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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우리나라에서의 적용가능성 (황성기)

By 2002/05/16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 출처 : [법과사회](법과사회이론학회) 제19호(2000.11.)
* 각주는 첨부된 한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우리나라에서의 적용가능성

황성기(법학박사)

Ⅰ. 들어가는 말
요즘 정보통신부가 기존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개정법률안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을 통해 도입하고자 하는 소위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와 관련하여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청소년보호라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진보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정부에 의한 인터넷의 검열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온라인시위 등을 통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소위 ‘인터넷 내용등급제’ 중에서 자율등급시스템을 제도화한 것으로서, 쉽게 이야기하면 인터넷상의 각종 컨텐츠들에 대해 정보제공자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판정 및 표시하여,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해서는 내용선별소프트웨어를 통해 부모나 교사의 선택에 따라서 청소년의 접근을 통제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스템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정부의 주장대로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청소년보호라는 공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단체들의 주장대로 정부에 의한 인터넷의 검열에 다름 아닌가라는 매우 기본적인 의문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러한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면서, 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내용 및 문제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이 글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고자 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의 한 종류로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매체에 대한 내용적 규제의 기본적 요소들에 대한 선이해(先理解)가 필요하다. 따라서 제Ⅱ장에서는 매체에 대한 내용적 규제의 기본요소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제Ⅲ장에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구체적 유형 및 내용과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제Ⅳ장에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기본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정보통신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구체적 내용 및 문제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분석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기본이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의 개발시 수행되어야 할 법의 역할 내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모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Ⅱ. 매체에 대한 내용적 규제의 세 가지 기본요소
일반적으로 매체(media)를 통해서 유통되는 정보의 내용과 관련된 내용적 규제(content regulation)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들 세 가지 기본요소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제대로 내려질 것이다. 아무튼 내용적 규제의 세 가지 기본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정보내용의 수준에 대한 평가
‘정보내용의 수준에 대한 평가’라는 요소는 정보의 내용에 대한 ‘규범적 평가’, ‘주관적 평가’ 및 ‘객관적 기술적(記述的) 평가’로 구분될 수 있다. 예컨대 성적(性的) 취향의 내용의 정보를 의미하는 성표현물(pornography)과 관련하여, 규범적 평가를 의미하는 개념은 바로 ‘음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표현물 중 일정한 정도의 수준에 이르는 정보는 음란물로 판정하여 국가가 형사적 제재를 가하는 등 제작 및 유통을 금지하게 된다.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도 규범적 평가에 해당하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 고시된 정보나 매체물에 대해서는 청소년보호법상 각종 의무(표시의무, 포장의무, 구분 및 격리의무 등)가 적용되고, 이러한 각종 의무를 위반하거나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영리의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배포 등을 한 경우에는 형사적 제재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판정이 국가 주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청소년유해매체물 개념 자체가 이미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제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범적 평가는 그 기준이 매체마다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방송매체의 경우에는 인쇄매체의 경우보다 규제되는 기준이 엄격하다. 즉 인쇄매체에 대해서는 ‘음란한’ 내용만 규제되지만, 방송매체의 경우에는 ‘저속한’ 내용도 규제된다. 이것은 결국 매체의 특성에 따라서 규범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규범적 평가와 달리 주관적 평가는 정보의 내용에 대한 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른 평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관적 평가는 제도적 측면에서는 규범적 평가에 비해 중요시되지 않는다. 예컨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음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법부에 의해 ‘보통인의 성적 도의관념’에 따라 음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 평가가 제도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동이나 청소년의 보호와 관련한 부모나 보호자의 주관적 평가이다. 예컨대 부모나 보호자가 판단하기에 자신이 보호하는 자녀의 신체적 정신적 성숙성이 다른 아동이나 청소년에 비해 높다고 판단하여,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표현물을 자신의 자녀에게 제공한 경우에는 법적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규범적 평가 및 주관적 평가와 달리 객관적 기술적 평가는 정보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 기술적 분석을 의미한다. 즉 성표현물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의 노출이 존재하는가", "여성의 젖가슴이 노출되는가", "성기나 체모가 노출되는가", "성행위에 관한 정보에 구강섹스나 항문섹스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는가"에 대한 분석 등 성표현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객관적 기술적 분석에 그친다.
필자가 정보내용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위와 같이 ‘규범적 평가’, ‘주관적 평가’ 및 ‘객관적 기술적 평가’로 구분하고자 하는 이유는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첫째, 규범적 평가는 뒤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범위를 결정하게 된다. 예컨대 불법정보로서 음란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바로 규범적 평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규범적 평가는 일반적으로 입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또한 최종적인 판단은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둘째, 주관적 평가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핵심요소가 되는데, 왜냐하면 인터넷상에서의 정보이용자는 정보의 내용에 대한 통제능력이 여타의 매체보다 강화되어 있다는 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터넷상의 정보내용에 대한 통제방법은 기존의 규범적 접근방법에서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에 따른 주관적 접근방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객관적 기술적 평가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규범적 평가 및 주관적 평가의 판단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인터넷 내용등급제 중 자율등급시스템(self-rating system)에 있어서 구체적인 ‘등급기준’으로서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적 기술적 평가의 결과는 기존의 규범적 평가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음란’개념이 갖는 추상성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주장되는 ‘소프트-코어 포르노그라피’와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개념의 이분론이 바로 그것이다.

