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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칼럼] 정보 인권, 어째서 문제인가

By 2003/07/2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 인권, 어째서 문제인가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인권 운동가들은 어째서 ‘정보 인권’의 문제로 단식농성까지 하게 되었는가?

정보 인권은 인권 운동으로 확보해 온 인권의 원칙이 정보 사회에서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매우 소박한 주장이다. 하지만 네이스를 둘러싼 논쟁의 진동폭이 격렬한 것처럼 정보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길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정보 기술의 발달 자체가 인권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체의 자유가 처한 상황을 보자. 국민을 체포·구속·압수·수색할 때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영장주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국민을 수색할 때 굳이 영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 경찰은 얼굴인식기술을 사용해 미식축구 결승전을 보려고 모여든 수천 명의 관중 가운데 19명의 수배자를 아주 간단하게 검거했다. 경찰은
관중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마다 얼굴을 촬영하여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데이터베이스와 신속하게 대조했고 경기가 끝났을 때 퇴장하는 관중 가운데 수배자를 손쉽게 골라내었다. 이 과정은 수배자를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혐의자 신분으로 수색하고 조사하는 과정이었지만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따위의 양해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한편 정보통신부는 오는 8월부터 정부 게시판에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실명을
사용하게 하고 문제 소지가 있는 글에 대해서는 글쓴이를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추적이란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신원을 파악하고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수색 과정이지만 역시 영장 없이 진행된다. 은밀하고 편리하다.

시청 앞에 모인 집회 군중을 감시하기 위해 과거에는 불심 검문을 하고 사복
경찰을 동원하고 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시청앞에서 잡히는 핸드폰 위치 정보만 수집하면 이들의 신원을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정보는 신체의 자유와 밀접한 문제이며 신체의 자유 뿐 아니라 모든 인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정보 인권이 제시하는 원칙은 ‘자기정보’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실명이나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얼굴·지문과 같은 생체 정보, 핸드폰이나 인터넷 이용기록과 같은 위치정보, 그리고 건강이나 교육에 대한 기록 등 개인의 모든 정보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 그리고 전산화하거나 인터넷에 연결하는 것 하나하나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국가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 권력 입장에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민 통제 수단이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인권이 그러했듯이, 정보 인권이 저절로 얻어질 리 없다. 앞으로 무수한 싸움이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네이스에 대한 전교조의 투쟁은 정보 인권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보 인권을 가장 중대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주민등록제도이다. 박정희가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정보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주민등록제도가 오늘날 모든 전자 정부의 기초이다. 주민등록제도는 목적을 밝히지 않고 뚜렷한 법률적 근거도 없이 140여 개에 달하는 방대한 국민의 개인정보를 임의로 수집하고 사용하고 전산화해 왔다. 특히 국민이 미성년자일 때 국가가 지문을 강제로 날인받아 임의로 경찰에 넘겨 평생토록 관리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다. 그런데 전자정부가 추진되면서 이 주민등록정보가 다른 여러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고 통합되면서 인권 침해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국민마다 고유하게 부여되는 국민식별번호로서 한번 유출되면 그 피해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비공개하거나 국가의 복지 수혜 등 제한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마구잡이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도록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비싼 보안 기술을 도입해 봐야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인권 운동가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단식농성까지 감행하게 된 것이다. 늦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절박했다. 정보 인권은 정보화
시대에도 개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소박한 주장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
도래할 정보 사회에 여전히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200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