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프라이버시

[글] 노동감시 반대 운동

By 2003/12/1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 펴냄, [빅브라더와 그 적들 – 한국 반감시·프라이버시 운동사], 2003 기고글

노동감시 반대 운동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최근 서구 프라이버시 학자들의 논의에서는 ‘빅브라더’를 찾아볼 수 없다. 전자 감옥의 상징인 ‘판옵티콘’도 찾아볼 수 없다. 프라이버시 학자들의 관심이 소비자 감시로 옮겨가면서 이들은 현대의 감시가 예언과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바라보는 현대의 감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감시의 시선은 중앙에서 주변으로 분산되었다. 감시는 한 사람의 빅브라더, 혹은 한 사람의 간수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된 CCTV와 역시 수없이 많은 이유로 구축된 각종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이루어진다. 둘째, 감시는 참여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감시자는 더 이상 강압적인 방법으로 감시 대상을 복종시키지 않는다. 감시는 보다 나은 서비스와 정보화의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감시 대상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감시는 개인정보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공하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렸고 피할 수 없는 생활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이런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80년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개인데이터의 국제유통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가이드라인(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로 국제 사회는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곧 개인정보의 문제임을 정식화하였다. 프라이버시권이란 개인정보에 대한 정보주체의 결정권, 즉 자기정보통제권의 문제이다. 특히 이 가이드라인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반드시 합리적으로 정보 주체의 직간접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이 가이드라인의 함의는 개인정보를 제공받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형태로 발휘되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전자상거래의 기본 공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억압적인 군사독재정부 하에서 강력한 국민 통제 제도를 갖게 된 한국 사회에서 감시 문제는 한층 중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 정보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이미 만 17세부터 전국민이 국가에 열손가락 지문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를 강제에 의해 제공해버린 상태이다. 기본적인 인권인 자기정보통제권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국가는 전자정부와 같은 형태로 개인정보를 연동·통합하고 다각도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자기정보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은 개인정보의 합리적 제공, 혹은 합리적 서비스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보주체에게 반환될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제공된 개인정보에 대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부분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의 반감시 운동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비민주적 권력 관계를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최근 프라이버시의 문제를 자기정보통제권에 대한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감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로 바라보는 국제 테러방지법 반대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디지털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이미 수집된 개인정보’는 정보주체의 권한 영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공유되고 있다. 자기정보통제권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9.11 테러 이후 국제적으로 강화된 정보 통제와 감시 강화 속에서 프라이버시권 운동은 민주주의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테러범으로 간주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분류하고 지목, 감금하는 과정에서 감시 문제는 차별에 맞서고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국 빅브라더와 판옵티콘의 비유는 아직도 유효하다. 감시의 본질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권력 문제이자 감시를 극복하고자 하는 반감시 운동은 이러한 권력 관계에 대한 통찰과 민주주의 확보 운동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감시는 이러한 모순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장이다. 노동 감시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인격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기정보통제권이 이에 맞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노동 감시의 문제는 노동 과정에 대한 자본의 통제에 맞서는 권력 투쟁의 측면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 감시의 문제는 특히 한국 사회의 프라이버시권 확보 운동에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 노동 감시란 무엇인가?

최근 노동 감시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프라이버시보호재단의 2001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 3명 중 1명이 직장내의 인터넷과 이메일 사용을 감시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인적관리협회와 웨스트그룹의 조사에서는 2001년 72%의 기업이 노동자의 이메일 이용을 감시하고 있었으며, 51%의 기업은 전화를 모니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경영자협회는 2001년 소속 회원사에 대한 조사 결과 미국 주요기업의 78%가 작업장을 감시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노동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이 2003년 한국의 20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9.9%의 사업장이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CTV가 57.0%로 가장 높았고 이메일과 홈페이지 감시 및 차단 등 인터넷 감시도 41.5%에 육박하였다. 이런 감시의 확산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51.7%가 사생활 침해라고 느끼고 있었으며 57.1%는 작업시간의 통제가 엄격해졌고 42.5%는 작업량이 증가했다고 답하여 감시가 노동과정 통제의 문제와 밀접함을 보여주었다.