2. 성인/청소년의 차별적 접근통제
‘성인/청소년의 차별적 접근통제’라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성인에게 허용되는 정보와 청소년에게 허용되는 정보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성표현물과 관련하여 소위 ‘음란성의 이중기준’ 혹은 ‘가변적 음란성’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이다. 즉 성인에게 있어서의 음란성과 청소년에게 있어서의 음란성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정보이더라도 성인에게는 허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되는 정보가 청소년에게는 음란할 수 있어도, 성인에게는 음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성인의 접근을 통제해서는 안된다. 결국 이 경우에는 성인/청소년의 차별적 접근통제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성인의 접근은 허용하면서 청소년의 접근은 통제할 것인가라고 하는 매우 구체적인 통제수단 내지 통제방법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그동안 매체의 내용적 규제에 있어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러한 차별적 접근통제방법으로는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청소년보호법상의 각종 의무 예컨대 표시의무, 포장의무, 구분 및 격리의무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성인/청소년의 차별적 접근통제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향에서 발생한다.
첫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청소년보호법상의 각종 의무가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함으로 인해, 새로운 접근통제방법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즉 인터넷상의 컨텐츠에 대해서는 표시의무는 몰라도, 포장의무나 구분 및 격리의무가 사실상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장의무, 구분 및 격리의무는 기본적으로 유형의 물체를 전제로 하는 매체 즉 인쇄매체를 전제로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청소년보호법이 예정하고 있는 접근통제방법 이외의 새로운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청소년보호법이 예정하고 접근통제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통제방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 내용등급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상황이 발생함으로 인해 새로운 성인/청소년의 차별적 접근통제방법의 개발이 필요한 바,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이러한 새로운 방법의 개발에 있어서 평가척도가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청소년의 접근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성인의 접근을 과도하게 통제해서는 안된다는 표현의 자유의 기본원리라는 점이다. 즉 당해 접근통제방법이 청소년의 접근통제에 있어서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안되지만, 또한 청소년의 접근통제를 이유로 성인의 접근을 과도하게 통제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비유적인 표현을 빌면 "초가삼간을 불태우지 않고서도 빈대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3. 규제시스템의 운영주체
‘규제시스템의 운영주체’라는 요소는 내용규제시스템의 운영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매체에 있어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내용규제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다만 사전심의를 통한 규제냐 사후심의를 통한 규제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국가 주도의 내용규제시스템은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아, 헌법적 정당성이라는 관점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심판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제도가 존속되고 있기도 하다. 바로 대표적인 예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가 규정하고 있는 소위 ‘불온통신’에 대한 정보통신부장관의 취급거부 정지 제한명령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자율규제시스템이 전혀 부재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 의한 규제는 순수한 의미의 자율규제이다. 왜냐하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법정기구도 아닌 신문사들의 출연에 의한 순수한 자율기구로서 신문이 게재하는 기사나 광고에 대한 심의와 제재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가 실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동안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내용규제시스템이 국가에 의해 주도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규범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나 현실적인 실효성의 관점에서, 내용규제시스템의 운영주체가 정부영역에서 민간영역으로 전환될 것이 요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인터넷에 있어서의 자율규제를 주장하는 이론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기본적으로 자율규제를 주장하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의 무정부주의를 주장하지 않는 한, 인터넷상의 내용규제시스템에 있어서 정부영역의 역할은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컨대 불법정보의 경우에는 여전히 국가의 규제권한이 발동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의 경우에 국가의 개입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 규범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나 현실적인 실효성의 관점에서 바람직한가라는 점이다. 뒤에서 설명할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구체적인 유형들을 살펴보면, 바로 이러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Ⅲ.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유형과 구체적 내용

1.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개념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internet rating system)’라는 용어의 개념은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내용에 대하여 누드, 성행위, 폭력, 언어 등의 일정한 범주별로 그 등급을 매기는 하나의 기술적 체계"로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인터넷 내용규제를 위한 여러 가지 방식들 중에서 기술적(技術的) 규제이자 자율적 규제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적 규제의 등장은 이용자의 정보통제능력을 강화시키는 기술의 발전을 그 배경으로 한다. 즉 이용자의 정보통제능력을 강화시키는 기술(user empowerment technologies)은 청소년이 온라인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이용자나 부모의 통제능력을 강화시키는 기술로서, 불건전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의 컨텐츠에 대한 정부검열의 대안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술적 규제에는 널리 알려진 ‘차단목록에 의한 차단방식(black list blocking)’과 ‘허용목록에 의한 차단방식(white list blocking)’이 있는데, 이들 방식에서는 차단목록이나 허용목록을 제공하게 되는 소프트웨어개발자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반면에,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정보마다 등급을 매겨 그 등급에 따라 접속 가능하게 만드는 내용등급에 의한 선별방법(rating)을 의미하기 때문에, 차단목록에 의한 차단방식이나 허용목록에 의한 차단방식과는 달리 ‘중립적 방식’이라 일컬어진다.

