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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한국동성애자연합] ‘엑스존’ 패소 판결에 부쳐

By 2003/12/2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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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존’ 패소 판결에 부쳐

우리는 지난 12월 16일, 서울고등법원 제6특별부가 동성애 사이트 ‘엑스존’의 ‘청소년유해매체물결정및고시처분무효확인’ 청구에 대하여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엑스존’은 동성애자 생활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동성애자들의 삶을 공유한다는 취지로 1997년에 개설된 사이트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어 살아갈 수 없는 우리사회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동성애자들이 그나마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 동성애자로서의 삶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은 이땅의 동성애자들에게 참으로 소중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은 시행령 제7조에서 ‘동성애’를 ‘수간, 혼음, 근친상간’ 등과 같은 범주의 ‘변태 성행위,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0년 9월, 엑스존 사이트 게시판의 내용이 음란하고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엑스존이 청소년 유해매체물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고시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엑스존이 위 결정을 취소하여 달라는 청구를 하여 항소심에 이르렀으나, 재판부는 해당 시행령이 위법, 무효라고 선언한 대법원의 판례가 없었으며 객관적으로 명백한 뮤효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엑스존)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객관적으로 명백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사법부가 방관하기만 할 것인지 의문스럽다. 동성애는 다양한 성정체성 중의 하나일 뿐이고 동성애자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 나가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동성애자들은 법에 의해 ‘변태’ 취급을 받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그나마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편파적인 심의 때문에 포털사이트에서 ‘동성애’라는 단어를 검색하려면 성인인증을 받아야 하고 동성애자 인권단체의 홈페이지 조차도 차단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 해당 시행령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삭제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당 시행령에서 ‘동성애’ 조항은 삭제되지 않고 있다.

비록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해당 시행령이 성적자기결정권,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동성애 자체를 음란한 것이나 반사회적, 비윤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무효사유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 시행령을 인정하고 있다. 성정체성을 매개로 한 차별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명백한’ 무효사유가 없다는 것을 이번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은, 재판부의 성적소수자인권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한동연은 차이를 차별의 매개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억압적인 체계를 반대하며,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재판부를 규탄한다. 그리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해당 시행령의 개별 심의 기준인 ‘동성애’ 조항을 즉각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2003년 12월 24일
한국동성애자연합

200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