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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칼럼] 선거, 어째서 인터넷이 침묵을 강요받는가

By 2002/11/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선거, 어째서 인터넷이 침묵을 강요받는가
– 선관위의 삭제 요구를 받은 운영자들의 고민에 대답한다 –

* 네트워커 18호 (2002년 6월호) 게재글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 della@jinbo.net )

지난 5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는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 앞으로 진보네트워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어떤 글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진보넷이 선관위로부터 공문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진보넷은 지난 3월부터 게시판의 글이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선관위의 공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진보넷 뿐 아니라 대자보,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디지털 말 등에도 선관위의 공문이 내려왔다. 문제는, 선관위의 공문이 책임자의 직인조차 찍혀져 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상태로 줄줄이 팩스로 보내지는 등 분명히 ‘남발’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선거법)에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이하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82조의3, 제256조) 또한 선관위는 지난 3월 진보네트워크의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 회신하면서 대부분의 사회단체 게시판을 상시적으로 밀착 감시하고 있다고 밝혀 국가 검열의 소지마저 보이고 있다.

이것이 진보넷만의 고민은 아니다. 본격적인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선관위의 삭제 요구를 받은 게시판 운영자들이 고민하고 있다. 선관위의 통보대로 순순히 게시물을 삭제하려니 기준이 너무나도 모호하고 절차가 비민주적이다. 아니, 이것은 검열에 가깝다. 당연히 위협에 맞서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네티즌의 의견을 빙자한 선거운동도 보호받아야 할 표현물일까? 한편으로는 수사상 필요하니 IP주소를 제공하라는 수사기관의 요구도 늘고 있다.

모든 정치적 표현은 선거운동?

선거법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뤄지도록 돕고 부정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따라서 선거법에서도 선거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 개진이나 일반적인 정치적 지지/반대 의사의 표명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제58조)

제58조 (정의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1.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및 의사표시
2.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3.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4. 통상적인 정당활동

따라서 선관위가 어떤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구한다면 이는 선관위가 해당 게시물을 ‘선거운동’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PC통신과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게시판에 올린 글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터넷 게시물이 선거운동으로 간주되는 상황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에 선거법의 예외를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비로소 터진 정치적 말과 글에 선거법이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역사는 오랫동안 억압적인 정치 체제 하에서 지배 권력의 것이 아닌 정치적 표현이 금지되어 왔다. 민중의 표현을 위한 통로는 제한되어 있었다. 이땅의 민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목이 터져라 외치고 피흘리고 싸워야 겨우 지배 언론의 한귀퉁이에 실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선거 때가 되면 민중을 위한 약간의 정치 공간이 할당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인터넷은 정치의 권위를 해체했다. 인터넷이 널리 확산되면서 정치적 표현물이 급격히 늘었다. 이제 정치는 일상이 되어 누구나 게시판에서 정치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치의 연성화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가 생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터넷 게시판에 넘쳐나는 선거에 대한 의견들과 정치적 견해들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이다.

만일 선관위의 경향처럼 인터넷 게시물의 대부분이 선거운동으로 간주되어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일상적인 정치적 표현들은 위축될 것이다. 지배 권력은 정치를 논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는 것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경로로도 표현 수단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을 일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민중을 배제하는 정치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남한 내 모든 게시판을 밀착 감시하는 선관위의 행태는 가정이나 술집에서 정치적 표현이라면 무엇이든 엿듣고 연행해 가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이야말로 반민주주의가 아닌가?

더 뜨거운 정치적 표현의 장으로

게시판 운영자는 선관위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껏 선관위가 보내온 공문은 최소한의 절차도 갖추지 않은 것들이었다. 위축될 필요가 없다. 진보넷과 디지털 말 등은 선관위가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오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선관위에서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선거는 정치의 공간이다. 남한 사회운동 진영은 민중의 열망을 담아 선거 공간에 개입해 왔다. 규제되어야 하는 것은 민중의 표현이 아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어느모로 보아도 악의적인 선거운동의 경우에까지 표현의 자유가 적용될 수는 없다.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반민주주의적인 권력 행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게시판 운영자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적이고 공정한 운영 원칙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번 기회에 운영 원칙을 제정하자. 운영 원칙을 게시자들이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공지하고 함께 토론하자.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다른 이의 표현에는 관대할 필요가 없다는 파시즘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비로소 떳떳하게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다.

■ 운영자 여러분, 수사기관의 요구에는 뻣뻣하게

특히 선거철을 맞아 수사기관의 IP 요구가 늘고 있다. 요구 근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전기통신사업법과 지난 3월 새로 발효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원칙적으로 보아 IP 주소는 이용자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등 현행 법률에서는 운영자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다룰 때 프라이버시 보호의 원칙에 따라 비밀을 보장할 것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못하는 운영자는 처벌받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기통신사업법과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전기통신사업자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요구하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넘겨주어야 한다. 특히 최근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을 필요 없이 검사장의 요청만으로 통신자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나마의 검사장의 승인도 사후에 받을 수 있으며 ‘국가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단독으로 통신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이와 같은 수사기관의 요구에 불응한다고 하여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영자들은 수사기관들의 요구에, 특히 서면으로 간단히 이루어지는 협조 요청에는 최대한 뻣뻣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영장도 없이 이루어지는 IP 추적은 국가 권력이 국민에 대해 자행하는 감시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과 인격권, 신체의 자유, 직업수행의 자유, 주거의 자유와 불가침,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현재 통신비밀보호법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이 위헌심판을 제기하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통신비밀의 보호)

③전기통신사업자는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수사 또는 형의 집행,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의 필요에 의하여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또는 해지일자에 관한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받은 때에는 이에 응할 수 있다.
④제3항의 규정에 의한 통신자료제공의 요청은 요청사유, 해당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이하 "자료제공요청서"라 한다)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서면으로 요청할 수 없는 긴급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서면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요청할 수 있으며, 그 사유가 해소된 때에 지체없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의 절차)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수사 또는 형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전기통신사업자(이하 ‘전기통신사업자’라 한다)에게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할 수 있다.
② 정보수사기관의 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보수집이 필요한 경우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③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미리 서면 또는 이에 상당하는 방법으로 관할지방검찰청 검사장(검찰관 또는 군사법경찰관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관할 보통검찰부장을 말한다)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다만,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을 얻을 수 없는 긴급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을 요청한 후 지체없이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④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의 요청은 요청사유, 해당 가입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서면(이하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요청서’라 한다)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서면으로 요청할 수 없는 긴급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요청 후 지체없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200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