2.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기본전제

(1)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구분
여기서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위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구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보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보의 유형을 구분하면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불법정보(illegal content)’란 법률에 의하여 민 형사책임을 지는 정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법정보는 기본적으로 ‘금지’의 대상이 된다. 즉 이러한 불법정보는 제작뿐만 아니라 유통까지도 금지되어,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사벌이 가해지고, 민사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법제도를 염두에 둔다고 할 때, 이러한 불법정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음란죄(형법 제243조 및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309조),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 내지 공직선거후보자비방죄(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82조의 3, 제250조, 제251조), 찬양 고무죄(국가보안법 제7조) 등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내용의 정보들이라고 할 것이다.
반면 ‘청소년유해정보(legal but harmful content)’란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지는 않지만, 청소년에게 유통시키는 경우에만 법적 제재가 가해지는 내용의 정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청소년유해정보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청소년유해정보는 제작이 가능하고, 기본적으로 유통도 가능하지만, 단지 청소년에 대한 유통만 금지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법제도를 염두에 둔다고 할 때, 이러한 청소년유해정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내용의 정보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개념은 현실적으로 인터넷상의 컨텐츠 중에서 불법정보와 적법하지만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정보를 각각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개념구분은 규제시스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 규제시스템의 개발과 관련하여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과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은 별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은 민간영역과 정부영역이 밀접한 연계를 형성하는 ‘핫라인(hot lines)’을 통해 유통을 억제하는 내용의 것이어야 하지만,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은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같이 이용자의 선택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청소년보호라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견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여기서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과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이 전적으로 독자적인 규제시스템은 아니다. 즉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과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은 상호 연계되어 있다. 아무튼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으로서 개발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2)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기술적 기초 – PICS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필수적인 요소는 등급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체계인데, 이러한 기술체계로서 개발된 것이 바로 PICS이다.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기술적 기초로서의 PICS(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란 등급이 매겨진 인터넷 컨텐츠(HTML문서)를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인식하고 선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술표준체계를 말한다. 즉 PICS는 웹사이트 운영자나 제3자(사이트 운영자나 사이트 이용자가 아닌)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이트에 등급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토콜을 의미한다. 따라서 PICS는 웹과 관련된 각종 프로토콜의 묶음으로서, 등급기준을 만들고 배포하며 해석하는 방식일 뿐, 등급판정시스템 그 자체는 아닌 셈이다. PICS에 기반한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중립적 방식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PICS에 기반한 등급판정시스템이 다양하게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인터넷상의 컨텐츠를 선별하기 위한 기술표준으로서의 PICS는 미국의 시민단체, 인터넷 및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참여한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orld Wide Web Consortium: W3C)이 개발하였으며, 웹상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에 대한 부모의 통제능력을 지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PICS의 개발은 동일한 기술적 방식이면서도 사이트의 주소를 이용한 차단방식이 갖는 단점을 해소하기 이루어진 것이다. 즉 차단목록에 의한 차단방식과 허용목록에 의한 차단방식은 해당 사이트의 모든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유해하지 않는 내용의 정보까지 차단할 위험이 있고, 하나의 PC를 여러 명이 사용할 때 연령별로 차단수준을 다르게 할 수 없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PICS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의미도 지니는 셈이다. 이것은 결국 동일한 기술적 방식에 의한 규제라고 할지라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덜 제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PICS는 바로 그러한 단적인 예에 해당하는 것이다.