노동 감시 기술이 어째서 최근 들어 갑자기 많이 ‘출현’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방식의 설명이 가능하다.
가장 손쉬운 설명은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설명은 ‘전자감시사회’가 출현했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 감시사회가 출현하고 → 따라서 노동 감시가 증가했다는 분석은 기술 결정론의 흔한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 낙관적 정보사회론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특정한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면, 비록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기술이 다가올 사회를 결정하는 것으로 전망한다는 점에서 전자감시사회론도 기술 결정론의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달로 특정한 사회가 자동적으로 출현한다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역사적 순리이자 사회적 진화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사회론이나 전자감시사회론은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갖는다. 그런 면에서 전자감시사회론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는데 무력하다.
노동과정론은 이와 달리 노동 감시가 인간 행위와 사회 구조에 의해 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노동 감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노동과 자본간의 적대관계가 노동과정을 계속 변형시키는 상태에서 자본은 노동력을 예측하고 특정한 노동과정의 형태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을 통제하는데 노동 감시 기술은 이런 맥락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노동 감시 기술의 출현에 관한 한, 노동과정론의 접근이 전자감시사회론보다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노동 감시는 지금까지 노동과정론이 주로 분석 대상으로 삼아온 과학적 관리법 하의 노동 감시와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양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감시가 심화된 것이다. 시간-동작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고 개인별 작업수행의 매우 미세한 점까지 기록되고 있으며 화장실 출입횟수 등 일상적인 활동에 대한 감시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또 최근 사무직 작업장에 많이 확산되고 있는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이용에 대한 감시는 노동자 개인의 취향이나 사상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최근의 노동 감시를 거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 통제에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태업으로 맞서 왔다. 그러나 최근의 디지털 기술은 엄밀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감출 것이 없으면’ 감시를 수용하고 기술 앞에서 한없이 투명해질 것을 요구받는다. 최근 노동 감시를 둘러싼 논쟁은 노동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양심과 윤리의 문제로 부각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생산 방식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전통적인 과학적 관리법과 오늘날 유연적 생산 방식의 차이는 감시와 규율의 매커니즘에 존재한다. 신기술이 도입된 최근의 작업장은 실시간 감시를 통한 완충재고 감소와 총괄적 품질관리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전사적 품질관리'(TQC) 기법이 중시하는 ‘고객’과 ‘공급자’ 간의 거래는 중앙집중적인 감시의 대상이다. 슈퍼마켓의 계산원들은 손님을 가장한 조사자, CCTV, 그리고 판매기술의 전자포인트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 이런 감시 시스템은 서로 결합되어 얼굴표정과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엄격한 수준을 구현했다. TQC 기법이 도입된 공장에서 고객의 만족을 보장하는 것은 중앙에서 이루어지는 철저한 감시이다. 감시의 결과에 따라 개인과 팀은 요구기준과 대비된 성과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 — 과거 형태의 감시에서 ‘처벌’에 준하는 — 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감시의 강화는 필수적이다. 닛산의 한 영국제조공장에서는 TQC를 강행하기 위해 ‘이웃 감시'(neighbourhood checks) 체계를 채용했다. TQC는 책임을 하향화함으로써 위계를 수평화하는데 이는 ‘위임주의'(devolutionism)라 불리는 체제로서 전략적인 통제를 집권화하고 전술적인 책임을 분권화시킨 것이다. 그런데 수평적 위계 상태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웃감시체계이다. 이는 노동자가 상호 감시하게 함으로써 특정 작업팀, 개인들에게까지 결함을 추적해 갈 수 있게 하고, 매주 각 작업자들에게 점수를 매길 수 있게 한다. 감시는 동료도 믿을 수 없는 형태로 강화된다.
한편으로는 자율적이어 보이는 위임주의는 오히려 감시를 강화한다. 위임받은 작업팀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용주는 이면에서 개인적, 집단적 행동 모두에 대한 직접적이고 면밀한 감시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TQC 체제는 결국 가시성을 높이는 감시와 통제의 상부구조를 확립하게 된다.
