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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와 전자주민카드의 위험한 발상{/}무엇을 위한 전자정부인가?

By 2003/10/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추미애

만약 여기저기 널려있는 나의 전산자료를 한데 모아서 누군가 ‘이것이 바로 너’라고 들이댈 때, 정작 나는 어떻게 ‘진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전자정보가 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상세하고 객관적인 자료로 인식되고, 그것이 일반화되었을 때, 인간은 더 이상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귀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전자적 정보 대상 그 자체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실존을 전자적 동일성만으로 판별하고자 할 때 인간은 정보의 대상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이 편리성이란 이름의 도구 앞에 스스로를 증명을 하지 못해 쩔쩔매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정보화의 미명으로 정부와 기업은 사람의 인격마저도 객관화하여 정보대상으로 다루려고 시도한지 오래이다. 그러나 인권의식이 몸에 배인 스웨덴, 영국 같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정보화의 거대한 물결 앞에 개인은 거의 무방비 상태이다.

NEIS의 논란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최근 다시 전자주민카드사업의 망령이 부활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무엇을 위한 전자정부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보화를 통한 신속성과 편의성 추구의 목적도 그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복지향상에 도움이 될 때 유용한 것이다. 그런데 결국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은 온 국민의 정보를 무방비로 노출 시켜 ‘컴퓨터로 통제하는 사회 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부터 행자부가 서두른 전자주민카드사업은 개인의 주민등록사항에 관한 정보를 정부가 전산처리 하여 통합 관리하고, 기관간에 정보공유를 할 수 있도록 하며 개인에게 발급된 카드로 주민정보를 어디서나 확인 받을 수 있음으로써, 각종 민원서류의 발급 없이 신속하고 간편한 장점이 있다고 알린 전자정부사업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보자료에 대한 보안의식 수준과 보안기술이 취약한 상태에서 개인 신상정보를 전자적으로 통합·관리하도록 정부에 맡겨놓는다는 것은 정보인권을 침해할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개인 주민정보가 전산으로 집적됨으로써 다른 자료와 쉽게 결합할 수 있고, 개개인에 대한 가공할 전산 파일이 형성될 수 있으며 누군가 이를 남용, 악용하고자 의도할 때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체적 인격을 상실하거나 가공된 정보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국회에서 전자주민카드사업을 줄기차게 반대하였으나 다수당의 힘에 밀려 전자주민카드 사업을 도입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을 끝까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개정법시행 직전 마침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나는 인수위의 결정으로 1998년 초 감사원의 감사를 받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감사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전자주민카드사업을 간신히 백지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교육부가 국민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그머니 ‘NEIS’란 것을 전자정부사업으로 꺼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전자주민카드사업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다.
NEIS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교육부는 교사들의 학사·교무 등에 관한 서류작성과 행정 업무를 전산으로 처리함으로써교사들의 잡무를 줄여 교육에 전념하도록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교사들을 위한 것이라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일선 교사들은 70%이상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NEIS는 교사의 주관적?일시적 견해와 판단에 불과한 학생 개인에 대한 지극히 민감한 정보도 담고 있다. 만약 이런 정보가 누출될 경우, 정보주체에게 회복할 수 없는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인간교육을 마치 식물을 기르듯이 할 수는 없다. 식물은 컴퓨터 제어시스템으로 영양분을 자동 공급하면 재배될 수 있지만, 인간은 컴퓨터 제어시스템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은 실수와 교정이 반복되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준비과정에 있는 인격을 다루는 교육이야말로 가능한 한 피교육자의 개성에 맞추는 개별교육을 지향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피교육자를 대량 정보의 객체로 다룬다면 교육자에게 피교육자에 대한 예단을 가지게 하여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차단할 위험성이 있다. 결국 교육의 목표와 이상에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 사업이나 NEIS 사업은 기술적 효용을 추구하는 기업이 뒤에 작용하고 있다. 전자주민카드 사업 추진 당시에도 시스템 통합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사업추진에 집착을 보였는데, NEIS 사업 뒤에도 삼성 SDS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부담하지 않고 정부의 예산으로 스마트카드 분야의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의식 없는 공무원과 사욕이 앞선 기업의 공모로 전 국민의 인권을, 전국의 학생을 실험도구나 기술 개발의 대상으로 삼아 정부의 예산을 사기업의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는 셈이다.
NEIS를 도입하면서 그간 CS에 투입된 막대한 돈을 날리게 된 사례처럼 기술 개발 연구에 따른 회수 불가능한 개발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탕진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전자주민카드 사업이 다시 부활하지 못하도록 전 국민이 ‘정보인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스웨덴에서는 개인 정보의 수집 처리를 위해서는 정보감찰국으로부터 면허를 취득하는 등 그 관리가 매우 엄격하다. 또한 설령 개인이 정보 수집에 동의하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민감한 정보는 처리자체가 금지된다. 우리도 이를 참고하여 정부가 이미 서류로 보유하고 있는 정보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민감한 정보는 전자적 처리자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보화의 목적도 사회 복지향상에 기여하도록 정보화의 방향을 바꾸어야한다. 외국의 스마트카드활용은 교통, 금융 등의 서비스 분야에 실용적으로 활용되거나 복지 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 복지 수혜자의 신분을 가려내기 위해 활용되는 데 그친다. 우리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까지 정보화함으로써 사람의 인격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경우는 없다.
생활비 한 푼이 없어 어린 세 자녀를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시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뉴스를 접하면서 아무도 그들의 가난과 소외로 인한 절망을 눈치 채지 못한 잔인한 우리 사회가 참으로 부끄럽다. 누구나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정보화는 유용한 도구개념이 되어야한다.

지금처럼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가난과 소외에 관한 정보도 담아내지 못하는 정보화 사회는 공허한 것이다. 전 국민을 정보로 제어하려는 군사 문화의 발상에서 벗어나 실업과 취업 , 탁아, 육아, 청소년, 환경, 노인문제 등 지역공동체에 관한 정보를 담아 지역 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보화의 방향을 바꾸어야할 것이다.

200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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