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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네트의 대안 문화

By 2002/09/0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사이버문화연구소(http://www.cyberculture.re.kr/)에 사이버칼럼에 민경배소장님이 올리신 자료를 퍼왔습니다.

네트의 대안 문화 (월간 정보통신저널 9월호, 2002. 8)

1. 대안의 공간 인터넷

"산업세계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 우리는 희망의 새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자유보다 더 큰 권위는 없기에 우리는 정권 따위는 선출하지 않으며, 가지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구 규모의 사회적 공간을 우리를 강제하려는 학정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으로 세울 것임을 선언한다.
… 중략 …
우리 육체는 비록 너의 통치하에 있지만, 너의 통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가상공간에서의 우리 자신을 선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행성 위에서 펼쳐나갈 것이며 그 누구도 우리의 생각을 감금할 수 없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희망의 문명사회를 창조할 것이다. 이는 너희 정권들이 이전에 만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인간적이며 공명정대할 것이다!"

사이버 자유주의 운동의 대부이자 전자프런티어 재단(EFF ; The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창립자인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인터넷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의 선언처럼 인터넷은 늘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 꿈이란 현실세계의 모든 억압적 굴레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이상적인 신천지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발로우의 후예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면서 그들만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비록 가상의 세계일망정 인터넷은 이들이 발견한 기회의 땅이자 대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네트의 대안 문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2. 대안의 정체성

인터넷에 접속한 순간 우리는 조물주가 된다. 외모, 나이, 성별, 재산, 직업 등 현실세계에서 나를 규정하고 있던 모든 족쇄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채팅방을 기웃거리며 수많은 여성들에게 잇달아 쪽지를 날리던 카사노바가 금방 토론게시판으로 옮겨가서는 달변과 독설로 무장한 열혈 논객으로 변신할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리니지 게임에서 혈맹원을 이끌고 공성전을 지휘하던 카리스마도 한게임 테트리스에서는 졸지에 천덕꾸러기 평민으로 전락해버리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렇게 우리는 인터넷 안에서 늘 또 다른 자신을 경험한다.

인터넷에서는 컴퓨터 저 너머에 나와 마주 앉아있는 다른 사람조차도 나의 의지로 재가공할 수 있다. 은밀한 채팅을 나누고 있는 미지의 여인은 나의 머리 속에서 항상 김희선이나 고소영을 빼어 닮은 절세의 미인으로 그려지고는 한다. 온라인 게임 중에 나의 캐릭터를 무참하게 PK(Player Killing)한 상대 게이머는 한결같이 이보다 더 흉악할 수 없는 끔찍한 악당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이렇듯 인터넷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맘대로 창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조물주이다.

인터넷에서 내가 창조한 또 다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의외로 많다. 아이디(ID)나 대화명과 같은 텍스트는 가장 고전적인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다. 그리고 독특한 문체와 각종 이모티콘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텍스트를 통한 정체성의 표현은 분명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보다 더 풍성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아이디라는 텍스트를 벗고 시각적 매체인 아바타(Avata)라는 육체를 입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아바타를 통하여 현실의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창조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선다. 장동건과 배용준이라는 터무니없는 대화명으로 채팅방에 진출하던 무모함 대신 장동건의 패션이나 배용준의 헤어스타일로 잘 가꾸어진 아바타를 앞세워 의기양양하게 채팅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네티즌이다. 아바타는 자신의 외모 뿐 아니라 능력치까지도 대변해준다. 값비싼 명품들로 꾸며놓은 아바타는 그 주인공의 재력을 상징하며, 희귀한 아이템들로 무장한 게임 속 아바타는 가상의 세계 속에서 게이머의 힘과 지위를 말해준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아바타의 실제 주인 역시 진짜로 멋지고 능력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나 역시 아바타와는 다른 사람인 것을.

