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타미플루 강제실시와 국영백신생산시설 설립을 포함한
조류독감대책을 마련하라
조류독감(avian flu, H5N1)이 루마니아, 터키, 영국 등 유럽의 가금류에서
확인되면서 인플루엔자의 전세계적 유행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현재까지 유일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확보와 백신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농림부를 통한 조류독감경보와
7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했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영국정부가 인구당 두 명분인 1억 2천만개의 백신을 주문하고 중국이
국경봉쇄라는 극단적 수단을 거론하는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인플루엔자
전세계 유행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우리는 유독 한국정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정부는 국민생명보호라는 기본적 책무에 대해 전적인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즉시 조류독감에 대한 다음의 기본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1. 정부는 즉시 타미플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시행하라.
조류독감 치료제는 스위스 로슈가 특허권을 가진
오셀타미비어(oseltamovir, 상품명 타미플루)가 사실상 유일한 치료제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각국이 인구 20% 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할 것을 권고하였고
각국의 전문가들도 최소한 10%에서 30%까지의 확보를 말한다. 한국정부가
확보해야 할 양은 최소 500 만명에서 1500 만명 분에 해당한다. 현재
모자라는 양은 최소 400만명분의 타미플루이다.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방역조치가 없으면 사망자가 44만명이며 방역조치를 해도 사망자가
9만-14만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타미플루의 확보는 수십만명의 생사가 걸린
국가비상사태이다. 문제는 타미플루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슈는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보장하는 2016년까지의 특허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유럽에서 타미플루는 동이 났다. 생명 보다
이윤을 내세우는 거대제약회사들은 HIV/에이즈 복제약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연간 300만명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로슈가 바로 이 제약회사 중
하나이다. 로슈의 주가는 지난주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였다. 현재 로슈와
1997년 타미플루 특허권의 독점사용권을 로슈에 준 길리어드 사이언스
회사가 이 와중에 추악한 특허권 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타미플루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가비상사태나
공익을 위한 비상업적 목적의 경우 특허권을 정부가 이용하는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가 유일하다. 올해 5월 일부 개정된
특허법의 강제실시규정은 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이 보장하고 있는
범위보다 협소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 법으로도 강제실시가
충분한 상황이다.
이미 태국정부가 강제실시방침을 밝혔고 대만, 필리핀, 아르헨티나, 중국
정부 등이 강제실시나 이에 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특허법 106조와 107조는 강제실시를 할 수 있도록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내제약사들은 빠르면 4개월정도에 값싼 타미플루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수십만명의 국민생명이 달려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망설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 국민의 생명보다 외국 제약회사의 이윤이
중요하지 않다면 정부는 당장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시행하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타미플루 특허의 강제실시를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강제실시를 청구할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이나 개도국에 수출하기 위한
강제실시가 포함될 것이다. 당장 북한의 경우 타미플루 보유량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와
같이 국제화된 시대에서 북한이나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값싼 타미플루의
공급은 인도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방역대책으로도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상황이다.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가 입법된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2. 정부는 국영 백신생산시설을 즉시 설립하라.
정부가 최근 의료부문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세우는 것은 한국 생명공학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정부는 이 생명공학의 기반을
가지고 왜 국영백신공장 하나 만들지 못하는가? 정부는 생명공학을
언급하면서 매번 영리병원의 필요성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이윤을 위한 생명공학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위한 기본시설이다.
한국의 의료수준과 BT 수준이면 국영백신공장 하나 만드는 것은 정부가
생명공학에 지원하는 연간 1조원에 가까운 돈의 극히 일부만 지원하면 당장
설립가능하다. 당장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그 해결책은 전국민적 백신의
접종이다. 백신이 설사 외국에서 개발되어도 그 값은 천정부지일 것이며
생산국들의 자국민 보호정책 때문에 적시에 공급될 수도 없다. 물론 정부는
백신주문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작년 건강증진기금으로 설립 진행중이던
국영백신 생산시설을 중단시키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정부가 당장 국영 백신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독감백신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3. 정부는 방역대책의 확립을 통해 국민들에 대한 책무를 다하라
현재 정부가 내놓는 방역대책은 타미플루 70만명 분 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2003년 사스유행 당시 국립서울대병원이 사스환자를
거부했던 사실을 잊지 못한다. 당시 물론 사립병원은 사스환자의 입원을
모두 거부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인플루엔자 유행시 필요한 격리병상수는
누적 병상수로 77만 병상이다. 우리는 이 격리병상을 정부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묻는다. 새로운 전염병이 예상될 때마다 이야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보건의료 공공인프라이다. 공공병상수가 전체병상수의 8%에 불과한 상태에서
기본적 방역대책은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차제에 정부는 신종전염병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공공의료기관을 국가의 기본인프라의 하나로
취급하여 30%까지 확충하겠다는, 이미 추진을 포기한 자신의 공약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또한 정부가 가금류 사육 농가피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이미 산지에서는 닭이 한 마리에 50원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쌀협상에서 농업을 패배사업으로 규정하여 농민들의 삶을 막바지로 몰아넣은
정부가 구제역과 조류독감대책에서 지금까지 보인 행동은 농민들의 삶을
고려한 대책이 아니었다. 정부는 당장 피해를 보고 있는 농가들의 피해와
앞으로의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대책을 밝혀야 한다.
우리는 조류독감의 상황에 대해 과장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조류독감은 가금류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새로운 인플루엔자의 발병은 필연적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정부가 할 일은 국민들을 대책도 없이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새워놓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조류독감에 대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는커녕
최소한의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당장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시행하고 국영백신생산시설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의료시설을
차제에 확보하고 국민들이 신뢰할 방역대책과 농가피해보상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기본적 책무는 국민생명의 보호이며 이윤이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2005. 10. 25.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 노동건강연대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정보공유연대(IPLeft),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200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