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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실명제/보도자료]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논란을 지켜보며 (김근태)

By 2003/04/1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김근태 의원 홈페이지(http://www.ktcamp.or.kr)에서 퍼왔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논란을 지켜보며

올린날 : 2003-04-14

김근태 (국회의원)

‘욕티즌’이란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욕설마당’이 되어버린 자유게시판이 허다하다. 사람이나 제품이나 한 번 비방에 휩쓸릴라치면,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심지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네티즌까지 가세해 난도질을 당하게 되고, 결국 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나도 몇 번인가 막무가내로 공격당한 적이 있다. 오목조목 근거를 대며 비판하면 열 받지만 약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내용 없는 인신공격과, 그리고 욕설은 지금 내 수양 정도로는 그냥 넘길 수 없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인간의 공격적 심성이 작동하여 "이지메"를 놓기 마련이야, 그러니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나 스스로를 설득해 봐도 잠깐 뿐이다. 정말 화가 난다. 어떤 때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한동안 나 자신의 홈페이지를 들여다 볼 마음이 도통 생기지 않는다.

정치인인 내가 이럴진대 특별한 잘못 없이 공격받아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제품에 대한 비방으로 손실을 입은 기업은 ‘익명성’이 갖는 그 폭력성에 진저리가 쳐질 것이다. 정부의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방침도 ‘익명에 따른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부작용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네티즌의 자발성에 맡기기에는 그 피해가 막대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이 있다.

사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이 갖는 문제는 자유게시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뭐라 하든가 본인은 단호하게 부인하는데도 여전히 모 양 비디오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당사자의 인권을 짓밟게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라는 것은 단지 "공자님 같은" 말씀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채팅방에서는 사이버 성폭력이 감행된다. 불법적인 음란 광고물이 수십통씩 이메일로 들어온다.

내가 너무 감상적인 것인가. 나는 그래도 타율적이고 강압적인 ‘규제’보다는 다른 방식을 찾고 싶다. 인터넷이 정화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기약 없어 보이더라도 일방적으로 나가는 것은 나는 반대한다.
‘실명제’가 자유게시판의 욕설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금방 안티 사이트를 만들고, 추출기로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어내고, 유동 IP로 추적을 피해 가는 건 네티즌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등급제 실시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에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등급제’를 도입했지만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칫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그를 피해가기 위한 또 다른 틈을 만들어 낼 것이고, 또 그 틈을 막으려는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규제일변도, 규제 만능주의 방식은 자유로운 쌍방향 정보 공유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21세기 정보민주화 시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이다.
규제나 법률이라는 수단을 통해 건전한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생각은 혹시 낡은 아날로그 코드가 아닐지 모르겠다. 규제는 위선을 만들어 낼 것이고, 무엇보다 인터넷 상에서 활력을 빼앗아가 버릴 것이다. 나는 그것이 걱정된다. 그것이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버리는 꼴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 발생적인 교육, 그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갖게 될 시행착오를 통한 결과적 교육, 그런 것을 거치다 보면 욕설과 인신공격은 한 쪽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이미 사이버는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새로운 현실 공간이 되고 있다. 그 새로운 공간에 필요한 건전한 문화와 예절은 ‘인터넷 시대정신’을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나는 그것을 믿는다. <끝>

200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