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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체험, 전자정부에 딴지걸다

By 2003/10/05 10월 29th, 2016 No Comments

표지이야기

장여경

전자감시사회, 어디까지 왔나

내 정보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흘러다니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평범한 한국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이 되었다. 한 통의 스팸 메일은 어디선가 나의 이메일 주소과 이름을 수집했고, 보다 지능적인 스팸 메일은 여기에 더해 나의 성별, 연령, 거주지, 취향에 대해 알고 있다. 기업은 속속들이 파악한 소비자의 신상정보를 맞춤 서비스로 연결해 편리함을 향상시켰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나의 통제권 밖에서 일어난다면 두려운 일이다. 공포는 이미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누어 졌다. 낙관론자들은 정보 사회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체제로 보면서 무한한 기대를 걸었지만 국내외에서 ‘벤처 경제’와 ‘신경제’의 부침을 겪으면서 낙관적 정보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비관론자들의 주장은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로 여겨져 왔지만, 어느새 전자감시사회라는 형태로 현실화하고 있다.
전자감시사회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빅브라더’와 ‘판옵티콘’이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발표한 음울한 미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이다. 모든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로 감시하는 독재자 빅브라더는 전자감시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OO쪽 참조) ‘판옵티콘’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소개한 제레미 벤담의 원형감옥이다. 벤담은 간수가 한 눈에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감옥을 설계했는데 간수가 있는 중앙은 어둡게 하고 죄수가 있는 바깥은 항상 밝아서 죄수는 간수가 실제 자리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결국 죄수는 언제나 간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감옥의 규율을 체득할 수 밖에 없는데 푸코는 이 감옥을 규율 권력이 작동하는 근대 사회의 압축판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 이 비유는 전자 감시에 대한 상징으로 더 유명하다. 다만 사람의 시선이 전자 장비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셀수 없는 빅브라더

전자 감시는 판옵티콘의 감시 능력을 전 사회로 확장했다. 시선에는 한계가 있지만 컴퓨터를 통한 정보 수집은 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이기 때문이다. 개리 막스는 1988년에 발표한 <첩보 : 미국의 경찰 감시>라는 저서에서 컴퓨터가 감시를 일상화시키고 확장시켰으며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자 감시의 특성을 △ 거리·어두움·물리적 장벽을 극복한다 △ 시간의 제한을 극복한다 △ 누가 언제 감시하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 감시 대상의 협조 없이도 감시가 가능하다 △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노동집약적이기 보다 자본집약적이다 △ 탈집중화된 자기통제도 포함된다 △ 모든 사람은 완전히 무죄인 것이 밝혀질 때까지는 혐의가 있다 △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인 영역이 모두 감시 대상이다 △ 감시영역이 좀더 포괄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프라이버시 학자들은 이 논의를 좀더 발전시켰다. 오늘날의 감시는 빅브라더가 아니라 수많은 키드브라더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는 수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단일한 중앙 감시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감시자가 존재한다. 또 감시는 강압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은행강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길은 일단 혐의자로 CCTV에 찍히는 것이고 나쁜 글을 올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터넷 실명제에 협조해야 한다. 즉 한마디로 말해 전자감시사회는 데이터베이스로 평가되는 사회이다. 데이터베이스에 내가 어떤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느지 아니면 포함되어 있지 않는지에 따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받아들일지가 결정된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의 결과로 고용이 거절되는 등 차별과 배제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근대 국가 이후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데이터베이스가 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 감시 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감시도 심각한 상태이다. 데이빗 라이언은 편리한 ‘맞춤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안 보이는 곳에서 이용자의 성명 뿐 아니라 취향, 이용 횟수와 패턴까지 모두 기록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다. 기업이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광고 회사나 기타 기관으로 넘겨지면서 감시가 확장된다.

정보인권의 등장

최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논란이 보여 주는 중대한 시사점은 공포를 맛본 국민이 자기 정보를 국가에 의탁하길 거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은 이 공포에 분명한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수백 명 단위에서 수십만 명 단위로 증가하였고 피해 규모도 수 억 원대로 늘었다. 이런 상황은 최근 개인 정보가 재산권적 의미를 갖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보다 중요한 소식은 감시 문제가 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 인권’이 등장했다. 정보화 시대에 새롭게 인권의 의미를 조망하고 그 의미를 확산시킬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특히 프라이버시권은 가장 중요한 정보 인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