여기서 기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는 전자 감시 기술의 발전과 그 지속적인 세련화는, 감시의 상부구조와 정보에 대한 고용주의 확실한 소유를 보장하고, 과거 이상의 권한과 규율을 유지하면서도 권한의 위임을 통해 얻어지는 이점들 역시 취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실체 없는 눈이 건물구조와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과정의 핵심부에 규율적 주시를 가하는 전자 판옵티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 이제 열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연적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한 공장에서 관리자의 의도는 노동자가 ‘매분 60초의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항상적으로 측정하고, 노동자에게 허용된 시간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수작업에 의해서도 시간 관리를 엄격하게 하면서 품질결함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전자 감시는 매우 짧은 시간에 잘못을 저지른 개인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규율 권력도 강화된다.
최근 노동 감시의 경향 속에서 정보 시스템은 한편에서는 가능한 선택의 제한과 재량의 삭감을 통해서 합리화와 통제를 증가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규제 장치와 미리 짜여진 메뉴를 활성화하면서 재량권을 증가시킨다. 여기서 정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며 이러한 기술은 그 설계자나 관리자의 의도와 기대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 기술은 명백한 규칙과 위계구조를 소멸하고, 테일러리즘을 감소시키면서 탈중심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전문적 지식을 규칙화하고 탈전문화하며, 단체 교섭력을 축소시키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비가시적 통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기술은 노동과정에 여전히 탈숙련화를 시도하지만, 그 자체로 통제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술과 다르다. 정보기술은 불안정한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생산공정의 유연화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각 개별노동자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저장, 처리, 전송, 분석할 수 있게 하며, 고도화된 전자기술은 작업장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동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컴퓨터와 원격의사소통기술의 결합은 감시체계를 일상적이고 전천후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고용주는 정보기술의 이러한 전자감시 기능을 이용하여 노동과정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노동자 개인의 특성에 기반해 노동의 질을 보다 더 면밀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고용주는 생산과 관리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작업환경의 변화에 대한 반응을 연결시켜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효과적으로 분할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보기술에 의한 정보처리 능력의 확대는 노동의 질 뿐만 아니라 노동행위의 구체적인 방식을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결국 고용주는 기술적 체계에 기반해 기록과 규제를 동시에 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권력효과를 극대화시키고 감시의 효율성을 보장함으로써 통제를 더욱 개선시킨다. 정보기술에 의한 감시·감독의 범위에 있어서도 시·공간적 제약을 급격히 제거함으로써 통제의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축적의 중요한 전략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노동과정의 역사가 ‘통제와 대결’의 장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면, 기술을 통한 통제는 대결의 의미를 협소화시키고 권위만이 관철되는 억압의 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최근의 노동감시 문제에 주목하는 노동과정론 학자들은 작업장 내 감시를 줄이고 민주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감시수단의 소유권의 문제가 공장내 정치 투쟁의 새로운 핵심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누구를 위한 감시인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노동감시 반대 운동

가. 버스 CCTV 반대 운동

한국에서 첨단기술에 의한 노동감시 문제가 최초로 사회문제화된 것은 1997년 버스 CCTV 논쟁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1996년 9월 서울시 공무원이 버스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노선을 조정해 준 것이 적발당하여 검찰에 소환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시민단체는 버스업체의 대차대조표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가 버스 업계의 적자규모를 과다계상하는 방법으로 시내버스 요금을 편법으로 인상했다며 검찰에 서울시와 버스업계의 유착에 대한 전면 수사를 요청했다. 1996년 10월 검찰 수사 결과에서도 버스업체가 토큰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버스요금 수입을 누락시켜 2백38억여 원을 착복하고 장부상 적자를 부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버스노선조정과 관련해 서울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서울 시내버스 업체 대표들과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이 비등해졌고 소비자 및 교통관련단체에서는 버스요금의 인하와 버스노선 재조정 및 시민의 버스개혁 참여 등을 요구했다. 특히 버스 요금이 환수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가 주목했지만 버스요금 체계는 요금을 인상하거나 인하할 수 있는 근거인 운송원가와 수입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시민단체와 전문가, 언론은 버스 요금을 투명화하고 노선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로 서울시는 1997년 7월 <시내버스 개혁 종합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시내버스 개혁을 위한 10개 분야 44개 시책·사업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대책에 ‘버스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CCTV를 도입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운송수입금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운전기사에 의한 요금 탈루를 방지하기 위해 시내버스 전 차량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CCTV가 운전기사의 근무태도를 감시하면 친절도가 향상되고 버스기사들의 다툼이 줄 것이며 소매치기 등 범죄도 예방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1998년 시내버스업체들이 본격적으로 CCTV를 장착하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인권 침해라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운송수입금 횡령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설치된 카메라가 요금통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잡담까지 녹음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중대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CCTV가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근거로 사용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노동자들은 CCTV가 노동자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CCTV가 노동조합 간부 등 ‘말 안 듣는 노동자’를 편파적으로 감시하고 불이익을 주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 비슷한 시기에 CCTV를 도입한 대전 ㅎ시내버스에서는 CCTV 자료를 근거로 노동조합 활동가를 집중적으로 징계하였으며 전주 ㅇ여객과 ㅍ여객에서도 노동조합 탄압의 일환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징계하는 데 CCTV를 사용한 사례가 있었다.
