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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실명제]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대논쟁 (월간중앙)

By 2003/10/2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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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논쟁]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월간중앙 2003년 09월호

최근 정보통신부와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마다 실제 이름을 확인받도록 하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추진하고 있다.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에 ‘메스’를 가한다는 점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신분증을 까는 것’은 과연 타당할까. 그 논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전창호 : 사회가 민주화되고 정보화되면서 예전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면 끝났을 일들이 이제는 논쟁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이하 인터넷 실명제 또는 실명제)는 아주 새로운 논쟁 주제이고 또 의견도 분분한 주제죠. 어쨌든 오늘 충분히 얘기해 보십시다.

장여경 : 인터넷 실명제 논란이 불거진 것이 지난 대선 끝나고 올초 인터넷 게시판에서 정치와 관련된 근거없는 글들이 올라오면서부터였습니다. 가령 ‘민주당 살생부’나 ‘국정원 개표 조작 개입설’이 나오면서 이 문제가 대두된 거죠. 그러다 논쟁이 본격화된 것이 지난 3월입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청와대 업무보고를 하면서 “올 하반기부터 정부 사이트에서 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됐죠.

전창호 : 먼저 반대하는 쪽 얘기를 들어 보면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부터 납득이 잘 안 됩니다.

장여경 : 물론 무조건적인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불법·위법성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가하는 것이 저 역시 옳다고 봅니다.

가령 지금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법률적 근거들을 보면 우리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인권규약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도 무조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위법행위는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명확한 법규정, 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법규정에 명확하게 위배된다고 입증될 때만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인터넷실명제라는 것이 뭔가요? 그것은 어떤 행위를 한 다음에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미리 그 행위를 제한하겠다, 사전에 제약하겠다는 것이라는 거죠.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입니다.

특히 신분 밝히기를 꺼리는 사회적 소수나 내부고발자 같은 경우 그 표현이나 고발 내용을 다분히 제약할 우려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정행위를 검열로 간주해 위헌으로 볼 수 있다는 판례가 있어요.

전창호 : 우선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배경이 정치적인 것에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것 말고도 많은 견해들이 있거든요. 사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등의 문제는 정치인·연예인·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발생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사실무근인 글이 올라 그 글에서 언급된 당사자가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많아요. 이미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필요성이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아까 말씀하신 정치적 사건들이 기폭제가 됐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그건 그렇고, 저는 인터넷 실명제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이나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닌가 생각해요. 인터넷 실명제를 하자는 것이한 마디로 표현은 자유롭게 해도 좋은데 책임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이든 표현을 간섭하고 제한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나중에 책임지지 못할 소리를 슬쩍 올려 놓고 숨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떳떳하게 하라는 차원에서 실명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봐요.

내용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을 책임 있게 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표현의 침해나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장여경 :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단일 커뮤니티(community)나 운영자에 대해 실명제를 적용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사실 그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 여기서 논의하려는 실명제는 국가가 일률적인 기준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예외 없이 그것을 적용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두번째는 명예훼손 문제입니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당사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할 때 비로소 문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민사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한 범죄죠.

그렇게 해서 가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면 마땅히 처벌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 옳겠지요. 그렇지만 인터넷에 무슨 글을 올리기도 전에 명예훼손을 우려해 어떤 제재나 제한을 가한다? 그것은 사전에 제재할 수도 없고 제재해서도 안 되는 거죠.

먼저 글이 올려진 다음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면 그때부터 책임 여부를 따지고 위법·탈법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인터넷 실명제는 아예 글을 쓰기 전에 모두 실명 등록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정부가 ‘글에 쓸 내용이 불건전할 수 있다’며 미리 제재를 가하는 꼴이에요. 그게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창호 : 표현의 자유에 관한 얘기를 하다 좀 건너뛴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부분들도 논의가 될 문제들입니다. 어쨌든 실명제는 필요한 경우 (글을 올린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을 밝히라는 것입니다. 사전에 제재할 필요 없이 사후에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글 올린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주장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 무책임한 얘기입니다.

