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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자료] ‘정보 인권’이 짓밟힌다 (진보네트워크센터-한겨레 공동기획)

By 2003/05/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한겨레 공동기획>
한겨레신문 2003년 5월 20일

‘정보 인권’이 짓밟힌다


정보접근 차별.개인정보 침해 등 다반사
정부.업체 "일일이 챙겨야 하나" 불감증
비용.효율 내세워 정보화 사각지대 방치

정부와 업체들의 ‘정보 인권’ 침해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통신 및 인터넷 정책에서 정보인권 불감증을 드러내고 있고, 덩달아 업계에선 가입자 신상정보를 활용해 가입자 몰래 부가서비스에 가입시켜 요금을 받아내는 등의 인권 침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효율성에 치우쳐 있는 정부나 사업자는 물론, 심지어 피해자인 국민들조차 이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어, 피해 발생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가 방치될 경우 애써 추진한 정보화가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반감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예컨대 리눅스나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들은 현재 전자정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서비스와 홈페이지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소프트웨어 한가지 규격에 따라 설계해, 다른 업체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은 접근할 수조차 없게 만든 탓이다. 부처 담당자들은 “적은 예산으로 개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리눅스나 매킨토시 사용자 비율이 5%도 안되는데 이들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불감증이 심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또는 정보 접근권에서 볼 때, 이런 차별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정보시대를 맞아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는 일과 생활 자체가 어렵게 됐다”며, “따라서 인터넷 이용을 차단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정통부가 추진 중인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도 같은 지적을 받고 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의사 표시를 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등록정보를 실명제 서비스에 활용하는 것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자기 정보 통제권을 침해하고,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는 “정보통신산업협회 등이 개인정보를 수집해 실명 확인 서비스를 하는 것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국민의 자기 정보 통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 사이트 등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폐쇄되고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 및 정보 공유권 차단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로 꼽힌다. 이런 잣대로라면, 왼손잡이, 키 작은 사람들, 장애인 등 소수와 비주류들의 모임 사이트도 모두 폐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신업체의 잇단 가입자 신상정보 노출과 부당 이용, 네티즌들의 전자우편 주소를 수집해 거래하거나 스팸메일 발송에 사용하는 것은 인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은우 변호사는 “이런 침해 사례를 들어 프라이버시 보호를 주장하면 바보 취급을 할 만큼 침해가 일반화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와 사업자들은 물론, 피해 당사자인 국민조차도 이를 인권 침해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부분 단순한 불평, 불만 사항으로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인권 침해 소지를 갖고 있다”며 개선을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정보화에 인권을 접목한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한 학생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거나 친구와 싸움을 벌인 사실이 네이스에 입력될 경우, 이 학생은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실제로 성장기에 정신과 상담을 받은 자료들이 당사자에게 평생 ‘딱지’처럼 붙어다니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부에선 개인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쓰지 않고, 보안체제도 잘 갖추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지만, 나중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사례는 통신요금 연체자 관리를 하면서 축적한 정보통신산업협회의 데이터베이스나 주민등록정보를 게시판 실명제 서비스에 이용하는 것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건국대 한상희 교수는 “인권 침해 지적을 받고도 비용 문제를 내세워 그대로 운영하려는 정부의 태도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정보 인권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창출, 효율성 등의 목표가, 정보화를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로 전락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정보인권 침해 정통부가 한술 더떠


△ 지난 2001년 정부가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 폐쇄한 것은 표현의 자유 및 정보 공유권을 침해한 사례로 지적된다. 사진은 2001년 8월에 열린 동성애 사이트 폐쇄 항의 집회 <한겨레> 자료사진

“정보통신정책의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되레 정보 인권 침해에 앞장서고 있다.” 정보 인권 찾기 운동을 펴고 있는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삶의 질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고, 정보화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역기능 해법도 산업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려는 정통부 정책이 정보 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다.

정통부는 1995년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먼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 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시킴으로써, 다른 프로그램 사용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

리눅스,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들과 시민단체들의 개선 요구가 잇따랐지만, 정통부는 최근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도 엠에스 소프트웨어 사용자만 이용할 수 있게 한 부분을 고치지 않음으로써 리눅스 사용자들은 여전히 정보접근권이 차단돼 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역시 정통부가 정부 부처 가운데선 처음으로 지난해 초부터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정통부는 인터넷 내용등급제 시행을 반대하고 전화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온라인 시위가 잇따르자, 게시판을 폐쇄한 뒤 실명 확인을 받아야 글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다시 열었다.

