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지문날인표현의자유

[표현의자유-접근권/칼럼] 열린채널, 내 생각을 검열하지 말라!

By 2002/09/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열린채널, 내 생각을 검열하지 말라!

이마리오 (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연출 | leemario@korea.com )

◇편집자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지난 1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연출 : 이마리오)라는 제목의 작품을 KBS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인 ‘열린채널’에 편성신청하였습니다. 그러나 KBS는 7월 24일에 최종적으로 이에 대한 편성불가 결정을 하였습니다. △ 공무원의 음성이 등장하고 △ 박정희 생가 장면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지난 22일에 KBS의 편성불가 결정이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 등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한편 오는 9월중으로 행정소송도 제기할 예정입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연출자가 심정을 담은 글입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7,80년대 가요 LP판을 들어볼 기회가 종종 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를 위해 심수봉, 김정미, 조덕배 등등 지금은 이름이 잊혀진 가수들의 LP판을 틀어놓고 설명을 열심히 하는 착한 후배와 함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약간은 촌스러운 사운드지만, 지금의 CD로는 느끼지 못하는 다른 느낌(약간의 잡음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의 소리를 듣는게 LP판을 듣는 재미라는 후배의 설명을 들으면서 노래를 듣다가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깨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음반의 마지막에 들어있는 소위 ‘건전가요’라는 것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앨범 발표자는 ‘박정희’라는 후배의 엉뚱한 설명과 하나의 음반에 건전가요를 제외하면 나머지 노래들(원래의 주인들)은 건전하지 못한 가요냐는 이죽거림에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음반심의제도는 결국 정태춘씨의 지난한 투쟁으로 인해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최근 영화<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판정으로 인해 영화계가 시끄럽다. 제한상영판정이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하라는 이야기인데, 당장 제한상영관이 한곳도 없는 현실에서 이 결정은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고매하고 지적 능력이 아주 뛰어난 분들이 우매한 국민들이 위험에 빠질까 염려스러워 이러한 판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KBS 열린채널은 <에바다 투쟁 6년-해 아래 모든 이의 평등을 위하여>(감독 박종필)라는 작품의 편성불가 방침을 결정했다. 이유는 방송심의규정 11조, 즉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의 방송은 안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방송사들의 뉴스나 보도프로그램들도 방송되면 안된다. 당연히 공중파라는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당연하게 재판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농담이 딱 맞는 경우이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도 마찬가지이다. ‘제목이 과격해서 국민정서에 안좋다’ ‘박정희 생가 장면이 나오면 그것을 나쁜 의도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된다’ …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힌다. 언제부터 공중파 방송이 국민정서를 그렇게 염려를 했고 나쁜 의도를 가진 악의 무리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그리 걱정을 했는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들에 대한 보도는 마지못해 잠깐 보도하고 월드컵 4강신화 보도는 거의 모든 뉴스시간을 동원해 말하는 공중파 방송들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시청료 거부운동을 하자 전기요금 영수증에 포함시켜 강제로 시청료는 챙겨가는 KBS가 그나마 한달에 100분 방송하는 유일한 퍼블릭 엑세스 프로그램인 ‘열린채널’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런저런 근거규정을 들이대면서 편성하지 못하겠다는 발상은 자신들의 보스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매일경제 기자들이 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편성불가에 대해 현재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변호사는 승산이 있다고 한다. 아니 승산이 없다고 하더라도 싸울 건 싸워야 한다. 꼭 소송이 아니더라도 더 과격하고 더 나쁜 악의 무리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내용의 작품을 만들어 ‘열린채널’에 제출하여 계속 괴롭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괴롭힘을 당하기만 할건가?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것을 KBS에 가르쳐 주고 싶다.

2002-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