인터넷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방성이에요. 세계 곳곳에서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또 전파 속도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그 영향은 퍼질대로 퍼진 뒤라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논리를 떠나 실명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전에 이것을 쓰면 안돼’라는 압박으로 느낀다면, 상식적으로 그 사람의 본심에 뭔가 거리끼는 것이 있는 것 아닌가.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장여경 : 사회적 약자나 내부고발자의 경우는 명백하게 ‘위축’되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전창호 :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겠죠. 가령 동성애자들처럼 뭔가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어렵거나 자기들끼리 익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앞서 장국장님께서도 언급한 소수 단위의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런 소수를 감안해 국민 누구나가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할지도 모르는 익명제를 그대로 놔둔다는 것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보는데요.

장여경 : 어쨌든 지금 정통부가 입안하고 있는 실명제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전창호 : 그 점에 대해 제가 정통부 입장을 알아봤어요. 올 하반기에 실명제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개별적인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까지 강제하겠다는 방침은 아니라는 답변입니다. 물론 법안이 마련되면 그것 또한 법적, 기술적, 제도적으로 보완될 부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장여경 : 일반적으로 이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로는 지금 정부 부처에 대해서는 당장 하반기부터 실명제를 실시하고 그 밖의 민간 부분에 대해서는 법제화하겠다는 겁니다. 그건 좋습니다.

제가 거듭 말하고 싶은 것은 (굳이 실명제를 하지 않더라도) 어떤 표현 행위가 발생한 뒤에, 그러니까 사후에 제재를 가해도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누군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는데, 그것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행위를 추적한다고 할 때 물론 그것을 100% 모두 추적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실제 세상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추적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용이합니다. 지난번에 그런 사례가 있었죠?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를 놓고 검사들을 비방한 네티즌 말입니다. 그 사람이 어렵지 않게 드러나고 구속됐어요. 그 과정에서의 법 집행도 과도했지만 핵심은 금방 찾아낸다는 거죠.

인터넷상에서 어떤 위법행위가 일어났을 때 지금 실명제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해당자를 찾아내고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거예요. 실명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느끼기에도 그처럼 신속하고 과도한 제재가 이뤄진다는 말이죠. 그런 마당에 실명제다 뭐다 해서 더 확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면 자기 ID와 패스워드(로그 기록)부터 적어야 합니다. 그 로그기록이 서버와 게시판에 이중으로 남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따라가면 해당자의 IP(접속 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더욱이 요즘 가정이나 PC방에서 자기의 고정 IP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글을 쓸 때 내가 너무 쉽게 드러나고 추적되는 것 같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그런 터에 또 무슨 실명제냐 이거죠. 이런 점에서 실명제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굳이 둘 경우 심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압박, 침해한다는 주장이 타당합니다.

전창호 : 타인의 명예나 사회안전, 공공질서,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표현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국장님 말씀처럼 글을 올린 뒤 나중에 가서 책임질 수 있고 또 추적도 용이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 시점에서의 제재나 추적이 과연 효과가 있는가 이 말이에요.

이미 내용은 사이버 공간에 다 퍼졌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글을 올리는 사람이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퍼뜨리려고 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동원해 자신의 IP를 추적하지 못하게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죠.

또 사이버 범죄자가 잡히는 경우만 봐서 그렇지, 실제로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거든요. PC방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서버를 경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시판에 올려진 로그 기록을 찾는다는 것도 이용자가 소수일 때는 용이하지만 지금처럼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을 통해 상호 접근하는 상황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아요.

