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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인터넷 내용규제, 다른 나라는 어떻게?

By 2002/08/3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인터넷내용규제, 다른나라는 어떻게?
* 아래 글은 copyleft입니다. 필자와 출처만 정확히 게재하시면 어느 곳에나 게재하실 수 있습니다.(많이 많이 실어주세요 ^_^)

인터넷 내용규제, 다른 나라는 어떻게?
–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필요없다 –

<편집자주>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매체보다 탈중심적이며 탈규제적이라는 인터넷. 인터넷을 둘러싼 논쟁 가운데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주제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인터넷내용등급제는 픽스(PICS)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내용분류시스템이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2000년 정부가 직접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대상으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반대자들은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핵심 문제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도 역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존재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같은 국가 차원의 인터넷 내용규제 기구가 어째서 필요한 것일까? <네트워커>는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다른 나라의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을 검토하면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넘어서는 이 시대의 상상력을 북돋아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의 필자 김유승님은 현재 런던대학에서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R3Net의 회원이다.

<연재 순서>
1. 연재를 시작하며 – 유럽
2. 미국
3. 호주
4. 연재를 마치며
* 지나간 사례는 인터넷검열반대공대위 홈페이지 http://nocensor.org 를
참고

○ 유럽

국가 규제가 아닌 자율 규제를 모색하는 유럽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논의가 많이 발달되어 있는 유럽의 경우, 국가의 역할은 ‘불법정보’를 규제하는 최소한도로 그친다. ‘자율규제’를 모토로 하는 유럽의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은 90년대 중반부터 모색되었다.
1995년과 1996년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인터넷상의 내용에 대한 자율규제단체가 조직되고 이들 단체들이 인터넷상에서의 불법정보-특히 아동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신고센터인 ‘핫라인'(Hotline)을 운영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형태의 단체들이 속속 생겨난다. 이들 대부분의 단체들은 인적구성이나 재정적인 면에서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고, 다만 불법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사법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영국의 인터넷내용 자율규제단체인 인터넷감시재단(The Internet Watch Foundation, IWF. http://www.iwf.org.uk)이다.
1996년 8월, 영국의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들은 경찰로부터 불법 포르노그라피 혐의를 받고 있는 133개의 뉴스그룹의 명단이 적혀 있는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는 어떠한 법적 제재도 언급하고 있지 않았지만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들은 스스로를 법적분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IWF이다. IWF는 출범과 함께 "알쓰리 안전네트워크(R3 Safety-Net)"의 구상을 발표하는데 여기서의 세가지 원칙(Responsibility, Rating, Reporting)은 이후 유럽의 내용규제정책의 기초가 된다.
유럽식 인터넷내용규제정책은 인터넷산업체의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정부가 참여하는 공동규제(Co-operative Regulation)라 할 수 있다. 1999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인터넷내용회담(Internet Content Summit)에서 재확인된 이 규제 모델은 인터넷산업, 내용등급시스템, 핫라인, 정부, 그리고 사용자라는 다섯 가지의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인터넷 산업체는 내용등급시스템과 핫라인을 지원 운영하고, 정부는 민간 핫라인과 연계하여 불법정보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용자 스스로의 자율성을 높이는 미디어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공동규제모델은 유럽연합에서도 받아들여져, 1999년 유럽연합은 인터넷 기업체들의 자율규제와 규약제정, 민간 핫라인 연합체의 결성, 유럽 인들을 위한 내용차단선별시스템의 개발을 목표로 하는 "인터넷 이용을 증진하기 위한 행동 계획(Action Plan for Promoting Use of the Internet)"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럽연합의 강력한 후원과 영국 IWF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같은 해 유럽 각국의 인터넷 핫라인의 연합체인 INHOPE(The Internet Hotline Providers in Europe)와 국제적 인터넷내용등급시스템을 지향하는 ICRA(The Internet Content Rating Association)가 출범하게 된다.주1)
{{주1)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ICRA는 PICS기반의 내용등급시스템을 최초로 대중화시켰던 미국의 RSACi의 모든 자산을 인수하고, 미국식 가치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RSACi 시스템 대신할 다중주체등급시스템이라 불리는 새로운 내용등급시스템을 개발, 2001년 12월 첫선을 보였고, 지난 3월에는 이 등급시스템을 구현한 소프트웨어를 발표했다.
}}