쟁의도 발생하였다. 1997년 5월 경주 금아교통노동조합은 CCTV 설치 문제로 부분파업에 돌입하고 상경투쟁을 벌였고 1998년 11월에는 부산 버스업체가 CCTV를 도입하자 전국자동차노조연맹 부산버스지부에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감시용 카메라 제거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이 노동자들의 주장에 호응하는 편은 아니었다. CCTV의 설치가 요금 징수의 투명화라는 공익적인 목적을 표방하고 있었던 데 반해 노동자들은 개인적인 권리, 즉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였고,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요구가 큰 호소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많은 버스 사업장에서 CCTV 논쟁이 종결된 것은 ‘양심 보너스’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양심 보너스란 버스 노동자가 CCTV 감시를 수용하는 대가로, 하루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의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서울 시내버스 S교통은 하루 5천 원의 수당을 추가 지급하기로 노동조합과 합의하고 논쟁을 종결했으며, D운수와 M운수에서도 하루 성실수당으로 1만원 내외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앞서 CCTV 문제로 크게 갈등을 빚었던 전주ㅍ여객 역시 하루 5천 원씩 지급하기로 노동조합과 합의하고 논쟁이 종결되었다. 결국 CCTV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양심 보너스를 받는 대가로 CCTV 감시를 수용하면서 논쟁이 종결되었던 것이다.
양심 보너스는 단지 경제적인 보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일부 일간지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양심’ 보너스란 명명은 ‘양심에 거리낄 일을 하지 않는다면’ CCTV를 수용해야 한다는 암시를 담고 있었다. 이는 곧바로 노동자들이 CCTV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인권 침해’ 문제로 불거졌던 CCTV 논쟁은 ‘양심’의 문제로 재정의되면서 노동자들의 명분을 크게 위축시켰고 결국 논쟁이 종결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CCTV는 빠르게 정착하였다. 서울시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11월 현재 서울시내버스 9,110대 가운데 6,462대에 CCTV가 설치되어 CCTV 설치 비율이 80%에 달하고 있다. 일단 장착된 CCTV는 처음의 도입 명분과 무관하게 사용되고 있다. 버스카드제의 도입 이후 현금승차비율이 계속 감소하여 2002년 75%가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버스요금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CCTV는 여전히 장착되어 있다. 즉 지금은 CCTV가 요금 감시 용이 아니라 주로 노동 감시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나. (주)대용 노동조합의 CCTV 반대 운동

1997년 버스 CCTV 감시 반대 운동은 위와 같은 논쟁을 거쳐 잦아들었지만 2000년대 들어 노동 감시가 심화되면서 신생 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감시 반대 운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2002년 광명성애병원 노동조합, 진주 늘빛정신병원 노동조합, 광주 환경위생노조에서는 노동·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회사인 병원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CCTV를 철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회사들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난동과 무단출입 통제, 그리고 시설물 보호를 위해 CCTV를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들은 CCTV 설치 이전에 심각한 시설물 훼손이나 절도 사건이 발생한 바가 없다는 점에서 회사 쪽의 도입 명분이 취약하다고 반박하였고 특히 이상의 사업장들이 비교적 노동조합이 신생으로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는 공통적이 있다는 점에서 CCTV가 노동조합 활동 위축을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사업장들에서 CCTV는 노동조합 집회나 노동조합 사무실에 대해 감시를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작업장내 CCTV 철거와 노동자 프라이버시권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던 2000년 (주)대용노동조합의 투쟁 사례는 독보적이다.
