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회원 인터뷰 : 진보넷을 지지합니다{/}[회원 인터뷰] 권상구 회원님

By 2017/03/03 No Comments

내 서랍속의 정보운동

우편물이 반송된다고 진보넷 회원관리자에게 메일이 왔다. 그냥 주소만 적어주고 말아야 할 것을 진보넷과 1999년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말해 버렸다. 그 벌로 이 글을 남긴다. 그 보잘것없는 인연이라는 것은, 오병일 활동가를 1998년 11월 대구의 정보통신운동 포럼에 초대했었다는 거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지만 말이다. 글을 쓰겠다고 한 그날부터 난 1998년 11월의 시점을 발굴해야 하는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다행이 기록광이었던 나는 그날 행사 내용을 메모한 쪽지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세대였던 93학번이었으며, 학보사 영자신문 기자였기에 개학 첫날 난 기계식 영문타자기랑 씨름을 해야했다. 94학번 후배가 들어오더니 씩 웃으며 아래한글1.0로 기사를 써서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제출하는게 아닌가? 윈도우 3.0이 윈도우95로 바뀌는 것을 보고 군대에 갔다. IT잡지로 복귀준비 중이던 군대고참이랑, ‘영화’를 보며 ‘워드’를 할 수 있는 ‘멀티 테스킹’세상이 ’97년에 열렸다라는 이야기가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때였다. ’98년 제대하고 학생운동과 단절하고 ‘환경’, ‘소수자’, ‘문화예술’에 관심을 두었다. 어느날 도서관운동을 하던 후배가 리눅스로 서적검색DB를 만든 것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엘빈토플러의 ‘정보화사회’에 대한 담론과 FSF의 GNU선언을 읽으며 ‘지역에서 정보통신 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 의미를 두게 된다. 후배와 의기투합하여 ’98년 ‘BIG BROTHER를 잡아라’라는 다소 촌스러운 제목으로 포럼을 열게 된다. 이때 주제발표를 오병일 활동가가 하셨다. 심포지움 중에 해킹으로, 윈도우98 피시에 남은 ‘쿠키정보’에 접근하는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이런 실험은 서랍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제한받지 않는 ‘IT운동’이었지만, 그 실상은 더 수도권 중심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난 그 이후 지역문화를 보살피는 문화활동가가 되어 20년간 몰입해온다고 나의 ‘정보운동’은 서랍속에 묻어 두었지만, ‘진보네트워크’의 활동에 대해서는 항상 오랜 친구처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