장여경 : 모든 글에 대해 작성자를 찾자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문제가 되는 글을, 문제가 되는 표현을 올린 사람을 찾는 것이죠. 그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전창호 : 그것이 그렇게 생각만큼 용이하지 않다니까요. 앞에서 예로 들었던 검사를 비방한 네티즌도 어떻게 쉽게 드러났느냐 하면, 이 사람이 ‘나를 추적하려면 하라’는 마음이었는지 자기 집 PC를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죠. 그렇지만 게시판에 올릴 때는 차명(借名)이 허다해요.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지만 그보다는 어쨌든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사후에 제재한다 는 것은 피해자에게 실익(實益)이 적어요. 시쳇말로 사이버 공간을 통해 ‘소문날 것은 다 나 버린’뒤거든요.

장여경 : 표현의 자유는 언론·출판의 자유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하고 아직 10년도 채 안 된 상황입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그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에요.

법학자나 이쪽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언론·출판의 자유도 100년간 논쟁 끝에 규정이 마련된만큼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얘기가 바로 일간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과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는 거죠.

이미 신문에 내용이 다 실리고 배포까지 된 후에 내용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그거죠.

20세기 초라고 하는데 물론 당시에도 ‘신문이 나오기 전에 그 내용을 검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논란이 되면서 ‘사후책임제도’로 정착됐어요. 다만 중재 제도를 두어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도록 하거나 법적 근거에 따라 재판 제도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발돼 왔습니다.

저는 인터넷의 경우도 원칙적으로 사후책임제를 지향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도록 하자, 그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또 신속한 구제가 어려울 때도 언론·출판의 경우처럼 인터넷에 적용 가능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옳겠죠.

전창호 : 저도 그것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장여경 : 기본적으로 사이버상에 글을 쓸 때 이름부터 등록하라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니겠습니까.

전창호 : 보는 시각에 따라 행정편의주의라거나 혹은 국가 기관이 국민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매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국가가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그런 통제를 하려면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 아닐까요? 요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장여경 :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마저 국민이 맞서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창호 : 인터넷이 참 편리하고 장점이 많지만 그것이 악용돼서 생겨나는 문제 또한 대단히 심각합니다. 한 인격체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거나 아예 매장시킬 만큼 파괴력이 있다는 말이죠. 이런 점을 우리가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할 것 없이 가령 장국장님의 경우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터무니없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비방하면 ‘나와는 무관하다’며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장여경 : 그런 일이 있으면 저는 응당 법적 절차를 밟아 사후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전창호 : 그렇게 사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상대방이 추적돼서 드러나고 또 명예회복이 되고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 말이에요. 좋습니다. 그렇게 사후 책임을 물어서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도 보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것은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여경 : 제가 피해를 봤던 그 글에 대해 맞글을 쓸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전창호 :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맞글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이들은 그냥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실명제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저 역시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할 말을 못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글을 올리는 행위를 하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제약받는 거죠.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좋은 제도가 있으면 그것을 일단 받아들이고 부작용을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장여경 : 인터넷의 그런 역기능을 방지하는 것보다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오는 정책이 바로 실명제 아닐까요? 가령 우리나라 네티즌이 2,000만명을 넘은 상황에서 그 중 어떤 사람이 저를 겨냥해 나쁜 글을 쓸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그것을 빌미로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이름부터 밝혀라, 등록해라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처사죠.

전창호 :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겨냥한다? 그것은 아니죠. 그것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든 것 같은데요?

장여경 : 전교수님은 명예훼손을 침해당한 피해자에 대한 고려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현 사법제도 안에서 구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일방적·전반적으로 시행할 것은 못 되는 것 같다는 입장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전창호 : 장국장님은 국가가 나서서 인터넷 실명제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분명한데 저는 국가, 그러니까 공공기관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대한 실명제를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기관이라는 것은 공공성 그 자체 아니겠어요? 사적인 커뮤니티는 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일부에 그칩니다.

반면 국가기관은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대상이에요. 그런 점도 서로 분명하게 다른 것 같군요. 표현의 자유 등이나 사전·사후 제재 문제에 대해서는 이쯤 마치고 실명제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프라이버시쪽 얘기를 해 보죠.