전북 익산 2공단에 소재한 (주)대용에서 계속되는 산업재해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2000년 8월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하여 부당 해고 및 징계 등 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을 동원하였고 디지털녹음기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사찰하면서 노동조합과 계속적인 갈등을 빚어왔다. 그런 와중에 사측은 노동조합과 논의 없이 2001년 7월 22일 일방적으로 CCTV를 설치하였다. 이에 노동조합은 노동 감시 중단과 CCTV 철거를 주장하며 같은 해 8월 28일 파업에 돌입하였다.
노동자들은 CCTV가 철거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작업장 내에 CCTV가 설치된 후 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병적 증세가 급증했다. 7월 27일 현재 60여명의 노동자가 스트레스와 두통, 근육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였고 8월 7일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던 노동자가 정신과의원에서 ‘망상적 급성 정신병적 장애 추정’ 진단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설문조사에서 "회사에 출근하여 마치 내가 짐승이 된 기분이다. 교도소에서도 주위 외벽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어도 모든 행동을 감시 받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내가 짐승인가"라고 진술하였다. 8월 10일 CCTV가 있는 작업장에서 일할 수 없다며 퇴사한 한 노동자는 인권단체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꿈에까지 나타났다"고 하였다. 둘째, 사측은 노동자 사이에 상호감시를 조장하였으며 CCTV는 그 과정의 일환이다. CCTV는 2000년 10월부터 사측이 도입한 디지털 녹음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명백한 ‘노동자 감시 기구’이다. 셋째, 사측의 일방적인 CCTV설치는 국제적 기준에 어긋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작업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정보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한 규약에는 "고용주는 노동자에 관한 정보를 반드시 작업과 관련된 범주에서 본인으로부터 직접 취득해야" 하고, "고용주가 특정 노동자를 감시할 경우 본인에게 그 사유와 방법, 시간 등을 통보해야 한다. 비밀 감시는 형사범죄 용의자에게만 해당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넷째, CCTV는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침해하는 감시 기구이다. 다섯째, CCTV는 작업장에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주)대용의 CCTV 논쟁은 같은 해 정기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 확산되어 결국 사측이 CCTV를 철거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 뒤늦게 노동부가 ‘감시 기술’이 파업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려 노동 감시 문제에 노동자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국제적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 원칙에 따르면 동의를 취득한 목적 이외의 개인정보 수집과 사용은 작업장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앞서 버스 CCTV의 사례와 같은 경우에도 처음 노동자들에게 합의한 CCTV의 설치 목적 이외에는 사용될 수 없으며 목적을 달성했으면 즉각 철거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다. 사회운동의 대응

(주)대용의 투쟁을 계기로 노동감시 문제에 대한 사회운동의 개입도 본격화하였다. 노동감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노동·사회단체들은 2001년 (주)대용의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감시카메라를 사용자 권리로 해석한 노동부의 해석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노동·사회단체들은 2002년 3월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모임에는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지문날인반대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02년 발전회사가 노동조합의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항의 성명을 함께 발표하고 고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후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발전노조 홈페이지 접속 차단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였다.
사회운동이 노동감시 문제에 대해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1997년 버스 CCTV 문제로 노동감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겨났고 노동·사회단체가 ‘작업장감시 조사연구팀’을 결성하여 활동한 바 있다. 이 모임에는 노동정보화사업단,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민주와진보를위한지식인연대 영상정보통신팀, 정보민주화와진보적통신을위한연대모임,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한국과학기술청년회 인터넷모임에서 참여하였다. 이들은 노동감시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갖고 전국 108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1998년 11월 ’98 노동미디어’ 행사에서 발표하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당시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을 도입한 작업장 가운데 81%가 노동자의 작업현황을 수집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CCTV를 도입한 사업체는 37.2%에 달했고 최근 5년 이내에 도입된 경우가 5년 이상된 사업체에 비해 3배에 달해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임의 활동은 구체적인 사건에 결합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1999년 중단되었다.