정통부의 게시판 실명제 도입 방침과 관련해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실명제 확산이라는 명분 아래 주민등록 정보를 민간 포털업체들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다음, 엔에이치엔 등 포털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정통부가 이런 방침을 밝히자, 사이버공간에서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반대 여론이 거세자 정통부는 “6월쯤 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들은 내실을 갖춘 공청회가 이뤄질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통부가 공청회 전에 대다수 정부 부처와 포털사이트에서 실명제를 시행하게 하는 방법으로 반대 여론에 맞서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통부는 스팸메일 규제 방식을 신청한 사람에게만 보낼 수 있게 하는 ‘옵트인’ 방식으로 바꾸라는 네티즌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네티즌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통부가 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하다 보니, 인권 침해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보화 추진과 역기능 해소, 사업자 육성과 소비자 권익 보호 등 서로 배치되는 일을 한 부처에서 담당하게 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예컨대 자녀가 집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음란물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부모에게 일주일에 한시간이라도 아이와 함께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자녀가 그동안 어떤 사이트를 주로 방문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캠페인부터 벌여야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모와 함께 컴퓨터를 쓰다 보면 아무래도 유해 사이트를 방문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부가 선택한 방식은 컴퓨터에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문화적 선택이 아닌 산업적 선택, 다시 말해 사람 대신 돈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 셈이다.

아이들의 온라인게임 중독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많은 집에서 자녀들이 부모가 아니라, 컴퓨터의 감시를 받으며 인터넷을 이용하게 됐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정통부의 땜질식 정보화 역기능 해소책 및 사업자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적 발상이 정보 인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80년 만들어져 각국 정부 정책 주요지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정보의 국제적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각 회원국에 이 지침을 기준으로 국민들의 정보인권을 보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80년에 만들어진 이 개인정보 보호 원칙은 오늘날에도 각 나라 정부의 정보통신 정책에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수집제한의 원칙=개인정보 수집은 원칙적으로 제한돼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지키고, 본인에게 통보하거나 동의를 얻어 수집해야 한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수집하면 안 된다.

●정확성의 원칙=개인정보는 사용 목적과 정확하게 맞아야 하고, 목적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보관해야 한다.

●수집 목적의 명확성 원칙=개인정보의 수집 목적은 반드시 특정돼야 한다. 수집 목적에 맞지 않게 되면 즉시 파기해야 한다.

●이용제한의 원칙=개인정보는 동의받은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

●안전보호의 원칙=개인정보는 분실, 불법적인 접근, 변조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공개성의 원칙=개인정보 처리 과정과 정책을 일반에게 공개해야 한다.

●개인 참여의 원칙=정보 주체에게 자신의 정보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책임원칙=정보관리자는 앞의 모든 원칙을 지키도록 조처할 책임이 있다.

김재섭 기자

“뭐가 인권침해지?” 대부분 자각도 못해 정부 ‘모르쇠’ 일관

대다수 사람들은 정보 인권 침해를 당하고도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스팸메일 때문에 짜증을 내고, 통신업체가 가입자 개인정보를 유출시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게 정보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보 인권에 눈을 뜨지 못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통부의 경우, 통신업체의 개인정보 유출은 ‘실수’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스팸메일은 전자우편을 통한 마케팅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돌리며, 국민들에게 “참으라”고 한다.

심지어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인터넷 내용등급제, 발신자전화번호표시제 등 국민의 정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정책을 보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시행하고 있다. 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쪽 사람들”로 간주한다.

정보 인권 침해 주체가 국가 권력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정보 인권 침해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찮다. 유일하게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02-1336)가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수집, 이용하거나 유출시킨 경우에 대해 피해자에게 물질적 피해에 더해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곳도 민간업체가 일으킨 피해만 다루고 있다. 전자정부나 정부기관 홈페이지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피해 당사자가 직접 행정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정보인권이란?

‘인권’이란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보장받는 권리로, 모든 나라가 헌법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정보 인권’은 기존 인권의 개념을 정보시대의 특성에 맞춰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정보 인권 찾기 운동을 펴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자기 정보 통제권, 표현의 자유, 정보 공유권, 정보 접근권, 반감시권 등 다섯가지를 정보 인권으로 규정하고,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 ‘내가 꼭 알아야 할 정보화시대의 인권’(사진)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 강내희 대표는 다섯가지 정보 인권을 “국민이 정보시대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자, 정보화 추진에 따라 가장 위협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며 “이를 지켜낼 때 정보화의 순기능도 살아난다”고 지적했다.

자기 정보 통제권이란 자신의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예컨대 통신서비스 가입자들은 ‘정보가 유출되지 않게 잘 관리하고, 동의받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용약관을 믿고 개인정보를 사업자에게 제공한다.

만약 사업자가 실수로라도 이를 유출시켰거나, 부당하게 이용했을 때에는 가입자의 자기 정보 통제권을 침해하는 게 된다. 가입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보 접근권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다. 전자정부 서비스의 경우 지금처럼 리눅스나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면, 이들의 정보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정보 공유권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권리다. 사이버공간에서 각 개인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피투피(P2P)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동성애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 등은 이 정보 공유권을 침해하는 사례로 지적된다.

표현의 자유는 말 그대로,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반감시권은 도청, 감청, 위치확인, 감시카메라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리킨다.

2003-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