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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개발 아젠다(DDA) 협상과 지적재산권 논의 동향2

By 2003/10/20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남희섭

DDA 지적재산권 협상의 개요

세계무역기구(WTO)는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각료회의에서 새로운 라운드를 출범시켰다. 원래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새로운 라운드를 출범시키자는 합의는 1998년에 있었지만, 1999년 시애틀 제3차 각료회의에서 합의에 실패하였고, 2001년이 돼서야 새 라운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뉴라운드’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개도국의 반감을 감안하여 공식용어로 ‘도하 개발 아젠다(DDA: Doha Development Agenda)’를 채택한 DDA 협상은 뉴라운드의 출범 그 자체를 가장 큰 성과로 꼽기도 하는데, 주요 합의사항으로는 농산물, 비농산물, 서비스 분야의 무역 자유화 문제, 반덤핑, 보조금 협정 등 기존 협정의 개정 문제 및 무역 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투자, 경쟁 정책 등 싱가포르 이슈의 향후 협상 계획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협상 및 기타 소규모 경제와 극빈 개도국 문제 등을 들 수 있으며, 이행문제 중 일부의 해결방안에 대한 특별선언과 함께 공중보건과 TRIPS 협정에 대한 특별 선언이 있었다.

DDA 협상에서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의제는 크게 5가지이다. 첫째 협상 의제로 채택된 포도주와 증류주(spirits)의 다자등록 시스템. 둘째, 공중보건과 관련된 검토의제, 셋째,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 보호의 확대(검토 의제), 넷째, 생명공학 관련 검토 의제, 다섯째, 비위반 제소 문제. 이 가운데 포도주와 증류주의 다자등록 시스템, 생명공학 관련 의제 중 미생물의 특허 가능성 문제, 비위반 제소 문제는 TRIPS 협정 성립 당시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향후 검토하기로 했던 소위, ‘기설정 의제(built-in agenda)’들이다. 이 의제들은 애초 2002년 말을 시한으로 진행되었으나, 아직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금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할 제5차 각료회의 전까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막바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TRIPS 협정의 성립 과정

