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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제도의 인권법적 재조명{/}도하 개발 아젠다(DDA) 협상과 지적재산권 논의 동향1

By 2003/10/06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남희섭

20세기가 산업사회였다면 정보사회 또는 지식사회는 21세기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정보사회에 바람직한 제도나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보화 또는 정보사회에 대한 거대 담론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보사회란 키워드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이나 통신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정보사회가 이전의 산업사회와는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라고 보는 단절론(또는 낙관론)은 정보기술 혁명에 의한 정보의 양적 팽창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여기에는 정보사회가 초래하는 현실의 사회 문제를 일시적 또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발견된다. 이러한 낙관론적 전망과는 달리 연속론 또는 비관론은 정보사회를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이 여전히 적용되는 기존 사회의 새로운 발전 국면으로 이해한다. 이 글은 정보사회가 정보나 지식을 상품화하고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확장한다는 연속론의 관점에 서 있다.

정보사회에서 지적재산권의 의미

필자가 정보사회에 바람직한 제도와 정책으로 지적재산권 제도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첫째, 지적재산권 제도를 정보사회의 중심적 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보사회는 정보재의 경제적 자원으로서 그 중요성이 극대화된 사회를 말한다. 본질적으로 공공재인 정보를 경제적 자원 또는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보에 희소성을 부여하여야 하고, 정보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의 이용을 배제하고 침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지적재산권은 정보지식에 대해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위적 부족 상태를 창출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혁신’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권리의 설정을 통해 정보 지식을 경제적 자원으로 다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는 정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법 제도를 형성한다. 둘째, 지금까지의 지적재산권 논의에는 인권의 개념이 빠져있다. 지적재산권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에 관한 기본 협약인 파리 협약과 베른 협약은 지적재산권을 산업 정책의 입장으로만 파악하고, 지적재산권 제도의 지구적 통일화를 이룩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이하 TRIPS 협정)은 지적재산권을 무역의 관점에서만 규정하고 있다. 최근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 논의과정에도 지적재산권 제도를 인권법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찾기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지적재산권의 국제 규범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전문기구에서 선진국과 기업의 이해를 주로 반영하여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 글은 지적재산권 제도를 인권 측면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국제인권법에 포함되어 있는 지적재산권 조항에 대한 검토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지적재산권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검토할 때 가장 기초적인 논의는 지적재산의 창작자와 그 창작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공중의 이익 사이의 균형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지적재산권에는 지적산물 이용자의 권리가 내재적 한계로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과 인권’ 논의의 경과

지적재산권과 인권을 주제로 한 실질적인 논의는 1998년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와 UN 인권 고등판무관실이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처음 있은 후, 2001년 UN의 ‘경제사회이사회’에서 건강권과 특허권을 중심으로 TRIPS 협정과 인권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 바 있고, 2001년 유네스코의 저작권 회보에서 지적재산권을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 본격적인 논문이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2001년 6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개최한 ‘과학기술과 인권 워크숍’에서 지적재산권과 인권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

지적재산권의 인권적 배경을 찾아볼 수 있는 국제인권법으로는 1948. 12. 10.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1966년 12월, 이하 ‘A 규약’)이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제2항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지적재산권에 관한 보호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권리들은 인권보장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A 규약에 더욱 완전하게 규정되어 있다.

A 규약 제15조1항은 다음과 같다.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창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

