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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칼럼] 인권의식이 이래서야

By 2003/06/0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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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3/06/01

칼럼/ 인권의식이 이래서야

‘개혁정권’이 백일도 지나지 않아 ‘개혁’은 실종되고 정권은 표류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측근 비리 의혹에 휩쓸리고, 집권 민주당의 대표는 한나라당, 자민련 대표와 초호화판 룸살롱에서 어울리며 이 나라 ‘보수’에 기대할 수 있는 ‘개혁’의 가능성에 대해 몸으로 보여줄 때, 교육부총리는 다시 말을 바꾸어 네이스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줏대도 없고 철학도 없는 듯, 노정권의 ‘시계추’는 요동치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시계바늘이 미래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네이스’에 대한 노정권의 집착은 그들에게 기본적인 인권의식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나아가 노정권에 무슨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묻게 한다. 네이스가 말해 주듯이 행정 편의와 효율의 주장 앞에서 인권이 간단히 무시될 수 있다면, ‘국가기강’과 ‘질서’ 앞에서 사회정의의 요구는 억압되어야 마땅하고, ‘안정’의 탈을 쓴 수구 앞에서 개혁은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 관리하는 그 자체가 기본권 제한”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그런데 교육부총리는 ‘보안장치를 철저히 하면, 인권유린이 안된다’며 딴소리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교육부총리인가, 벽창호인가. ‘개인정보의 수집, 관리 자체가 기본권 침해이며 인권유린이 된다’고 몇번이나 말해줘야 하는가. 그의 귀엔 국가인권위 박경서 상임위원의 “세계에서 학교 안 정보가 학교 담장을 넘어가는 사례가 없고, 더구나 온라인 상에 개인정보를 집적시키는 네이스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권침해 시스템”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가. 97%의 학교에서 교무,학사, 보건, 진,입학의 3개항을 포함한 학생 개인정보가 네이스에 입력됐다면,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할 정도로 침해되었다는 것을 뜻할 뿐, 그것이 네이스로 되돌리기 위한 핑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교육에 관심을 가질 일이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교육부라면 사회구성원들에게 ‘정보인권’에 관한 인식을 깊게 하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남의 나라에서 보듯이, 정보기술을 효율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정보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정보복지권을 주기 위해 이를 생존권 차원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못할망정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할만한 인권침해 행위에 앞장서다니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정부라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차제에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름을 ‘인적자원부’라고 바꿀 것을 제안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교육 3주체에게 일상적 고통을 안겨주는 엄중한 교육현실 속에서 개혁의 과제가 산적해 있는 이 마당에 사회구성원들을 ‘지하자원, 천연자원이 아닌 인적자원’으로 보고, 관리, 통제하려는 데에만 관심 가질 뿐이어서 ‘인권 쯤이야!’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부처라면 ‘교육’이란 두 글짜를 당장 떼내야 마땅하다. 교육부공무원직장협의회도 이름을 ‘인적자원…’으로 바꿀 때 네이스 폐기에 반대하는 직장협의회에 적절한 이름이 될 것이다.

네이스는 노무현 정권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물적 토대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수구세력들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개혁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요구에 끌려갈 것인가. 전교조가 네이스 반대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정보인권 뿐이다. 불과 몇개월을 사이에 두고 교총과 한나라당이 180도 말을 바꾼 것은 조직이기주의의 표현이며 개혁에 대한 수구의 반응이었다. 또한 인권문제에 대해선 외면하고 전교조와 교총 사이의 ‘기싸움’으로 몰아간 조중동은 수구신문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서 노 정권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홍세화/ 기획위원

200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