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칼럼] 정보사회와 프라이버시 보호

By 2002/05/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사회와 프라이버시 보호

강수돌 ( 고려대 교수·노사관계학 | ksd@korea.ac.kr )

새 천년의 부푼 꿈은 ‘정보 사회’와 더불어 마치 새로운 유토피아를 열어줄 것처럼 보였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사회는 한 집 건너 컴퓨터가 한 대씩 있으며 인터넷 이용 인구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휴대전화 가입자가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정보화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음란·폭력·자살 사이트 창궐과 인터넷 중독 문제, 유전자 조작과 생명 복제, 그리고 전자 감시나 개인 정보 유출 등의 온갖 사회 문제를 압축해놓은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최근 서울지검은 직원의 e메일을 불법 감청한 뒤 감청한 내용을 근거로 그 직원을 해고한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의 이근재 부장을 구속하고 감사팀장 유모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된 이부장은 2001년 11월에 이 회사 소속의 직원이 회사에 불리한 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고 판단, 다른 직원들을 시켜 8차례에 걸쳐 그 직원의 e메일 등을 불법 열람케 하고 컴퓨터 본체와 하드디스크를 떼어 가는 등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한다.

이는 ‘회사가 지급한 컴퓨터라 할지라도 그 내용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도청하는 행위’가 명백한 불법임을 밝힌 것으로, 오늘날 증권사나 일반 사무실 등에서 거의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컴퓨터 감시가 이대로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특히 처음으로 e메일 불법 열람을 형사 처벌했기에 전자 감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개인 정보 보호 문제나 프라이버시권 문제, 그리고 작업장 감시 문제 등에 관해 문제 의식이 낮은 수준이며 법이나 제도적 보호 장치도 부실하거나 부분적이다. 예컨대 앞으로 정통부에서 휴대폰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위치정보서비스(GPS)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피해 방지를 위해 가칭 ‘위치정보기반에 관한 법률’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나 이렇게 사안별로만 접근하다 보면 항상 사후수습에만 급급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 감시 문제는 비단 사무직이나 관리직 노동자들에게만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수년 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ERP)’ 등 생산자동화 시스템은 생산직 노동자의 노동 효율 증대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감시 통제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런 생산자동화 시스템은 각각의 기계에 센서를 부착하여 노동자마다 휴식시간, 작업시간, 생산량, 생산속도, 불량률, 작업장 내 현재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므로 노동자의 자율성과 여유 시간이 심각히 축소된다. 이전에는 종료시간에 생산량을 체크했지만 이전과 달리 자동화시스템은 실시간 체크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잠시도 쉴 수 없다.

나아가 작업 이외의 대화들이나 노조와의 연계성 등이 직간접으로 체크되어 오용될 소지가 크다. 여러 기업들이 노조 설립이나 파업 직후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도 필요하며 법·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정보화를 비롯한 과학기술 전체가 인간적 노동과 행복한 삶의 구현에 기여하게 해야 한다.

이미 북미나 호주, 유럽 사회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 프라이버시 보호와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한 사회운동이 활발한 편이며, 이를 기초로 법과 제도, 그리고 단체협약 등을 비교적 구체적인 수준까지 정비한 상태다. 예컨대 캐나다나 호주, 독일에서는 작업장에서 비디오나 카메라, 전화나 통신 등을 통한 개인 정보의 수집과 활용 등이 프라이버시와 노동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영국에서도 작업장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사무실 직원들의 e메일 감시나 인터넷 이용 감시를 금지하는 법률안이 곧 통과된다. 또 미국에서는 현재 42개 주가 심지어 건강보험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21개주는 고용에서의 유전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시민권연맹(ACLU)은 이와 관련, 연방 차원에서의 통합적 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도 프라이버시에 관한 개념 정립, 그리고 전자 감시 문제와 노동과정의 정보화 문제, 특히 인터넷이나 e메일, 몰래카메라 등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노동권 범주에 포함시키는 문제 등을 보다 많이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사한 위상을 갖는 가칭 ‘전자감시보호위원회’구성을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올바로 다루어야 하며, 통신비밀보호법보다 훨씬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입법을 통하여 ‘정보 사회’를 민주적 방향으로 재구성해나가야 한다.

2002-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