2002년 활동을 시작한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에서는 우선 현행법률상의 공백에 주목하여 반감시 입법을 목표로 삼았다. 동시에 법률적 공백에 대응하기 위하여 CCTV, 이메일, 홈페이지 차단 등 감시 기술별로 지침을 마련하여 발표하였다. 이 지침에서는 직장의 감시를 노동자의 존엄성과 프라이버시권, 나아가 노동자의 단결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개인 정보 수집장치에 대한 정책과 의사결정에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감시 규제 단협안’을 마련하여 민주노총 모범 단체협약안의 일부로 공개하였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2003년 들어서 노동감시 반대 운동이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은 전북대병원 노동조합의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 반대 운동이다. 물론 ERP 반대 운동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다. 2001년 대전 한라공조에서 ERP 시스템을 도입하자 노동자들이 반대하였고 (주)만도에서도 노동조합이 ERP 반대운동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보다 조직적으로 ERP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결국 회사와 ERP 에 대한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합의안까지 합의했다는 점에서 전북대병원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대병원은 병원업계 최초로 ERP를 도입하였다. 노동자들이 ERP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시험가동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간호사들은 ERP가 도입되면서 원가절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 물품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겨지고 업무가 규격화되면서 병원이 병원 같지 않아졌다고 지적했다. 수액주사 꽂는 자리에 붙이던 반창고 길이가 짧아지고 수술환자 소독이 매일 한번에서 이틀에 한번으로 줄었다. 매일 갈던 중중 환자의 시트와 환의도 2~3일에 한번씩 갈게 되었고 때로는 1회용 물품도 물로 씻거나 재소독해 다시 사용했다. 간호사들은 간호보다 물품관리에 신경쓰게 되었다며 분통을 토했다. 전북대병원 노동조합에서는 ERP가 수익 중심의 원가절감과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특히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훼손시켰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노동자들은 ERP가 그간의 단체협약이나 노동환경 개선 노력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 것을 걱정했다.
‘노동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의 앞서 조사에서도 노동자들은 ERP가 작업량이나 작업속도 등 노동강도를 강화시킨다고 보았다(중복응답비율 49.8%). 노동자들은 ERP가 인사관리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50.5%) 특히 ERP로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는 51.1%에 달했다. 불안은 연령이 높을수록 커졌다. 노동자들은 ERP가 조기퇴직자(Early Retired Person)의 준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ERP에 대해 느끼는 불안의 핵심은 ERP가 노동자 본인의 노동조건이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도 노동자에게는 그 도입과 운영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단체들은 ERP에 대한 노동자의 의견제시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용자는 ERP 시스템에 대해 노동자에게 숨김없이 공개하고 설명해야 하며 노동조합이 요구할 경우 ERP의 도입이나 운영에 대한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대병원 노사는 8월에 합의안을 마련하였다. 이 합의문에는 △ ERP 자료로 노동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으며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 직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이를 활용할 때 노동조합과 합의한다 △ ERP로 취득한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 △ 정보화 기술을 도입할 때 노동조합과 사전에 협의하며 근로조건과 관련된 사항은 노동조합과 합의한 후 시행한다 △ 노사가 실무협의체를 구성하여 ERP의 운영사항을 논의한다는 등 7개 사항이 담겨 있다.