지적재산권 조항의 연혁적 고찰

이처럼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은 모두 창작자 개인의 정신적·물질적 권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의 진보로부터 혜택을 볼 권리도 함께 인정하고 있다. 요컨대, 국제인권법은 인권으로서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공중의 이익과 균형을 맞추어야 함을 내재적 한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인권적 배경을 인정할 때, 창작자 개인의 사익과 이를 둘러싼 공중의 이익 사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된다.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권리자와 이용자 사이의 균형 문제를 좀 더 실천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이나 A 규약에 지적재산권 조항이 들어가게 된 경위를 연혁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의의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2001년 12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에서는 지적재산권과 인권 논의를 통해 성명서를 채택하였는데, 이 성명서는 “지적재산권법의 시행과 해석에 국제인권 규범이 융화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지식에 대한 사적 이익과 공공이익의 보호 사이의 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창작과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노력에는 사적 이익이 과도하게 충족되도록 해서는 아니되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향유할 공중의 이익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이 성명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주요 이행의무로, 체약국이 A 규약에 규정된 의무 특히, 건강과 식량, 교육과 관련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더 어렵도록 만드는 어떠한 지적재산권 제도도 법적으로 구속되는 체약국의 이행의무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의 위 성명서에는 지적재산권을 보편적 인권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이 발견되는데, 인권과 지적재산권의 차이점에 대하여, ‘인권은 개인 또는 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속하는 기본적으로 양도될 수 없으며 보편적으로 부여됨에 비해, 지적재산권은 발명이나 창작을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이로부터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적 권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이 전통적으로는 개인으로서의 저자 또는 창작자를 보호하였으나, 기업의 이해와 투자를 보호하는 쪽에 점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A 규약 15조에서 규정하는 저자의 물질적·정신적 보호의 범위는 현행 개별 국가법이나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적재산권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성명서에서 기본적 인권과 지적재산권의 차이점을 강조한 것은, 세계인권선언이나 A 규약에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조항이 들어가게 된 연혁적 고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1년 인권고등판무관실(High Commission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권 차원의 접근에는 2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첫째 A 규약 15조에서 말하는 공익과 사익의 균형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주목적을 두어야 하고, 둘째 저작권이나 특허권 또는 상표권과 같은 지적재산권과 문화적 권리로서의 인권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첫번째 권고는, 지적재산권도 인권이라고 볼 때, 인권은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으로 두어야 한다고 말한 셈이다. 이것은 지적재산권과 보편적 인권의 본질적인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두 번째 권고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바, 지적재산권은 특권으로서의 성격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인권고등판무관실의 권고에 기초가 된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의 협상과정자료를 검토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인권선언과 A 규약을 논의할 당시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협상참여자(drafter)들은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기껏해야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창작과 발명에 접근할 공중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에 더 많은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협상참여자들 대부분은 저자의 정신적·물질적 이익 즉, 저작권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특허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더 적었다. 또한, 협상참여자들의 압도적인 다수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부터 공중이 얻게 되는 이익을 저작권이나 특허권이 국제적 차원에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지적재산권의 주요 역할이 무역이나 개발, 식품 또는 건강 분야로 이동할 것임을 인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A 규약 15조에서 말하는 지적재산권은 개인으로서의 저자에 대한 권리만 염두에 두었고, 기업이 소유하는 특허권이나 업무상 창작한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권적 관점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재검토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국제인권법의 지적재산권 조항의 연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i) 지적재산권은 보편적 인권과는 달리 특권적 성격이 강하다. (ii) 지적재산권은 다른 권리 즉, 문화 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과학적 진보로부터 혜택을 향유할 권리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즉, 저자의 권리는 그 자체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자유와 과학적 진보에 접근하고 참여하며 그로부터 혜택을 보는 권리의 전제 조건으로 인정된다. (iii)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저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식에는 인권의 고려가 조건으로 부여된다. 즉, 저자나 창작자의 권리는 과학적 진보에 접근하고 문화 생활에 참여할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iv) 국제인권규범의 지적재산권 조항은 그 자체로 권리의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 즉, 초안 작성자들은 저자 권리의 범위와 제한을 서술하지 않았고, 논의의 초점은 지적재산권 조항의 포함 여부에만 있었으며, 이것의 본질과 함의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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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wipo.org/globalissues/activities/1998/humanrights/ 참조.

2) The impact of the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n human rights, Report of the High Commissioner, Economic and Social Council, E/CN.4/Sub.2/2001/13, 27 June 2001.

3) Audrey R. Chapman, Approaching Intellectual Property as a Human Right: Obligations Related to Article 15(1)(c), UNESCO Publishing, UNESCO Copyright Bulletin, Vol. XXXV No. 3, July-September 2001,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2/001255/125505e.pdf

4) 이의 자세한 내용은 박성호, ‘지적재산권과 인권’, 과학기술과인권, 2001, 당대, 122면 이하에 나와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최근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문제 상황들을 단순히 지적재산권과 인권의 대립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지적재산권과 과학지식의 확산이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인권과 지적재산권의 문제를 양자간의 이익조절의 문제로 진단한다.

5) [박성호: 2001], 앞의 글 126면.

6) “Human Rights and Intellectual Property Issues: Statement by the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14 December 2001, E/C.12/2001/15.

7) 성명 제18항. The Committee considers of fundamental importance the integration of international human right norms into the enactment and interpretation of intellectual property law.

8) Report of the High Commissioner, ‘The impact of he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n human rights’, Economic and Social Council, E/CN.4/Sub.2/2001/13, 27 June 2001.

9) Drafting History of the Article 15 (1) (c)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E/C.12/2000/15. (Other Treaty-Related Document), October 9, 2000.

10) A 규약 협상과정에서 지적재산권 조항의 포함 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최종 투표 결과 39 대 9 (24 기권)로 지재권 조항의 삽입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