3.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등장배경 및 정책적 명제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바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주된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즉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헌법의 보호범위 내에 있지만 청소년에게 유해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제한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터넷상에서의 불법/유해정보의 차단문제는 사실 유명한 미국의 연방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이하 CDA라 한다)과 관련된 논쟁에서부터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연방통신품위법을 위헌선언한 1996년의 ACLU v. Reno판결에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규제시스템으로서 인터넷상에서의 내용규제시스템으로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이다. 즉 ACLU v. Reno판결의 사실인정(Findings of Fact)은 CDA가 형사적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적 항변사유로서 규정하고 있던 신용카드확인, 성인확인코드, 등급표시제(tagging) 등의 수단이 경제적 이유라든지 기술적 이유를 근거로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불법/유해정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면서도, 실제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불법정보들을 차단하고 유해정보에 대해서는 청소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적으로 존재하게 되고, 그 결과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평가도 다시 이루어지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는 규제방식은 기존의 매체에서부터 적용되어 왔다. 그러면 왜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오늘날에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매체환경이 변했고, 매체환경이 변했으니 매체규제시스템도 변해야 한다"는 정책적 명제를 반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규제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매체환경이 변했고, 매체환경이 변했으니 매체규제시스템도 변해야 한다는 명제로부터, 우리는 인터넷과 관련하여 새로운 규제시스템의 개발에 있어서 적용되어야 할 준거들을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매체를 통해서 유통되는 정보내용에 대한 통제권이 정보제공자에서 정보수용자 내지 정보이용자로 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보내용에 대한 정보이용자의 편집통제권(editorial control)의 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편집통제권의 유무가 전통적인 매체규제시스템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들 중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규제시스템의 필요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둘째, 정보내용에 대한 기존의 규제방식이 법적 제도적 규제방식이었다면, 인터넷에 적용될 규제방식은 기술적 규제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매체들이 유형의 물체를 전제로 하는 것들이거나 국가의 특정한 관할권의 범위 내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가 쉬운 것들이었다면, 인터넷은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법적 제도적 규제방식으로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매체에 대한 기존의 국가 주도의 규제방식이 민간 자율의 규제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이용자의 정보통제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기술적 규제방식이 발전하여 보편화되는 경우에는, 불법정보나 유해정보의 유통에 대한 통제와 그에 대한 책임이 정부 혹은 규제기관으로부터 개인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운 규제방식은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이념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기존의 법적 제도적 규제방식 내지 국가 주도의 규제방식이라고 하는 기존의 매체규제방식이 오늘날의 매체환경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규제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기술적 규제방식 내지 민간 자율의 규제방식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덜 제한적인 수단이 채택되어야 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기본원리에 부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유형과 구체적 내용
일반적으로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유형은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등급판정의 주체에 따라 ‘자율등급시스템’과 ‘제3자 등급시스템’으로 크게 구분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두 가지 유형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일반적으로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 중 자율규제방식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자율등급시스템과 제3자 등급시스템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보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과의 비교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을 인터넷에 적용하는 국가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은 앞으로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의 개발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급시스템을 반대하는 입장’을 소개함으로써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대한 균형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1)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
국가가 주도하는 등급시스템은 인터넷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한 평가와 컨텐츠에 대한 접근통제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에는 등급시스템이 법에 의해 강제되기 마련이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등급시스템은 인터넷에서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모든 매체에 대해서 이러한 방식을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등급분류업무를 수행하는 각종 심의기관이 그 인적 구성은 주로 민간전문가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실상 입법을 통해서 그러한 심의 및 등급분류기능이 제도화되어 왔다는 점에서, 자율규제라기보다는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국가에 의한 타율규제보다는 자율규제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단적인 예가 싱가폴, 호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은, 첫째, 국가의 관할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매체인 인터넷에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점, 둘째, 국가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인터넷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해서 등급을 판정하고 차단한다는 것은 비용, 현실성, 기술적 한계 등의 문제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 셋째, 국가에 의한 검열의 우려가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1) 싱가폴
싱가폴은 전통적으로 차단목록에 의한 차단방식(blacklisting)을 채택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것은 차단목록을 행정기구인 싱가폴방송청(Singapore Broadcasting Authority: SBA)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국가가 전적으로 인터넷컨텐츠의 접근가능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싱가폴방송청은 1996년에 "등급허가에 관한 1996년의 싱가폴방송청 고시(Singapore Broadcasting Authority (Class Licence) Notification 1996)"를 발표하였는바, 이 고시에 따르면, 싱가폴방송청에 등록한 모든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s)와 일부 인터넷컨텐츠제공자(ICPs)는 사회질서 및 국가안보(public security and national defense), 종교 및 민족간의 조화(racial and religious harmony), 공중도덕(public morals) 등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거나 그러한 내용의 컨텐츠를 삭제할 의무를 지게 되고, 싱가폴에 거주하는 인터넷 이용자는 이러한 컨텐츠에 대한 접근이 전적으로 금지된다. 그리고 모든 인터넷서비스제공자와 불건전정보(undesirable content)를 제공한다고 정부가 판단한 일부 인터넷컨텐츠제공자는 위의 고시에 의해 방송청에 등록을 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인터넷상의 컨텐츠의 흐름에 국가가 지속적으로 간섭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호주
호주는 국가기관이 직접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등급을 판정하여 그 유통을 관리하고 있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내용규제시스템을 입법화한 법률이 바로 1992년의 방송서비스법에 대한 개정법률인 1999년의 온라인서비스법(Online Service Act)이다. 동법이 규율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을 살펴볼 때 주목할 점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금지컨텐츠(prohibited content)’와 ‘잠정적 금지컨텐츠(potential prohibited content)’라는 개념이다. 먼저 금지컨텐츠와 관련하여 호주에서 호스팅되는 인터넷 컨텐츠는 ① 컨텐츠가 등급분류위원회에 의해 RC(Refused Classification)등급이나 X등급으로 분류된 경우, 혹은 ② 컨텐츠가 등급분류위원회에 의해 R등급으로 분류되었지만, 컨텐츠에 대한 접근이 ‘접근통제시스템'(restricted access system)에 의한 통제를 받지 아니하는 경우에 금지컨텐츠가 된다. 그리고 호주 외에서 호스팅되는 인터넷 컨텐츠는 등급분류위원회에 의해서 RC나 X등급으로 분류된 경우에 금지컨텐츠가 된다. 한편 잠정적 금지컨텐츠는 등급분류위원회에 의해 등급분류를 받지 아니하였지만, 등급판정을 받는 경우에 RC등급이나 X등급으로 등급분류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인터넷 컨텐츠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호주방송청이 등급분류위원회에 등급분류를 요청하고, 동시에 당해 컨텐츠를 호스팅하는 기관 내지 업체에 등급분류시까지 호스팅거부 등의 잠정조치를 취할 것을 고지하여야 한다(interim take-down notice).