장여경 : 실명제를 실시하게 되면 과연 본인이 맞는가, 실명 확인을 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그 절차를 위한 ‘실명 데이터베이스(DB)’가 필요합니다. 그런 실명 DB를 구축하고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비밀보호에 관한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없느냐 하는 점을 따져봐야 합니다.

먼저 프라이버시권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지금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하는 것은 198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제정한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근거로 합니다. 거기 8가지 항목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인정보는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수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당사자 동의를 받을 때 목적을 정확히 밝힌 것에 대해서만 개인정보를 사용할 수 있을 뿐, 그외의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 요지예요. 사례가 있어요. 최근 실명DB를 제공하는 업체 중 두 곳이 당국에 고발된 적이 있어요.

근거 법률은 ‘신용정보 및 신용이용 보호에 관한 법률’이죠. 이 업체들이 방대한 실명 DB를 모아 왔어요. 한 업체는 3,500만명의 실명 DB를 구축해 준(準)주민등록망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정도죠. 그런데 그런 개인정보가 모두 처음에는 각 개인의 동의를 얻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창호 : 그런 논란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한 법학자의 주장을 제가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에 따르면 “최초 수집 목적 이외의 개인정보 사용은 금지돼야 하지만 단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신용정보법을 예로 들면 신용정보법에는 현재 ‘공무상 목적을 위해 신용정보의 제공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거든요. 말하자면 공공의 목적, 공무상 목적으로 어느 기관의 장이 문서화된 요청을 할 경우 개인 신용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얘기는 만약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고 그래서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존 실명 DB(가령 주민등록DB 같은)를 사용해야 할 경우 프라이버시권을 적용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라는 거죠.

장여경 : 전교수님께서 지금 두 가지를 한꺼번에 섞어 말씀하신 것 같네요. 신용정보법에 규정된 내용은 ‘공무상의 목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닌 것으로 알거든요. 거기서는 공무(公務)를 ‘신용확인 업무’라고만 명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관련해서는 현재 ‘주민등록법’에서 주민에 관한 정보DB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그것도 ‘공무상의 목적으로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글쎄요. 은행이 가진 기존 개인정보나 정부의 주민등록 DB를 인터넷 실명제의 실명 확인에 쓰겠다고 하는 것이 법적으로 옳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전창호 : 방금 제가 소개했던 법학자의 주장은 ‘공무상의 목적’을 ‘전자정부법’으로 연결시켜 나간 것이지요. 전자정부법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또 국민이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매체로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요.

인터넷 게시판이 곧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실명제가 되면 그럴 때 실명을 확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이것입니다. 앞의 법학자 얘기는 그럴 때 정부가 (다른 곳에 축적돼 있는) 개인의 정보나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법적으로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아니다, 그런 해석이죠.

장여경 : 글쎄요…. ‘공무상의 목적’을 이렇게 보는 법학자도 있습니다. ‘특정법에서 정의하는 공무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신용정보법에서 규정하는 공무는 명백하게 신용 확인 업무라는 제한된 테두리가 있다. 따라서 신용 확인이 아닌 다른 용도로 그것도 유료로 개인정보를 전용하는 것은 법규정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전창호 : 일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 DB를 이용하려면 정통부라도 수수료를 내야겠지요. 그렇지만 앞으로 정통부가 법적 근거를 가지고 (기존에 구축된 실명 DB에 대해) 개인정보를 요청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겠죠.

장여경 : 주민등록 DB의 경우 공무를 목적으로 행자부 장관에게 ‘정보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하면 장관이 판단해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주민등록 DB(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범위가 일정하게 제한돼요.