TRIPS 협정은 지적재산권이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는 포괄적인 조약으로, 회원국에게 지적재산권의 보호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금지규범을 원칙으로 하는 GATT 협정이나 ‘서비스거래에 관한 일반협정(GATS)’과는 기본적인 구조를 달리 한다. TRIPS 협정에서 부과하는 지적재산권의 보호 의무는 기존의 4가지 협정(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 문학?예술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 실연자?음반제작자 및 방송사업자의 보호를 위한 로마협약, 집적회로에 관한 워싱턴 조약)의 준수 의무를 기본으로 하면서, 무역자유화를 위해 WTO 체제에 적용되던 원칙들(내국민 대우, 최혜국 대우, 상호주의 원칙)이 지적재산권 영역에도 적용되도록 하였다. TRIPS의 핵심 의도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관장해 오던 개별로 흩어져 있던 조약들을 통합하여 ‘단일’ 지적재산권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며, 무역제재와 같은 수단을 통해 협정 이행 의무를 강제하는 것이다. 또한, TRIPS는 지적재산권의 관할을 무역기구 아래에 둠으로써,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시행이 무역에 대한 장벽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적용되도록 하였다. 요컨대, TRIPS의 성립으로 인해 지적재산권 제도는 무역 흐름을 방해하는 데에는 사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TRIPS와 같이 지적재산권을 무역과 연계하여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GATT 동경라운드였다. 여기서는 상표권을 침해하는 위조상품에 대한 무역규제 문제가 주로 논의되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편, 미국은 1980년 레이건 행정부의 ‘신통상정책’ 및 1986년 미국통상대표부(USTR)의 ‘지적재산권 보호 정책의 골자’에 따른 중장기적 전략으로써 다국간 교섭을 통해 국제적으로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의 문제가 ‘무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여 GATT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주장은 자국 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는데, 1987년 ITC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계 기업이 개도국 등의 지적재산권의 약한 보호로 인해 입은 손실은 5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동경라운드의 실패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다 델 에스테에서 지적재산권을 비롯한 소위 신분야에 대한 다각적 교섭의 개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푼다 델 에스테 선언’ 이후 시작된 TRIPS 교섭 초기에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GATT에서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둘러싼 논쟁(소위 ‘mandate 논쟁’ 또는 ‘GATTability 논쟁’)으로 일관하였다. 선진국은 각종 지적재산권의 실체적인 보호 수준이나 재판 절차 등 권리행사 절차에 대한 포괄적인 규정을 두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국제적인 규정을 만드는 것은 개도국에게 매우 불리하고 위조상품의 규제 문제 이외의 사항은 GATT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TRIPS와 같은 논쟁거리가 라운드의 끝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교섭 초기의 일부 예측에도 불구하고, 1989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중간 검토를 위한 고위사무급 모임에서 ‘mandate 논쟁’은 최종 단계에서 TRIPS 협정의 법률적 실시 형식을 정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논의를 먼저 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TRIPS 교섭은 지적재산권의 실체적 보호 수준 및 권리행사 절차 등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TRIPS 협정 문구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1990년 3월 유럽연합(European Economic Communities)에서 협정안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와 더불어, WTO 협상이 일괄타결 방식(single undertaking)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개도국은 다른 협상 분야에서 선진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대신 TRIPS를 라운드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유럽연합의 협정안이 나온 지 2개월 후 인도와 브라질을 포함한 14개 개도국은 TRIPS 제안문서를 내놓게 되는데, 개도국 제안 문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하나는 ‘지적재산권과 국제무역’이란 제목 아래, 위조 상품의 무역에 적용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는 ‘지적재산권의 이용과 범위, 유용 가능성에 관한 원칙과 기준들’이란 제목으로 서로 다른 다양한 지적재산(특허, 상표, 의장, 지리적 표시, 저작권과 그 인접권, 반도체 배치설계)에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였다.
개도국에서 제안문서를 2개로 나누어 준비한 의도는 첫째, 위조 상품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와 동시에 지적재산권의 실체적인 기준에 관한 내용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자국의 지재권 제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공공정책적 목적을 강조하고 이것을 국제적 차원에서 인식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개도국의 또 다른 의도는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개별 국가들의 서로 다른 개발 수준을 고려하여 지적재산권에 대해 이미 적용되고 있던 개도국의 국내법을 존중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1)
몇 차례의 협정초안 작성과 재협상을 거쳐 1991년 GATT 사무총장 던켈의 최종협정안(던켈초안)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큰 수정 없이 최종안으로 타결되었다.

TRIPS 협상 과정에서 개도국들은 지적재산권이 인류의 공동재산이라는 취지의 인류공동유산론(the common heritage of mankind, res communis)을 주장하며 협정체결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위조상품의 유통문제에 국한해야 하고 지적재산권 전반에 관한 문제는 WIPO에서 관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개도국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TRIPS 협정이 최종 타결된 것은 광범위한 체제하에서 협상을 전개함으로써 후진국들이 선진국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선진국들의 치밀한 전략 때문이었다. 즉, 지적재산권 분야만을 가지고 협상을 하는 경우에는 후진국들에 대한 반대급부를 줄 수 없기 때문에 협상진행이 어렵지만, GATT 체제하에서 협상을 하는 경우에는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을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어 후진국들이 협상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진국들로서는 선진국의 상품시장에 대한 접근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관계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 상품시장에 대한 접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2)

TRIPS 협정은 2가지 차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하나는 지적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산을 기초로 한 시장 자유화의 개념을 ‘지식의 사회적 소통’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3) 이렇게 함으로써 중요한 지식 자원에 대한 자본의 통제와 기업의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TRIPS 협정의 성립을 두고 ‘미국의 제약업계, 엔터테인먼트 산업, 정보산업계의 승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TRIPS 협정의 함의