유럽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정통윤의 등급제와 다른 점

IWF를 비롯한 유럽의 자율규제단체들은 언뜻 우리의 정통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유럽의 자율규제 단체들과 정통윤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유럽의 인터넷내용등급제는 한국의 인터넷내용규제정책과 근본적인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첫째, 인터넷내용규제정책에서의 정부의 역할이 다르다. 다중적, 분산적 매체인 인터넷에서 과도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옮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효율성의 면에서 많은 의문을 낳고 있다. 특히 내용규제에서의 정부의 과도한 권한은 국가검열의 문제를 낳고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따라서 유럽의 인터넷내용규제정책에서 정부는 그 역할을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나날이 그 몸집을 불려나가는 정통윤을 보면 우리 정부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정통윤이 스스로를 민간기구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모든 재정을 정부가 지원하고 정부가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는 조직을 어떻게 민간기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둘째, 내용등급시스템의 자율성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유럽의 각국에서 인터넷상에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으로서 내용등급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느 정부도 내용등급시스템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으며, 더구나 정부가 스스로 내용등급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ICRA가 그러하듯 인터넷내용등급시스템은 정보제공자나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전체 인터넷상의 사이트 수에 비례한 등급을 단 사이트의 수가 임계치를 넘어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등급시스템의 속성상 특정 사이트들에만 등급을 강제한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제 구실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에 대해 형사처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정부규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무엇이 불법, 유해정보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유럽의 인터넷내용규제단체들이 각국의 법에 근거하여 불법정보를 규제하고, 유해하다고 판단되지만 합법적인 정보들은 사용자들의 자율적 선택에 맡기고 있다. 정보의 불법, 유해성에 관한 판단을 규제단체 스스로 재단하는 일은 결코 없다. 반면 정통윤은 해마다 수만 건에 달하는 청소년유해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고 발표를 하는데, 어떠한 기술과 기준으로 유해성을 판단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미국

시장기능에 무게를 싣는 미국의 인터넷내용규제

인터넷 규제정책에서 정부와 산업체, 민간기구가 협동하는 유럽의 공동규제모델과 달리, 시장기능에 좀더 무게를 싣고 있는 미국에서는 상업적 소프트웨어의 활용이 중요시되고 있다.
유럽의 내용등급제가 유럽연합의 강력한 지원 아래 공공적 성격의 제도로 개발되고 단일한 표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시장에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내용등급서비스가 공존하면서 분산된 상업적 내용등급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부모, 교사들은 인터넷의 부적절한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기술적 해법으로 소위 ‘1세대 필터링’이라 불리는 차단-허용목록 기반의 필터링 소프트웨어(filtering software)를 선택하여 왔다. 지지자들은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괄목할만큼 향상되었으며, 시장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인기도 놀랄 정도로 성장하였다. 미국의 조사기관인 포레스트 앤 설리번(Frost & Sullivan)에 의하면, 2000년 미국의 필터링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1억1천9백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2007년에는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필터링 소프트웨어 시장의 놀라운 성장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통신품위법(CDA)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내용규제입법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가 있다. 1995년 2월 민주당 제임스 엑슨(James Exon) 상원의원에 의해 제안되어, 인터넷의 저속한(Indecent) 표현을 형사처벌(징역2년 혹은 10만 달러의 벌금)로 규제하려 했던 이 법은, 비록 대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세계 최초의 인터넷내용규제법을 둘러싼 논쟁으로써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일깨웠다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 법원이 인터넷의 인쇄매체적 성격을 인정, 인쇄매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터넷에서 보장하였다는 것은 크나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터넷의 법적규제에 대한 여러 난점이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을 찾게 되었고, 이는 소프트웨어 출판업자들이 다양한 필터링 소프트웨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도록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1세대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문제점

그러나 미국시민권연합(ACLU)과 전자개척자재단(EFF)을 비롯한 반대자들은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근본적인 기술적 결함으로 인하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업적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인터넷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논쟁적인 소수의 의견을 인터넷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1세대 상업적 필터링 소프트웨어는 이용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각 소프트웨어의 차단목록 데이터베이스가 지적재산권이 있는 사적 자산으로서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는 소프트웨어가 어떠한 내용을 차단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일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로 하여금 차단목록의 일부를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지만 매우 제한적이어서 차단목록은 여전히 비밀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실효성 면에서도 이들 소프트웨어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 페이지가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베이스의 작성을 위해 인공지능기반의 로봇을 사용하고 있는데, 인간언어의 복잡성과 함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에 인터넷의 내용분류를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계에 의해 작성된 데이터베이스를 전문가가 이차적으로 확인작업을 하더라도 하루 수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심의, 검증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오류와 실수를 동반한다.
Consumer.org, Censorware, Peacefire와 같은 시민단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필터링 소프트웨어에는 차단해야 할 것을 차단하지 못하는 언더 블록킹(Under Blocking)과 차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터무니없이 차단하는 오버 블록킹(Over Blocking)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등급데이타베이스도 이런한 문제점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한 실정인데 비전문가의 검증작업이 이러한 문제를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세대 필터링 기술과 등급제 시스템을 한 상업적 프로그램 안에서 구현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흐름을 볼 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등급 데이터베이스와 기술 지원 아래 개발 중이라는 소프트웨어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어린이 인터넷 보호법 (CIPA)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0년 미국 의회는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 필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를 위한 인터넷 보호법(Children’s Internet Protection Act: CIPA)"을 제정했다. 1999년 1월 네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에 의해 제안되고 이듬해 12월 노동, 건강, 인적 서비스 세출예산안의 일부로 입법된 이 법은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과 학교의 인터넷접속 컴퓨터에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연방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법은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었던 이전의 두 인터넷 규제법안인 CDA나 COPA(Children’s Online Protection Act)와 달리 형사처벌 없이 행정적인 규제만을 규정하고 있지만, 연방보조금에 운영비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공공도서관과 학교에는 형사처벌 못지않은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도서관협회(ALA)와 ACLU는 즉각 이법이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록 하위법원의 결정이지만, 이미 1998년 버지니아의 라우던 카운티 공공 도서관의 사례에서 공공도서관의 필터링 프로그램 설치의 위법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CIPA의 미래도 그리 밝지는 않다. 필터링 소프트웨어들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기술적 결함과, 사서와 이용자들에 대한 권리침해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호주