주민등록 업무상 필요할 때, 해당 국민의 신분을 식별할 필요가 있을 때 등 몇 가지 경우로 규정돼 있지요. 그런 절차를 밟아 개인정보를 얻어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규정들 역시 프라이버시권을 넘어선 요청이라고 보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전창호 : 법학자들 간에도 이런 사항들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인터넷 실명제를 위해) 실명 DB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냐 적법이냐 하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현행법만으로는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모두 재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구축돼 있는 DB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 기존 법률을 어겨가면서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장여경 :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만약 실명제 실시를 위해 실명 DB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그 목적만으로 별도로 구축하는 것이 낫다고 봐요. 앞서 제가 OECD 8원칙을 얘기했는데 이미 수집된 개인정보들은 본래 그것에 합당한 목적이 있는 거예요.

그 목적에만 쓰겠다고 해서 개인이 서명 동의한 것 아니겠어요? 또 국제법상으로도 어쨌든 개인정보(DB)는 목적 외의 사용을 금하는 추세입니다. 실명제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내용에는 지금까지 얘기한 실명 DB 사용 논란 외에도 이른바 ‘수색의 문제’도 짚어봐야 합니다. ‘통신비밀보호법’등 현행 법률에서는 불법행위 용의자를 국가가 수색할 때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돼 있습니다.

전창호 : 사이버상에도 그것이 적용돼야 한다는 말씀이겠죠?

장여경 : 그런데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글을 썼는데 문제가 됐다, 그럴 때 정부가 해당자를 추적해 찾아내는 과정이 지금 그냥 아무런 제한 없이 DB를 열어 보는 거예요. 개인 DB를 말이죠. 거기에 법관이 발부한 영장은 필요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가령 공무집행이라고 해서 길거리에서 행인에 대한 수색을 할 때도 근거법을 대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DB에 등록돼 있는데 그 사람이 뭔가 문제를 일으켜 정부가 DB를 수색해 그를 찾아낸다고 할 때 무슨 영장이니 협조니 하는 것이 없잖습니까. 그저 기술적으로 찾아낸다 말이죠. 그런 방식이라면 온라인은 기존 오프라인에서 보장돼온 수색의 원칙이랄까, 수색 때의 인권 같은 것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마침 지난해 ‘통신비밀보호법’이 개정됐어요. 그래서 통신비밀 보호 대상에 인터넷 내용도 포함시켰습니다. 전에는 통신비밀이라고 하면 전화에만 국한했지만 이제는 인터넷도 통신에 포함시켜 그 보호 범위를 넓힌 것이죠. 사이버 공간에서의 개인 수색과 관련해서도 이런 영장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전창호 : 인터넷 통신이라고 하면 주로 1대 1 개인통신을 얘기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과 인터넷 게시판은 엄연히 다릅니다. 인터넷 게시판은 한 사람이 다수를 상대로 글을 보내고 의견을 공개하고 하는 거죠. 이미 통신의 개념을 넘어선 것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통신비밀 보호 대상과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장여경 :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그런 개념도 통신의 한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전창호 : 통신비밀보호법이 바로 그처럼 개정됐듯 이제 시대가 변하고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면 법률도 바뀌어야 합니다. 장국장님과 제가 논의한 얘기도 그렇습니다.

만약 인터넷 실명제 관련 법률, 그러니까 실명제를 찬성하는 쪽으로 법률이 제정된다면 자연스럽게 ‘수색’의 문제도 ‘영장주의’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말이죠.

장여경 :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등장한 지 10년이 채 안 됐습니다.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규제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은 아직 논의중일 뿐입니다. 인터넷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에 대해 일정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제재 방식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나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는 보호돼야 할 통신비밀 같은 것을 침해당하는 쪽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행정편의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독재’만큼 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대해 실명제를 적용하는 것은 기술독재나 다름없다, 또 그런 점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창호 : 인터넷은 참으로 뛰어난 순기능을 갖고 있어요. 그것의 역기능을 방지하면서 유익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노력의 하나가 인터넷 실명제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인터넷문화가 바르게 자리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행 법과 관련해 개선할 부분,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교육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겠지요. 말씀 감사합니다.

200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