4. 앞으로의 과제

버스 CCTV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디지털 첨단 감시 기술은 그 정확성과 객관성을 명분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고 감시를 도덕성의 문제로 치환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이 더욱 어렵다. 작업장에 도입되는 감시 기술은 전형적으로 노동 통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명분으로 도입된다. 뉴사우스웨일즈 프라이버시위원회는 CCTV를 도입하는 회사의 아홉 가지 이유의 전형을 제시하였다. ①절도 방지 ②적대적인 기물파손·방화·파괴 방지 ③(생산성 향상을 위한) 작업 모니터링 ④고객 서비스 향상 ⑤고용인 교육 ⑥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⑦법적 의무 준수 ⑧(법적 분쟁 발생시) 회사 면책 ⑨(생산성 향상을 위한) 생산과정 모니터링이 그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버스 CCTV와 같은 감시 기술이 노동 통제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 감시 기술의 도입 명분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노동 감시 기술이 표방하고 있는 중립적인 명분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과정의 맥락 안에서 노동 감시 기술은 노동과정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정치적 사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의 대응을 무력화시키는 첨단 감시 기술의 정확성과 객관성은 오히려 노동 감시를 강화하고 노동 강도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감시를 둘러싼 시선과 정보과 권력의 비대칭이다. 감시는 일차적으로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 사이의 갈등 문제이다.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부터 감시가 유래하고 감시 기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판옵티콘은 감시 받는 대상에게 불을 환하게 쪼여 투명하게 만들고 감시하는 자의 위치는 조명의 뒤편에 두어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점점 더 투명해 지는 개인,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권력’으로 요약되는 전자 감시의 모형은, 감시를 받고 있는 대상이 감시하는 자의 시선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게 한다. 즉,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혹은 숨겨져 있는 CCTV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언제나 의식하고 행동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과정론은 이런 전자 감시의 규율 효과가 최근 유연적 생산 방식에 부합하는 통제 방식이기 때문에 노동 감시가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첨단 감시 기술은 인적 감시와 달리 감시의 구체적인 작동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감시의 시선을 항시적으로 의식하는 규율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시를 극복하고 기술을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권력 관계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노동 감시 기술은 작업장 내 정치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노동자의 개입과 생산 관계의 역동성에 따라 그 설치 여부와 사용 용도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은 기계가 도입된 이후에야 규율 효과 등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 기술은 작업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뒤이기 때문에 사후에 이를 철거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규율을 습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나 감시 기술은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 그리고 노동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 전체적인 과정을 민주화하고 개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 문헌>
강석재·이호창 편역. 1993, {생산혁신과 노동의 변화}, 도서출판 새길.
‘국가인권위 바로 세우자!’ 인권단체연대회의·노동자 감시 반대, 대용 CCTV철거 전북공동대책위·대용노동조합. 2001, <(주)대용은 노동현장에 설치한 인권감시기구 CCTV를 즉각 철거해야 합니다>
김왕배. 2001,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도서출판 한울.
노동자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 2002, <노동자감시 규탄 및 근절을 위한 노동·사회단체 기자회견>(2002. 8. 1)
노동자감시근절을위한연대모임. 2002, 토론회 <첨단기술에 의한 노동자 감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2002. 11. 1)
민주노총. 2003, 토론회 <국가·자본의 정보화와 노동의 대응 전략> (2003.7.8)
서울특별시. 1997, <시내버스 개혁 종합대책>(1997.7)
작업장감시조사연구팀 편. 1998, <정보기술과 작업장감시> 워크샵(1998. 11. 13).
전북대병원지부·전북지역본부·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2003, <전북대병원 ERP가 왜 공공성을 저해하는가?>.
함영헌. 2000, "정보기술의 도입과 노동 통제의 변화에 관한 연구 – B공장 사례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European Commission. 2002, Working Document on the Surveillance of Electronic Communications in the Workplace, Brussels: Adopted by the Working Party May 29, 2002.
International Labour Office. 1993, Conditions of Work Digest on Worker’s Privacy PartⅡ:Monitoring and serveillance in the workplace, Vol.12. No.3.
International Labour Office, 1997, Code of practice on the protection of workers’ personal data.
Lyon, David. 1994, {전자감시사회},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발행.
Privacy Committee of New South Wales. 1995, "INVISIBLE EYES: REPORT ON VIDEO SURVEILLANCE IN THE WORKPLACE", No.67(1995.9).
http://www.privacyfoundation.org/workplace/technology/extent.asp
http://www.cnn.com/2001/CAREER/trends/01/02/surveillence.
http://www.amanet.org/research/pdfs/ems_short2001.pdf.
관련 신문기사 다수.

200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