앞에서 ‘TRIPS가 지적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장했다’는 것은 TRIPS가 지식의 생산보다 소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뜻인데, 이것은 실제 협정문에서도 확인을 할 수 있다. TRIPS 협정 제9조 제1항 단서 조항에 따르면, TRIPS 협정 체약국은 베른협약 제6조의 2 규정에 기초하여 부여되는 권리(저작인격권) 또는 이로부터 파생되는 권리에 대해서는 권리 또는 의무를 갖지 아니한다.(4)
앞에서 TRIPS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가 기존의 지적재산권 협정을 원용한 것이라고 했는데, 창작자 고유의 권리로 인식되는 저작인격권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저작재산권은 전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인격권에 대한 이러한 조항을 두게 된 것은 미국이 강하게 요구했 때문이다 .(5)
미국은 겉으로는 TRIPS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무역 관련 측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저작권의 경제적 권리가 아닌 저작인격권을 협정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된 실질적인 배경은 미국내 영화산업과 출판업계가 저작인격권의 TRIPS 삽입을 절대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6) 기존의 판례 질서를 전제로 하여 형성된 저작물의 편집 관행에 변경을 강요하는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요컨대 TRIPS 협정은 지식자본가의 권리가 지식생산자의 권리보다 더 존중을 받는 체계이다. 저작인격권 외에도 TRIPS가 지식의 소유를 확장하였다는 근거는 특허발명의 강제실시가 어렵도록 규정한 것이나, 특허 대상의 확대,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권리보호 기간의 연장, 권리침해에 대한 입증책임의 전환 등의 규정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TRIPS가 지식 자원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확장했다’는 것은 지식의 사회적 활용이 희생됨을 의미한다. 즉, 지식이 사적재산으로 취급됨으로써, TRIPS 협정의 규정에 따라 지식은 배타적인 것이 되고 희소한 자원으로 바뀐다. 따라서 사적재산 영역에 있는 지식과 공공영역의 지식 사이의 균형점이 TRIPS 협정에 의해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협정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 TRIPS 제8조가 바로 이 문제를 밝히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체약국은 공중의 보건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사회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에 극히 중요한 분야에서 공공의 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국내법의 제정 또는 개정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단서를 달아 ‘다만 그러한 조치는 TRIPS 협정의 규정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제한을 두었다. ‘협정의 규정과 일치하는 경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TRIPS의 규정 대부분은 권리자의 보호 확대와 권리침해의 구제 절차에 대한 규정이므로, TRIPS가 채택한 원칙은 지식에 대한 공공영역을 사적영역에 비해 덜 중요하게 취급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공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의약품에 대한 물질특허제도를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는 TRIPS 제27조(특허대상) 규정과 일치하지 않게 되어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TRIPS 협정 이전의 캐나다 특허법과 같이 ‘의약품의 제조를 위해 특허의 실시권 부여를 청구하는 누구에 대해서도 실시권을 허여하지 못할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 한 실시권을 허락하여야 한다’는 포괄적인 강제실시 조항도 TRIPS 협정 위반이 될 여지가 있다.
TRIPS 협정이 시민사회에 갖는 함의는 이것을 완성된 당연의 질서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개혁하려는 실천의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TRIPS 협정은 소위 그린룸(green room) 협상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5+5 회의(선진국 5개국과 개도국 5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회의)나 10+10 회의를 통해 대부분의 협상을 진행하고, 공식적인 회의는 그린룸 논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하였다. 비공식 회의에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캐나다는 원칙적으로 항상 참가국이었고 논의도 영어로만 이루어졌으며 회의록은 작성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많은 개도국 정부당사자가 실질적인 논의에서 배제되었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TRIPS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TRIPS 협정의 개폐, 더 나아가 새로운 지적재산권 제도의 형성은 지적재산권을 ‘무역’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지적재산권을 ‘인권’의 문제로 파악하는 인식의 전환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둘러싼 사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참여가 보장된 논의의 틀도 매우 중요하다. [다음 호에 이어짐]

주석

(1) Dr. A. O. Adede,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TRIPS Agreement: Origins and History of Negotiation’

(2) 김성준, ‘WTO법의 형성과 전망‘, 1996년, 삼성출판사, 347면 참조.

(3) Christopher May, ‘A Global Polictical Economy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 The New Enclosures?’, 2000년, Routledge, 72면 참조.

(4) However, Members shall not have rights or obligations under this Agreement in respect of the rights conferred under Article 6bis of that Convention or of the rights derived therefrom.

(5) 미국은 베른협약에 가입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베른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저작인격권을 TRIPS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 것은 일견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미국이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리 체제에 불만을 품고 WTO 체제 내에서 지적재산권 협정을 고집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베른협약은 다른 나라의 협약 위반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에 비해, TRIPS 협정은 의무이행을 하지 못한 경우 무역제재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6) 尾島 明, ‘逐條解說 TRIPS 協定‘, 1999년, 일본기계수출조합, 58-59면 참조.

200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