둘째, 온라인서비스법상의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고 있는 기관은 지상파방송, 디지털방송 등 방송매체뿐만 아니라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규제까지 담당하는 독립연방기관으로서 1992년의 방송서비스법에 의해 설립된 호주방송청(Australian Broadcasting Authority)과 출판물, 영화, 컴퓨터게임의 등급분류기관으로서 1995년의 등급분류법(Classification Act 1995)에 의해 설립된 등급분류위원회(Classification Board)라는 점이다. 따라서 호주가 채택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은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셋째, 온라인서비스법상의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은 기존의 출판물, 영화, 컴퓨터게임에 적용되었던 등급분류시스템을 인터넷 컨텐츠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출판물, 영화, 컴퓨터게임에 적용되었던 연령등급제를 인터넷 컨텐츠에 기본적으로 응용하면서, 핫라인의 구축이라든지 사업자의 윤리강령 등의 채택을 통한 독특한 규제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통일적 기준을 기반으로 한 자율등급시스템
이 시스템은 인터넷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해서 정보제공자 자신이 통일적이고도 객관적인 등급기준에 따라 등급을 표시하고, 인터넷이용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컨텐츠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에서 개발된 RSACi(Recreational Software Advisory Council on the Internet)등급시스템과 SafeSurfe등급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등급판정 및 등급표시가 전적으로 정보제공자 자신에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행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스템은 ‘자율등급(self-rating 혹은 self-labeling)’시스템이라 불린다. 즉 정보제공자 스스로가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가 등급기준에 따를 때 어느 범주의 어느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을 판단하여 등급표시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단은 국가도 제3자도 아닌 정보제공자 자신이 스스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등급표시도 정보제공자 자신이 스스로 한다는 점에서 자율등급시스템이라 불리는 것이다.
둘째, 등급판정과 등급표시를 위한 등급기준이 통일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일 것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즉 이 시스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구체적인 등급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스템에서 채택하고 있는 등급기준은 정보내용에 대한 객관적 기술적 평가를 전제로 하는 등급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RSACi의 등급기준이다. RSACi의 등급기준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이고 기술적 내용에 따라 등급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RSACi의 등급기준에서 level 0에서 level 4까지의 구분은 가치판단이 배제되어 있는 계량화된 기준을 의미한다. 다음의 도표는 RSACi의 등급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표 1> RSACi 등급기준

물론 위와 같은 현재의 RSACi의 등급기준이 완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신체노출, 성행위, 폭력, 언어 이외에 각 국의 사회 문화에 따라 도박, 마약, 흡연, 인종(민족)차별 등의 범주를 추가할 수 있으며, 그 단계도 더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 국에서 그 자체 고유의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주로 각 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등급기준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의 등급기준이 정보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 기술적 평가를 전제로 하는 등급기준이라는 점이다. 결국 통일적 기준을 기반으로 한 자율등급시스템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자율등급시스템의 구체적 적용이 ‘객관적 기술적 평가’와 ‘규범적 평가 혹은 주관적 평가’라는 2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즉 정보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따른 등급판정 및 등급표시를 의미하는 ‘객관적 기술적 평가’와 level 0에서 level 4까지의 구분 중에서 어디까지를 청소년유해매체물 혹은 음란물로 볼 것인가라는 ‘규범적 평가’ 및 부모의 입장에서 어디까지를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주관적 평가’는 서로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주관적 평가는 부모의 가치관이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객관적 기술적 평가는 달라질 수 없게 된다.
