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월간네트워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와 그 이후

By 2003/10/20 10월 29th, 2016 One Comment

집중분석

한상희

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어놓았던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논란은 발안자였던 정부측의 포기로 일단락되었지만, 그 발상은 아직도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는 네이스와 더불어 인권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여전히 권위주의시대의 그것과 별차이 없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그들에 있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고, 효율은 정의를 앞지르며, 관치는 법치를 상회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권의 최대한의 보장을 규정하는 헌법 제10조나, 기본권제한의 방법과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7조 제2항은 그들의 관료적 편의주의하에서는 그 실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실제 사이버공간의 역기능이라는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심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국가기관의 게시판이 가지는 공식성, 신뢰성을 감안할 때, 그를 통하여 소통되는 각종의 의견이나 정보들이 오용?남용되는 경우, 그 폐해는 때로 적지 않은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게시판 이용에 대한 국가적 규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가 규제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불온게시물’은 크게 명예훼손이나 음란 등 불법게시물과 욕설 폭언 등 청소년에 ‘유해’한 저속게시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불법게시물의 경우 어떻게 보아도 실명제를 도입하여야 할 정책대상이 되기 어렵다. 음란물은 현재의 법원에서 판단하는 음란의 기준 – 이것은 충분히 형식적이어서 게시판관리자의 일반적인 판단능력으로도 얼마든지 적용가능하다 – 을 적용하여 삭제하면 충분한 것이다. 설령 음란인지 아닌지가 애매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사소한 양에 불과한 것이므로 그것 때문에 거창하게 ‘실명제’ 운운할 필요조차 없다. 명예훼손적인 표현의 경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명예훼손적 표현은 당사자의 청구에 의한 법원의 가처분결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또한 ‘저속’ 게시물이란 기본적으로 청소년보호라는 틀 속에서 도출되는 개념이며 따라서 실명제의 문제가 아니라, 유해매체표시제도의 문제 즉 청소년의 접근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환언하자면 국내외 판례가 거듭 밝히고 있듯,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인까지도 접근을 차단하는 실명제로 처리할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가 다른 법률상의 권한과 별도로 고유하게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 등 정책담당자를 비판?비난하는 게시물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외관상으로는 거창하게 인터넷의 역기능, 사이버윤리, 게시판 정화 등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내면적으로 그 실체를 들여다 보면 번거로운 절차 없이 실명확인이라는 위협만으로 귀찮은 혹은 성가신 게시물들을 한꺼번에 정리해 버리고자 하는 관료적 편의주의의 극치만이 읽혀질 따름이다. 그리고 그 관료적 편리성의 목표를 위하여 근대민주주의의 발아였던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의사소통구조에 커다란 변혁을 야기하고 있다. 오프라인시대에서 수많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표현의 자유가 인터넷을 통하여 가장 활발하게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인권담론에 더하여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날로그식의 인권과 다른 관점에서 혹은 보다 강화된 관점에서 보호와 보장이 필요한 시민권(citizenship)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는 이러한 변혁의 과정에 대한 관료적 저항의 한 단면이다. 우리의 행정과정에 대한 감시와 감독과 통제의 틀, 혹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거버넌스(共治)의 주도권을 시민사회가 되찾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관료들의 ‘태클’인 셈이다.
이러한 관료제의 ‘역기능’은 실명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외견상으로 정당한 듯이 보이는 국가목적을 내세우면서 오로지 비용-편익의 경제학적 분석만을 바탕으로 위헌적인 수단들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내놓는 저 수많은 조치들이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뒤따르고 있다. 전 국민을 하나의 코드로 묶어 놓는 주민등록번호에서부터 지문날인, CCTV, 위치추적장치, 전자주민카드 등 어느 하나도 수단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헌법 제37조 제2항의 요청에 대하여는 곁눈질도 보내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국가의 최고이념이라 할 인권보장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조차도 없다. 그저 그러한 막가파식의 행정수단을 통하여 그들이 원하는 정책목표만 달성하면 충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IT산업의 부가가치만 증대되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써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철저히 벌거벗겨진 채, 최소한의 존엄조차도 유지못하는 통치대상자로서 전락하고 만다.
정보인권의 문제가 개인의 권리라는 차원을 떠나 작게는 행정과정에 대한 거버넌스의 문제로, 크게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것은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으로 다가오는 관료권력으로부터 시민사회가 또 다른 해방을 확보하기 위한 전초이자, 자동처리 등의 방식으로 몰인격적으로 수행되는 국가작용에 의하여 사이보그화되는 개별인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최선의 모멘텀이다. 그래서 전자적 아고라(e-agora)를 꿈꾸는 우리는 제2의 인권선언을 요청하게 된다. “제발 냅둬유!”

200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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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의 댓글:

    실명제가 득보다 실이 많죠. 자신의 정보가 1천원씩 거래 된다고 생각 해보세요. 마치 몸파는 것 같죠.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나쁜 글은 관리자가 지켜보고 즉시 삭제 하면 됩니다. 공공기관에 비판을 하려면 주민 번호 넣어라 등등 너무 귀찮고 비판할 생각이 없게 만듭니다. 공공기관도 시명제 못하게 조치 취해 주세요. 자기들이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실명제 하자고 하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