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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By 2002/09/0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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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경향신문 09월 02일자

"정부는 또 다른 형태의 인터넷 검열에 불과한 개정안의 입법 추진을 중단하고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 전반을 재편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기중

2002년 7월8일. 월드컵에 묻혀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통신품위법 위헌 판결에 견줄 수 있는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정보통신부장관의 ‘불온통신’ 단속 규정에 대해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불온통신’ 단속 규정이 위헌이라는 점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역사적인 결정’이라 할 수는 없다.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한 이유는 헌재가 인터넷을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라고 하면서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인터넷 규제의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불온통신’ 단속 규정을 ‘불법통신’ 단속 규정으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음란,명예훼손,국가보안법 위반의 전기통신 등에 대하여 정통부장관이 단속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법률인 듯하다. 하지만 위 개정안은 ‘불온통신’을 ‘불법통신’으로 모양만 바꾸었을 뿐 실질적인 검열체계라는 점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문제 투성이의 법률이다.
무엇이 ‘불온’인지, 또는 무엇이 ‘불법’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행정기관이 그 판단을 하게 되면, 자의적인 판단과 권한 남용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위헌 결정 이전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군대반대 사이트나 김인규 교사 홈페이지 폐쇄사건이라는 ‘황당한’ 사건을 유발한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며 표현 촉진적인 매체’인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다른 어떤 매체에 대한 규제보다도 완화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위헌 결정의 취지이다. 그런데 개정안은 인터넷에 대하여 출판물에 대한 정부 규제보다 훨씬 강한 규제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즉 출판물에 대한 규제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출판사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부인 반면, 개정안은 덜 규제적이어야 할 인터넷에 대해 여전히 출판 금지, 출판사 등록 취소 등의 강력한 조치를 직접 취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정부가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고 미래지향적이며 합리적인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을 수립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은 정부의 규제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에서, 규제의 강도가 클수록 헌법상의 권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나아가 인터넷에 국경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국제적인 동향에 민감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무척 많은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의 개편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국제적인 동향을 고려하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전망을 수립한 상태에서 개별적인 문제를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는 방식의 개편이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단순히 헌재의 위헌 결정에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 불과하고, 시스템 전반에 대한 검토는커녕 개편 논의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대한 개편 논의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또 다른 형태의 인터넷 검열에 불과한 개정안의 입법 추진을 중단하고 인터넷 내용 규제 시스템 전반을 재편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끝>

200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