한편 위와 같은 자율등급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등급미표시 정보'(unrated content)에 대한 처리문제이다. 사실 등급미표시 정보에 대해서는 소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인터넷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정보제공자가 등급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에는 등급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반면 정보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인터넷이용자의 대부분이 등급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등급표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급표시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등급미표시 정보에 대한 처리문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① 우선 등급판정과 등급표시를 정보제공자에게 입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뒤에서 설명하는 우리나라의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에서도 이러한 방안의 도입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입법적 의무화방안(mandatory self-rating)은 헌법적 관점에서 위헌의 가능성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② 기술적 관점에서 내용선별소프트웨어에 따라 완전히 차단하든지 아니면 전혀 차단하지 않는 경우를 예정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에서는 정보내용에 대한 자동분류기능의 발전에 따라서 어느 정도 보완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동분류기술이 갖는 한계 예컨대 정보가 제공되는 문맥(context)에 대한 고려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둘째, ‘등급오표시 정보'(mis-rated content)에 대한 처리문제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등급시스템을 개발한 시스템운영자와의 계약위반의 형태 혹은 시스템운영자에 의한 지속적인 통제의 형태와 같이 시스템운영자와 정보제공자간의 관계를 통해 처리하는 방식과 입법적 수단을 통해서 제재를 가하는 형태로 처리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3) 제3자 등급시스템
이 시스템은 인터넷상의 컨텐츠에 대해서 정보제공자가 아닌 그 외의 개인이나 단체인 제3자(third-party)가 등급을 판정하고 등급정보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등급서비스 중에서 인터넷이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하게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따라서 제3자 등급시스템은 사실상 시장원리에 가장 충실한 등급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3자 등급시스템은 자율등급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즉 독립적인 제3자에 의한 등급판정은 정보제공자에 의한 자율적인 등급판정 및 등급표시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자율등급에 있어서 부정확성이라든지 등급 오표시의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하지만 제3자 등급시스템도 등급판정기관인 제3자가 자신의 등급시스템이 잘 운용되도록 하기 위해 정보를 부정확하게 판정할 위험이 존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제3자에 의한 등급판정에 있어서는 정보제공자의 동의나 정보제공자에 대한 통지도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제공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가 어떻게 등급판정을 받았는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제3자 등급시스템은, 위에서 설명한 자율등급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 자율등급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보조적 장치로서 필요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4) 등급시스템을 반대하는 입장
이 입장은 인터넷상에서 어떠한 등급시스템도 적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으로서, 차단(blocking) 내지 내용선별(filtering)기술들이 인터넷상에 적용되는 것까지 반대한다. 이러한 입장은 주로 미국의 시민단체들이 취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단체로 미국의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를 들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ACLU는 CDA와 관련된 ACLU v. Reno소송과 Reno v. ACLU소송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시민단체로서, 지금 현재 CDAⅡ(일명 COPA: Child Online Protection Act)와 관련된 소송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단체가 인터넷상에서의 등급시스템에 반대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이 무미건조하고 균질화될(bland and homogenized) 것이라는 점이다. 즉 내용선별은 대중적이지 못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표현(unpopular and controversial speech)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제3자 등급시스템의 경우에는 제3자의 가치관이나 이익에 따라 주류적이고 상업적인 표현만 허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자율등급시스템에서도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등급표시의 부담은 비상업적 정보제공자에게는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용선별기술은 정부에 의한 검열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ACLU는 내용선별기술 및 등급시스템의 등장과 관련된 일련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PICS의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컨텐츠등급판정을 위한 통일된 방법이 제시된다. → ② 한 두 개의 등급시스템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서, 사실상 인터넷상에서의 표준이 된다. → ③ PICS와 시장지배적 등급시스템이 인터넷 소프트웨어의 자동적 초기값(automatic default)으로 설정되게 된다. → ④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표현들은 이러한 자동적 초기값의 설정으로 인해 효과적으로 차단된다. 즉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표현들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차단된다는 말이다. → ⑤ 검색엔진들(search engines)도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거나 부적절하게 표시된 사이트들이나 정보들은 검색결과로서 게시하지 않게 된다. → ⑥ 정부가 자율등급을 입법으로 강제하거나 부적절하게 등급을 표시하는 것을 형사벌로 처벌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ACLU는 정부에 의한 검열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Reno v. ACLU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인터넷은 인쇄매체만큼의 보호를 받는 매체라고 설시한 점을 강조하면서, 등급시스템은 인터넷을 인쇄매체가 아닌 방송매체와 유사한 매체로 파악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셋째, 자율등급시스템에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ACLU는 다음과 같이 자율등급시스템의 문제점을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① 자율등급시스템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표현들(controversial speech)을 봉쇄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자율등급시스템은 결코 중립적인 방식이 아니며, 일정한 내용의 표현들을 차단시키는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② 자율등급시스템은 번거롭고 다루기 힘들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즉 그 많은 양의 정보에 일일이 등급을 표시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의 문제제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현실적 경제적 부담은 결국 표현을 위축시키고, 등급표시를 포기하게 함으로써 접근을 차단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③ 자율등급시스템을 인터넷상에서의 실시간대화(chat)라든지 메일(mail), 뉴스그룹이나 메일링리스트에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점이다. ④ 자율등급시스템은 국가간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간의 장벽을 더 공고히 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나 민족간의 문화적 인식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⑤ 자율등급시스템은 정부에 의한 검열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자율등급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등급오표시(mis-rating)에 대한 법적 제재를 전제로 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정부의 검열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검열의 주된 대상도 주로 시민단체 내지 인권단체 그리고 동성애단체 등 사회에서 비주류적이고 논쟁을 유발하는 화자들일 것이다. ⑥ 자율등급시스템은 인터넷을 상업적 목적의 화자들(commercial speakers)에 의해 지배되는 균질화된(homogenized) 매체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력과 자본동원능력이 있는 상업적 기업들만 이러한 자율등급시스템을 자신들이 제공하는 컨텐츠에 제대로 적용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이러한 컨텐츠에만 이용자들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제3자 등급시스템은 결코 자율등급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독립적인 제3자에 의한 등급시스템은 화자가 갖는 자율적인 등급표시의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자율등급의 부정확성과 오표시(mis-rating)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ACLU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논거를 이유로 제3자 등급시스템도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① 개발되어 지금 현재 시장에 나온 제3자 등급시스템이 몇몇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새로 생겨나는 사이트나 뉴스그룹은 물론이고 수백만 개의 사이트들에 대해서 어느 한 기업이나 조직이 등급을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② 제3자 등급시스템에서도 등급이 표시되지 않은 사이트들은 여전히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3자 등급시스템에서는 성인이나 청소년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선별에 제3자의 주관적인 가치관에 개입된다는 점이다.