방송매체로서 인터넷을 규제하는 호주

김유승 (yskim@btinternet.com)

인터넷은 어떠한 매체인가? 인터넷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이 논쟁은 일견 해묵어 보이지만, 그 매체적 성격의 규정에 따라 규제의 접근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이 통신품위법(CDA) 논쟁을 통해 인터넷이 "수용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침투하는 방송매체"와는 다른 성격의 매체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준 반면, 호주에서는 호주방송위원회(the Australian Broadcasting Authority, 이하 ABA)와 영상문헌분류사무소(the Office of Film and Literature Classification, 이하 OFLC)에서 인터넷상의 내용을 직접 규제하고 있다.
1999년 6월 호주 연방정부는 ‘방송서비스 수정법안’을 도입, 2000년 1월부터 시행하여왔다. 이 법은 불만처리시스템의 설립, 인터넷내용의 분류, ABA의 강화, 그리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의 인터넷서비스업자 보호를 핵심 요소로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ABA는 일반시민들이 불법적인 인터넷내용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불법’은 호주의 법에 명시되어 있는 불법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불온’하다거나 ‘유해’하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신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신고된 불법 인터넷내용이 호주 국내의 서버에 있다면 ABA는 해당 서버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에 내용 삭제를 지시한다. 만약 해당 내용이 해외의 서버에 있다면 ABA는 인터넷산업협회규약에 의해 승인된 차단소프트웨어 제공자들에게 이를 알린다.주2)
{{주2) 1999년 9월 호주 인터넷산업협회는 ‘방송서비스 수정법’의 발맞춰 인터넷내용차단프로그램의 의무적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실천규약을 발표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인터넷산업협회가 승인하는 차단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의 목록을 발표했다. }}
한편 OFLC는 국가분류지침(National Classification Guidelines)에 따라 인터넷내용을 분류하는데 여기서 RC(Refused Classification)나 X등급을 받은 내용은 인터넷상에서 금지된다. OFLC에 따르면 범죄, 폭력, 마약사용, 어린이 포르노그라피, 수간, 성행위의 사실적 묘사, 과도한 폭력과 성폭력적 내용 등이 RC등급에 해당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규제 움직임들은 호주전자개척자재단(Electronic Frontiers Australia, EFA)을 비롯한 많은 시민 단체들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에 부딪혔다. 시민 단체들은 이러한 규제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수정법안이 검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첫째, 호주 연방정부는 인터넷내용을 일반출판물보다 훨씬 엄격한 영상매체를 위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출판매체를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정보들이 인터넷상에서는 금지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현저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의 경우 절대량의 인터넷내용이 해외의 서버에 있기 때문에, 호주 국내에 한정되는 ABA의 규제능력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ABA의 자체 보고서주3)에서도 확인되는데, 2000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ABA가 접수한 139건의 불만신고 중에서 단 6건만이 호주 국내의 서버에 있었다.
{{주3) Six-Months Report on Co-Regulatory Scheme for Internet Content Regulation July to December 2000 }}
셋째, 인터넷산업협회와 ABA가 승인한 인터넷내용차단프로그램의 신뢰성과 효율성이 의심스럽다. 미국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위 1세대 인터넷내용차단 상업소프트웨어들은 표현의 자유와 사용자의 자율성을 현저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공공기관이 이들 소프트웨어를 승인한다는 것은 그들의 치명적 결함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ABA

한국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성공적인 인터넷내용규제 사례로서 호주의 예를 들어왔다.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한 공동규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유럽이나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ABA라는 공공기관이 인터넷내용규제를 직접 주도하는 호주의 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서 반갑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호주 연방정부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비효율적인 국가주도의 인터넷규제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며, 호주의 각 주정부들에서도 인터넷 규제 입법 움직임들이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6월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의회는 인터넷검열법안(The Classification
Enforcement Amendment Bill 2001)의 추진을 중지할 것을 주정부에 건의하였고, 7월에는 정부기관의 이메일 검열을 가능케 만드는 연방정부의 통신차단법 수정안(Telecommunications Interception Legislation Amendment Bill 2002)이 상원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은 다른 주정부에도 파급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뉴사우스웨일스와 비슷한 인터넷검열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던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도 더 이상 호주를 성공한 사례로 선전할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인터넷내용규제가 왜 실패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사례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200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