치를 배제한 채, 오직 자본의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이테크산업의 노드이자 놀이산업시장으로서 그 기능을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방문화, 방산업의 무차별적인 확산이 놀이문화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지연시킨다는 사실이다. 아니 방문화를 통해 훈육된 우리는 어느새 놀이터, 광장, 공원, 공공문화시설 등 놀이와 관련된 최소한의 사회적 공공성과 문화적 권리조차 망각하고 있다.
이제 걸핏하면 등장하는 PC방을 둘러 싼 자본의 이해관계 이전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영역, 놀이공간, 놀이프로그램 등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말로만 정보화, 디지털화 하지 말고 ‘공공도서관이나 미디어센터는 물론 디지털놀이문화센터 같은 것을 건립하여 각종 문화콘텐츠를 공공문화기반시설에서 열람하고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정부를 괴롭히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200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