(5) 등급판정과 등급표시의 구분
위에서 소개한 세 가지 등급시스템 즉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 ‘통일적 기준을 기반으로 한 자율등급시스템’, ‘제3자 등급시스템’의 구분은, 사실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있어서 ‘등급판정’과 ‘등급표시’의 구분을 전제로 하여, 등급판정과 등급표시의 주체에 따른 구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등급판정'(rating)이란 사이트나 컨텐츠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며, ‘등급표시'(labelling)는 등급을 나타내는 공식적인 방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등급판정과 등급표시가 동일한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다른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등급판정과 등급표시가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정보제공자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시장원리에 따라 제3자에 의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구체적인 유형들이 구분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있게 된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2> 등급판정 및 등급표시주체에 따른 구분

Ⅳ. 우리나라에 있어서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적용가능성

1. 우리나라의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내용
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입법예고안을 중심으로 볼 때,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처음부터 추진했던 원형에서 많이 후퇴해 있는 실정이다. 즉 공청회에서 발표된 개정안(이하 ‘공청회안’이라 함)에서는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을 각각 분리하여,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핫라인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그 제작과 유통을 방지하면서,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해서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를 실시하여 그 유통에 대한 합리적 규제를 시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정부에 의한 인터넷의 검열이라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게 되어, 입법예고안에서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삭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청회안의 내용
먼저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제작 유통 또는 매개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공청회안 제26조). 그리고 불법정보에 대한 핫라인시스템의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데, 예컨대 누구든지 불법정보의 유통 및 매개행위를 인지한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으며(공청회안 제27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법정보유통에 대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의 고지 등 일정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공청회안 제28조), 정보통신부장관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대해 불법정보의 취급거부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공청회안 제29조). 이상의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불법정보 규제시스템인 핫라인시스템에 있어서 그 중심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있다는 점이다.
한편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적용을 전제로 하여, 정보등급의 기준, 표시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공청회안 제30조). 하지만 등급표시를 해야 할 의무를 지는 자는 영리목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제공하려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국한된다(공청회안 제31조). 물론 등급표시의무자가 해당 정보에 등급을 표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과태료에 처해지고(공청회안 제80조 제9호), 또한 영리목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청소년이 접근할 수 있는 등급으로 표시하여 유통시킨 자에 대해서는 형사벌이 가해진다(공청회안 제77조 제4항). 그리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전에 등급분류서비스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공청회안 제32조), 등급오표시 정보(mis-rated content)에 대한 등급조정의 주체를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하고 있다(공청회안 제33조). 더 나아가서 학교, 도서관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 또는 시설에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를 이용하여 특정 정보에 대한 접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선별소프트웨어’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공청회안 제34조). 이상의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청소년유해정보 규제시스템인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에 있어서도 그 중심축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 불법정보의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즉 기존의 ‘불온통신’ 개념 대신에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개념을 도입하여, 불법정보에 대해서만 정보통신부장관의 취급거부명령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법정보라는 개념의 포섭범위가 포괄적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국가기관의 자의적인 권한남용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율규제가 기반이 되어야 할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에 국가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핵심축으로 자리잡고 있음으로 인해, 결국 정부에 의한 인터넷의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율규제는 시장원리에 따른 자율등급시스템과 제3자 등급시스템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공청회안은 이러한 시장원리가 아닌 국가가 제시한 등급시스템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2) 입법예고안의 내용
2000년 9월 23일자로 입법예고된 개정안을 보면 공청회안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대폭적인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구분에 따른 규제시스템이 포기되었다. 즉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개념정의가 삭제되었고, 정보통신부장관의 불법정보에 대한 취급거부명령권조항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책임에 관한 조항(공청회안 제36조) 등 불법정보 규제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조항이 삭제되었다. 이것은 결국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핫라인의 구축이 포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구분에 따른 규제시스템은 기존의 전기통신사업법상의 불온통신 규제시스템의 대안으로서 등장한 것인데, 그것이 포기됨으로 인해 결국 불온통신 규제시스템은 존치하게 되었다.