그렇다고 해서 아이디나 아바타로 창조되는 가상의 정체성이 부질없는 허상이거나 얄팍한 속임수 놀이일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스로가 창조한 아이디나 아바타는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고 또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성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던 부끄럼 많은 소년을 인기 넘치는 채팅방 킹카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상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왜소한 체구로 친구들 앞에 기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소년을 게임 속에서 용맹스러운 전사로 맹활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가상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현실의 자신보다도 가상 세계 속의 또 다른 자신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가상의 정체성을 통해서 현실세계에서 직면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극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가상의 정체성은 곧 대안의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3. 대안의 관계

인터넷은 人터넷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면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통로라는 의미이다. 더욱이 시공간적 경계를 뛰어넘는 인터넷의 확장성은 물리적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인간관계의 폭을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넓혀 놓았으며,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간의 자유로운 횡적 교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인터넷만이 갖는 고유한 속성을 매개로 한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존 현실세계에서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와는 구별되는 대안의 인간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현실세계에서 가장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대표되는 운명적인 연줄망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사회적 계약에 근거한 목적지향적이고 이해타산적인 2차적 인간 관계가 대두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인간관계는 각각의 사회발전 단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나름대로 지극히 순기능적이었다. 하지만 탈근대적인 패러다임에 의해 사회가 급격하게 재구성되고 있는 오늘날 기존의 인간관계는 새로운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곳곳에서 파열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운명적으로 형성된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줄망은 봉건적인 권력관계와 불합리한 패거리주의로 변질되어 갔다. 그리고 2차적 계약 관계 속에서 현대인들은 정서적 유대가 결여된 ‘군중 속의 고독감’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마침내 적자생존의 치열한 ‘정글의 법칙’이라는 험난한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기존의 낡은 인간관계가 그 시효를 만료한 시점에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인터넷을 매개로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취향, 공통의 가치, 그리고 공통의 지향점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의 인간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너 어느 학교 나왔니?"라고 묻기보다는 "너 어떤 음악 좋아하니?"라고 묻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네트의 인간관계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관계와 달리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또한 그것은 고정되고 경직된 오프라인적 인간 관계와 달리 그 형태와 경계 구분도 명확하지 않으며, 관심사가 바뀌거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부담없이 해체될 수도 있는 느슨하고 유연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장 인간적인 정서적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해관계와 목적하는 바를 가장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보다 진화된 인간관계가 인터넷 공간에서 출현한 것이다.

한편 네트의 인간관계는 인터넷 안에서만 머무르려 하지 않고 공간 경계를 뛰어넘어 현실세계의 영역으로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수많은 온라인 동호회들이 오프라인 정모와 번개를 통해 한층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한 달에 한번 얼굴보기도 힘든 동창들이 인터넷을 통해 일상적인 교류를 나누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 침투가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네트의 인간관계는 현실세계의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가졌던 고유한 기능마저 하나 둘씩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가고 있다. 오프라인 친구보다도 인터넷에서 만난 익명의 대상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껴서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급기야 출현한 사이버 부부와 사이버 패밀리의 충격으로 이제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라 할 수 있는 가족의 영역조차도 네트의 인간관계로부터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경고한다. 네트의 인간관계는 이처럼 빠른 속도로 그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4. 대안의 질서를 향하여

대안의 정체성, 대안의 관계를 넘어 이제 네트의 대안문화는 기존 사회질서와 제도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수준으로까지 이어진다. 딴지일보와 오마이뉴스로 대표되는 인터넷 대안언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대표 주자로 손꼽힌다. 새로운 언어로 쓰여지는 기사,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되는 뉴스, 그리고 참신하고 독창적인 보도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독자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인터넷 대안언론은 이미 기성 언론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대안적 질서의 모색은 교육 현장에서도 불고 있다. 온라인 대안학교가 그것이다. 기존 10여 곳에 흩어져 있던 인터넷 교육 사이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구성한 커뮤니티형 온라인 학교인 ‘즐거운 학교(www.njoyschool.co.kr)’ 같은 곳에는 현재 3만 명의 현직교사들과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여 대안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탈학교모임http://deschool.mine.to)’, ‘아이두(www.idoo.net)’, ‘아이노스쿨(www.inoschool.net)’ 등에서는 학교가 이상 절대적인 교육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운동 역시 인터넷 대안문화의 영향로부터 일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기관,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기업들로부터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고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안티 사이트에 모여든 네티즌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사회운동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임을 선언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거대 언론의 횡포를 비판하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반대하며, 교육현장의 폐해와 의료계의 비리를 고발하는 등 우리 사회에 만성화되어 있는 온갖 문제점들에 사사건건 안티의 칼날을 내민다. 안티 운동은 이제 인터넷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모델로 정착했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에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실험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성질서의 전복, 고정관념의 파괴, 그리고 주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이 바로 네트의 대안 문화를 말해주는 키워드이다. 물론 때로는 그것들이 너무나 낯설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항상 이러한 프론티어 정신을 통해 발전해 오지 않았던가? 네트의 대안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다. 바로 이들이 21세기의 프론티어들이다.

200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