둘째,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구축에 있어서 가능한 한 국가기관의 개입을 배제시켰다. 즉 정보내용에 대한 등급부여 및 표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부장관이 권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쳤다(입법예고안 제43조 제1항). 이에 따라 등급표시를 해야 할 의무를 지는 자도 "영리목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제공하려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서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 확인되어 고시된 정보를 제공하려는 자"로 그 범위를 대폭 축소시켰고(입법예고안 제45조 제1항), 등급기준 및 표시방법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청소년보호단체, 이용자단체, 정보통신관련단체 등의 의견을 들어 마련 공포하도록 하였으며(입법예고안 제43조 제2항),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사전에 등급분류서비스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제공하도록 하던 것도 적정한 등급에 관한 자문 정도에 그치도록 하고 있다(입법예고안 제44조). 더 나아가서 등급오표시 정보(mis-rated content)에 대한 등급조정조항도 삭제되었고, 내용선별소프트웨어의 설치의무규정도 설치권장규정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으며(입법예고안 제46조 제1항), 영리목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청소년이 접근할 수 있는 등급으로 표시하여 유통시킨 자에 대해 가해지는 형사벌조항도 삭제되었다. 이것은 결국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정착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을 가능한 한 배제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 우리나라의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문제점과 적용가능성
지금 현재 정보통신부가 채택하고자 하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운영주체와 관련한 문제점이다. 즉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 시스템을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영역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공청회안에서 나타난 우리나라의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시스템 운영의 핵심에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청회안에 나타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사이버공간에 대한 규제가 실효성을 거두기가 힘든 법적 규제의 방식보다는 관련업계의 자율규제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라든지, 국가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단일한 등급기준을 제시하고, 이러한 등급기준에 따른 등급표시를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는 비판도 가해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터넷상의 컨텐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자율규제방식이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기는 하지만, 자율규제방식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상 현실성 내지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명백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율규제와 법적 규제는 관련 영역에서 상호 보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예컨대 1999년 9월 9일에서 11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Internet Content Summit에서 발표된 Bertelsmann재단의 보고서는 분명히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동 보고서는 자율규제방식이 체계적이고(systematic), 통합적이며(integrated), 동적이고(dynamic), 국제적인(international) 접근방법에 따른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실효성과 관련된 문제점이다. 즉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제공되는 정보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 컨텐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컨텐츠에 대해서는 통제의 효과가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비판이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등급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정보제공자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표시하지 않는 한 청소년보호의 목적달성이 어렵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위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자율등급시스템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인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기술적 수단들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가 당장의 실효성을 확보하지는 못할지라도, 다양한 정책적 기술적 수단들을 개발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보다 안전한 인터넷의 구축을 위한 규제시스템으로서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다고 본다.
셋째,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말 그대로 자율규제를 표방하고 있는바, 이러한 자율규제시스템이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기존 매체에서의 등급제와 조화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점이다. 사실 입법예고안에서 채택되어 있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기존 매체에서의 등급제에 대한 ‘대안적 규제장치’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보완적 규제장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즉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가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자율규제’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존 매체에서의 등급제가 포기된 것은 아니며, 특히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제도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한 심의제도는 여전히 인터넷 컨텐츠에 대해서 유효하다. 다만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자율등급을 유도함으로써, 인터넷에 자율규제를 착근시키려는 시도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기존의 등급제와 조화될 수 있고, 또한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매체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규제시스템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물론 인터넷 내용규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매체 전반에 있어서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한 규제방식의 변화가 기존 매체에서의 등급제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보다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어 다음의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Ⅴ. 결론
이상에서는 오늘날 인터넷상에서의 새로운 내용규제시스템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구체적 내용과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적용가능성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분석과정에서 필자의 머리를 끝까지 떠나지 않는 화두는 바로 ‘내용규제시스템에 있어서 국가 내지 법의 역할문제’이다. 사실 오늘날 인터넷상에서의 내용규제시스템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 중의 하나는 바로 국가의 역할 내지 법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터넷상에서의 내용규제시스템과 관련해서는 법에 의해 담보되는 ‘규제’에 대한 관념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즉 국가 내지 법에 의해 강제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규제관념은 이제 국가에 의한 ‘서비스’라는 관념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인터넷상에서의 내용규제는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행동에 의해 담보되어야 하고, 다만 국가는 이러한 자율규제가 제대로 혹은 실효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이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전통적인 규제방식은,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해, 헌법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효율성 내지 현실적인 관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기 때문이다. 설령 국가의 규제가 여전히 필요한 영역이더라도, ‘규제의 합리화’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규제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율규제 중심의 규제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두 가지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언론분야와 관련해서는 ‘자율규제’의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언론관련법들은 언론을 억압해 왔지 자율규제의 능력을 육성하는 데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국가가 주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점점 자율규제의 경험을 축적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율규제의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자율규제 중심의 규제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할 때, 국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까지만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개별 사안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도출해야 하지만, 결국에는 입법을 통해서 구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속적인 비판과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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